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5월|연구소리포트]과학의 사회적 책임: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

일터기사

과학의 사회적 책임:
누구를 위한 과학인가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김 종 영

저는 과학기술사회학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이번 ‘삼성백혈병’과 관련된 인바이런사의 ‘고용과학’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로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고용과학이 기업과 연계하여 약자 특히 노동자들의 건강 이상을 과학의 이름으로 부정하는 여러 사례들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둘째, 삼성백혈병의 경우 기업-정부-과학의 거대하고 암묵적인 동맹으로 힘 없는 노동자 환자들이 거리로 나와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셋째, 한국사회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들이 과학기술과 연관되어 있어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고 정부와 기업은 건강한 공동체 실현을 위해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고용과학이 기업의 편에 서서 여러 산업 유해물질이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은폐해 온 역사는 아주 오래됩니다. 석면의 경우 이미 1930년대에 문제가 있음이 지적되었고 1940년대에는 발암물질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심각한 건강문제를 일으킨다는 인식이 받아들려지는데는 2-30년이 지난 1960년대였으며 여러 국가에서 석면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는데 또 다른 3-40년이 걸렸습니다. 그 동안 석면제조 기업들은 이러한 사실을 오랫동안 부정해 왔습니다. 현재도 석면으로 지은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만 2009년 한 해 동안 229,000명의 수명이 단축되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석면으로 인한 질병과 사회적 비용은 미국에서만 200조원에 달합니다(McGarity & Wagner, 2008: 40-41). 휘발유에 들어가 있는 납과 벤젠이 노동자와 시민의 건강에 위협적인 사실은 이미 각각 1920년대와 1940년대에 밝혀졌음에도 휘발유에 납과 벤젠이 없는 휘발유로 대부분 교체되는데는 수 십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기업들은 석유로 인한 납중독과 벤젠중독을 평가절하했습니다. 이외에 노동자들의 생산과정과 소비자들의 제품사용 과정에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군수산업에서 사용되는 치명적인 발암물질인 베릴룸, 금속산업의 노동자들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하는 크롬, 너무나 잘 알려진 흡연과 간접흡연으로 인한 각종유해물질, 광공업에서 나타나는 규폐증, 신약에서 나타나는 각종 유해물질 등 산업체들은 수십년 동안 이들의 유해성을 부인하거나 평가절하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들 산업체들이 유해물질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고용과학을 동원하는 일입니다. 이들은 고용과학을 동원해 문제가 되는 물질의 유해성을 부인하거나 유해성의 정도가 불확실하다고 주장합니다. 고용과학이 유해성을 부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큰 숫자의 노동자 집단을 선별적으로 포함시키거나 노출이 덜한 노동자들 포함시켜 유해성을 희석시키거나 다른 요소들을 끄집어 들여서 유해요인에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 등 이들이 동원하는 방법은 치밀하고 교묘합니다. 이번에 동원된 인바이런사는 이미 밝혀진 크롬의 유해성을 부인하는데 일조했으며 간접흡연의 유해성을 부인하는 기업을 위해 연구를 해 온 기업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크롬의 경우 45년간 노출된 노동자의 경우 1000명 당 88-342명의 발암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Michaels, 2008: 99). 인바이런은 크롬의 유해성을 반박하기 위해 과학자들을 동원하고 논문까지 작성을 하였습니다(Michaels, 2008: 107-108). 하지만 미국 법원은 크롬의 유해성을 인정하고 대폭 노출기준을 낮추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간접흡연의 경우 인바이런사는 간접흡연의 위험성을 알린 일본 국립암센터의 히라야마 박사의 연구를 반박하는 연구에 참여하였습니다(Michales, 2008: 87). 하지만 추후에 다른 연구들은 히라야마 박사의 연구결과가 옳았음을 입증하였습니다. 현재 여러 과학적인 증거들로 간접흡연은 세계각국에서 규제가 되고 있습니다. 백도명 선생님의 설명처럼 이번 삼성백혈병 문제에서도 인바이런의 연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인바이런은 삼성으로부터 어떤 댓가를 받고 연구를 수행해 왔고 어떤 과정으로 이 연구가 수행되었는지 밝혀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 1960-70년대에 환경, 보건, 노동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이후 고용과학이 체계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최근에는 고용과학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습니다. 고용과학이 동원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객관성과 중립성을 기업에 제공함으로써 기업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입니다. 기업의 생산과정과 생산품에서 유해물질이 발견되면 이는 기업 이미지와 제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경우 정부 규제를 보다 더 강하게 받아야 하며 노동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보상금과 산재요율의 인상(산재요율의 경우 삼성은 한해 143억원의 이익을 보았음)등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최근 ‘신자유주의 과학’의 등장으로 인해 과학이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Lave, Mirowski, & Randalls, 2010). 기업들은 앞다투어 기업의 제품방어, 법정소송에서의 유리한 고지 점령, 정부의 규제 회피, 제품의 우수성 과장, 노동자와 시민들의 항의에 대한 방어 등을 위해 과학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미 자율적인 규제에 의한 과학자 공동체에 맡길 수 없는 상태입니다.
둘째, 기업-정부-과학기술의 직접적 또는 암묵적 동맹은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신자유주의에 편성하여 특정 기업과 세력을 위해 기여할 수 있을 가능성을 낳습니다. 기업-정부-과학의 동맹은 삼성백혈병에서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삼성백혈병의 경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에 유리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건강 노동자 효과를 무시하고 질병과 관련이 깊은 라인의 노동자의 수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를 더함으로써 통계결과를 희석시키고 과거 작업장의 재현을 불충실하게 하였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1심의 재판결과에서 아주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어졌습니다. 