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6월|이러쿵저러쿵]아이폰, 책, 그리고 청바지

일터기사

아이폰, 책, 그리고 청바지

한노보연 회원 김세은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얼마전 그렇게 깨닫게 된 한 가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이 다양한 형태의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생산 과정에 관여된 누군가는 그와 관련된 각종 유해인자에 노출되거나, 때로는 실제로 불건강을 경험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아이폰도 그렇다. 아이폰의 기능과 디자인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애플사의 대표적 납품업체인 폭스콘사의 중국 공장의 젊은 노동자들이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대우에 시달리고, 적잖은 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이미 꽤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아이폰 사용자들 중 그런 사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알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늘 일상에서 접하는, 좀 더 평범한 예를 들어본다면, 책.(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일터’도 당연히 여기에 속한다!)

최근 경기 지역의 어떤 인쇄업체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인쇄업에 대해 읽고 들은 바가 있어 알고 있긴 했지만 직접 가보니 과연 실제로도 그곳은 각종 유해인자들의 집합소였다. (그것들이 비교적 안전한 범위인지 아닌지는 구체적으로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소음부터 시작해서, 인쇄 염료로부터 배출되는 각종 유기용제, 중량물 운반 작업과 관련된 근골격계 유해인자에, 교대근무까지.

그 공장에서 보았던 것들 뿐만 아니라, 출판업계에서 매우 흔한 고용형태라는 외주편집노동자가 있다는 것도, 최근에 실제로 그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게되면서 알았다. 나도 종종 짧은 레포트부터 수십~수백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의 ‘교정작업’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겪게 되는 고역을 그들은 ‘늘’ 겪고 있고, 과다한 업무량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정작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지금 당장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몇가지 짚어보아도… 내가 지금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 늘상 쓰는 색색의 형광펜, 지금 신고 있는 가죽 신발, 커피가 담겨진 머그컵까지… 눈에 보이는 형태를 가진 이런 물건들의 이면에는, 우리가 평소에는 애써 떠올리지 않는 이상 인식하지 못하는 갖가지 형태의 노동이 축적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각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그 생산과정에 관여하는 노동자들이 어떠한 위험에 노출되어있는지도 역시 이 물건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유추해내기는 더욱 어렵다.

지난달에 열린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춘계학회의 첫 강연이, 최근 새롭게 ‘발견’되었거나 ‘발생’한 ‘새로운 직업병’과 국제적 동향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청바지공장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한 규폐증’이었다. 물론 소개된 다른 직업병들도 새로운 내용이긴 했지만, 나 자신이 평소에 청바지를 즐겨입으면서도 청바지에 그런 ‘속사정’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 앞으로 이 일로 먹고살 예정인데 말이다.)

청바지에 낡아보이는 빈티지한 효과를 내기 위해, 모래를 이용해 가공하는 과정을 진블라스팅(Jeanblasting)이라고 한다. 대개는 환기시설 등이 부족한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 과정에서 모래분진이 폐내에 축적되고 이는 규폐증(silicosis)의 원인이 된다. 터키에서 2000년대 들어 진블라스팅 작업을 했던 많은 노동자들이 규폐증으로 진단받았는데, 그들 중 30여명이 사망한 후에야 진블라스팅 자체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고 한다.

새로운 직업병으로 소개되긴 했지만 검색해보니 이미 작년 초에 나온 영국 매체의 관련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Telegraph紙 “Top chains are urged to ban sandblasted jeans”). 몇몇 회사에서 이미 그 전에 진블라스팅을 중단하였는데, H&M, 리바이스(Levis)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도 역시 진블라스팅을 중단했고 관련 캠페인을 펼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랄까. 물론 그것이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산업이나 공정의 변화와 함께 등장하는 직업병도 있지만, 이미 누군가 위험에 노출되어왔음에도 ‘산재 인정’은 커녕 그것이 ‘직업병’으로 ‘발견’조차 되지않은 경우가 ‘여전히’ 참 많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되더라도, 두 눈은 크게, 두 귀는 쫑긋, 더듬이는 바짝 세우고 다녀야겠다. (아. 물론 나는 ‘이미 잘 알려진’ 직업병들을 공부하기에도 벅찬 전공의이지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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