[12년|12월|일터다시보기]통권 102호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이것이 바로 노동 OTL”을 읽고

일터기사

그래서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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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통권 102호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이것이 바로 노동 OTL”을 읽고

한노보연 후원회원 제리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제작비 마련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이 날짜를 다 채우기도 전에 목표했던 1억 원을 달성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입니다. 1억 원은 달성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힘과 지지가 모아져서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직업성 암 투쟁은 비단 아주 나쁜, 최고로 악질적인 한 회사의 만행을 보여주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 투쟁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노동자는 한낱 기계보다도 하찮게 취급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모든 노동자들의 생명과 권리의 문제를 돌아보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동 OTL”에 등장했던 노동자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고 분노스러운 사실은 너무나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노동조합을 만든 노동자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만드는 제품도 다르고 지역도 다르고 일하는 형태도 다르지만 한결같이 하는 얘기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박한 호소였습니다.

한 공장의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지난 달 자신의 월급명세서에 찍힌 한 달 노동시간이 600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계산을 해도 내 머리로는 답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꼬박 30일을 20시간씩 일을 했다는 건데. 그런데 이 곳 노동자들에게는 신기한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장시간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잔업, 특근은 늘상 강제적으로 진행됐고, 명절에도 쉬어본 기억이 잘 없다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회사는 공장 입구에 당당하게 무재해 목표일을 적어놓고 그 목표일을 향해서 600일이 넘도록 안전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노동자는 자신의 동료가 얼마 전 어깨가 찢어져서 병원에 갔고, 기계에 손가락이 절단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타박상이나 꿰매는 상처 정도는 다친 축에도 못 낀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얘기만 들어서는 두 곳은 전혀 다른 회사 같았습니다. 물론 같은 회사지만 말입니다. 결국 무재해 목표일을 망친 노동자는 사비로 치료를 받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일터로 나와야 했습니다. 노안 전문가는 그 공장을 둘러보고는 한마디 했습니다. 여태껏 죽지 않고 일하는 게 신기할 지경이라고.
조선소 노동자들도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얼마 전 목포와 울산의 조선소 노동자들이 서울에 와서 정부에 제발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 사연이 참 기가 막힙니다. 노동자가 일하다가 현장에서 쓰러져도 산재로 기록하지 않기 위해서 응급차가 아닌 트럭에 짐짝처럼 실어서 병원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전남 대불산단에서는 가스냄새를 맡고 가스누출 의혹을 관리자에게 얘기했지만 빨리 작업을 끝내라는 지시에 묵살됐고, 결국 폭발사고가 발생해 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그날 하나의 사건으로 끝이 아니라 이 곳 노동자들은 매일 일어나는 사고에 동료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안전, 건강이라는 단어는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 있다고 만능은 아닙니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 노동자들도 건강하게 일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주야 맞교대, 세계 최장시간 노동, 위험한 줄 알면서도 옆에 끼고 살아야 하는 발암물질, 노동자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작업 공정과 시간으로 늘어나는 골병들. 그런데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또 어느새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지 하는 체념으로 우리 스스로도 이 문제들을 그냥 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싶습니다.

산재를 은폐하는 것도 600시간씩 말도 안 되는 노동을 강요하는 것도 밤새 쉬지 않고 기계를 돌려서 생산을 해내라는 것 모두 자본의 이윤을 위한 것입니다. 결국 그것을 위해 노동자들은 자기의 목숨을 내놓고 있는 셈이죠. 인간이 아니었다는 외침에서 시작했다면 이제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좀 바꿔야하지 않을까요. 더 적게 일하고, 발암물질은 대체물질로 바꿔 사용하고, 노동 강도는 완화하는 것. 이런 변화를 만드는 것 모두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내가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전에 만난 한 노동자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작업 재료를 보관하는 설비를 회사가 돈만 조금 더 들여서 바꾸면 우리는 허리 굽혀 일하지 않아도 되고, 비오면 설비 비 안 맞게 하느라 우리가 비 맞으면서 뛰어다닐 일이 없어요. 하지만 회사는 돈 들여서 우리가 좀 더 편하게 일하는 꼴이 보기 싫다는 거죠.” 노동자를 우선에 두고 생각한다면 참 간단한 문젠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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