백혈병의 발병 상황을 자세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역학조사뿐만 아니라 질병이 발생하는 구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는 양적 방법뿐만 아니라 질적 방법을 통해서 질병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연구보고서는 삼성에 일종의 면죄부를 줌으로써 판결에서 3명이 보상을 받지 못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부는 환자들과 시민단체의 계속적인 증거제시와 압력에 최근에는 약간 유연한 자세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자들과 시민단체들은 거리로 나와서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돈, 자원, 지식은 기업과 정부에 비해 너무나 제한적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경우 건강, 노동, 환경과 관련해서 최근 사회운동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과학에서는 질병과 관련된 사회운동 연구가 요즘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Epstein, 2008). 삼성백혈병의 경우 이들이 가진 것은 기업과 정부로부터 거부, 배제 당한 뭄뚱아리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리로 나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몸의 아픔뿐만 아니라 엄청난 치료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이들이 우리에게 호소하는 것은 비판적인 집단지성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아픔에 대한 공감입니다. 병들고 죽어가는 몸은 자본과 국가라는 거대 권력 앞에서 몸부림 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정부-과학기술의 동맹에 맞서 시민단체와 언론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자칫 개인적인 질병으로 간주되어 묻힐 뻔 했던 이번 사태가 시민단체와 언론에 의해 쟁점화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끊임없이 기업-정부-과학기술의 삼각동맹을 감시하고 과학기술의 공공성이 성취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저는 삼성백혈병 사태를 넘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여러 사회문제에서 과학기술의 공공성이 성취되어야 되고 과학자, 전문가들이 집단행동에 나서 줄 것을 호소하며 시민과 언론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최근 한국사회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문제들이 큰 사회적 파장과 갈등을 낳았습니다. 삼성백혈병 사태를 비롯해 황우석 사태(Kim, 2009), 광우병 사태와 촛불운동(김종영, 2011), 천안함 사태, 4대강 개발 문제(김지원, 2011)등 주요 사회문제들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경우 정부와 기업은 과학기술을 자신들이 편에 유리하도록 사용하였고 시민/언론과의 소통을 게을리 해서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많은 경우 과학기술문제, 법적 문제, 정치, 사회운동과 같은 요소들이 얽혀 있으며 이러한 사회문제는 과학적 합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리성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저는 ‘지식의 정치경제학’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과학기술 자체가 정치적 제도, 경제적 이익, 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지식은 단지 진리 추구와 사실 발견만이 아니라 큰 맥락에서 현대사회를 구성하며 이를 둘러싼 갈등과 타협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앎의 문제는 곧 정치적, 경제적, 법적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보다 민주적인 ‘지식사회’를 위해 시민과 전문가 모두의 성찰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태들에서 소수의 과학기술자와 전문가들의 활약으로 좀 더 민주적인 과학기술정책이 만들어지는데 기여를 하였습니다. 최근에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단편적인 사태들의 연속이 아니라 보다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학기술, 의료, 정보의 영역들은 정치, 경제, 언론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내려 있습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과학기술에 관한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재구성이 요구되어집니다. 과학-기업-정부의 동맹은 더욱 깊어지고 시민사회와 언론은 이러한 동맹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의 공공성과 민주화를 위해 좀 더 많은 과학기술자들과 전문가들의 참여가 보다 더 절실할 때입니다. 과학기술이 기업과 정부의 이익을 위해 편향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과학자 공동체는 이 점을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여 과학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해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또한 이번 삼성백혈병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과학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정책적, 제도적 안전장치들이 사회갈등을 해소하는데 근본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산재보험을 원인주의에서 결과주의로 바꾸는 문제, 질병 판정에 있어 노동자와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참석시키는 문제, 시민의 건강과 환경을 위한 연구의 확대 등 많은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합니다. 삼성백혈병 사태가 궁극적으로 이러한 제도개선을 이끌고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인권이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일터

[참고자료]
김종영. 2011. 대항지식의 구성: 미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운동에서의 전문가들의 혼성적 연대와 대항논리의 형성. 『한국사회학』 45(1): 109-152.
김지원. 2011. 4대강 개발의 지식정치.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석사학위논문.
Epstein, Steven. 2008. “Patient Groups and Health Movements” in Hackett et al. eds. The Handbook of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pp. 499-539.
Kim, Jongyoung. 2009. “Public Feeling for Science: The Hwang Affair and Hwang Supporters.”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18(6): 670-686.
Lave, Rebecca, Philip Mirowski, & Samuel Randalls. 2010. Introduction: STS and Neoliberal Science. Social Studies of Science 40(5): 659-675.
McGarity, Thomas & Wendy Wagner. 2008. Bending Science: How Special Interests Corrupt Public Health Research.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Michaels, David. 2008. Doubt is Their Product: How Industry’s Assault on Science Threatens Your Healt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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