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6월|칼럼] ‘노동자 건강’은 ‘지역 주민 건강’

일터기사


‘노동자 건강’은
‘지역 주민 건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김 정 수

지난 510, 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하나 나왔다. 부산 연산동 소재 석면방직공장 제일화학() 근처에서 살다가 악성중피종으로 사망한 지역 주민의 유가족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법원이 해당 업체에 대해 ‘60%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석면을 취급했던 노동자에 대해서 업체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은 있었지만 석면공장 주변 지역주민에 대한 관련 판결은 이번에 처음이다.

사실 이번 판결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참고로 [일터]에서는 지난 20095월호부터 20102월호까지 10회에 걸친 기획연재를 통해 석면에 관한 이슈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구보타 쇼크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지난 20056월 일본에서 석면을 함유한 수로·배관 등을 생산해 온 대형업체 구보타에서 근무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공장 인근 주민에게 악성중피종이 집단 발병한 사건을 말한다. 2005년 이미 79명이 중피종으로 사망했고 인근 주민들까지 포함해 150여명의 피해자를 발생시켰다. 일본의 경우 60년대부터 석면사용이 급증했는데 2000년대 중반(구보타 쇼크 이후)부터 석면피해 환자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70년대 산업화 이후 석면사용이 급증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석면피해 환자들이 급증하고 석면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직업성 암(일을 하는 도중에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암)의 대표 주자격인 석면이 환경성 암(주변 환경의 발암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하는 암) 역시 유발할 수 있음을 확실시 한 점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에서 확인된 점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공장과 주변 환경은 공장 담벼락 하나 차이다. 그 담벼락이 공장과 주변 환경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장에서는 각종 유해물질들을 환기 설비를 통해 담벼락 바깥으로 끊임없이 내보낸다. 이것 자체를 대단히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장 안에서 유해 물질을 관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환기이다. 유해 물질을 공장 밖으로 배출함으로써 공장 안의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고, 공장 밖으로 배출된 유해 물질은 농도가 낮아져서 주변 지역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공장 안의 노동자들에 비해서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면처럼 암을 유발하는 물질은 상황이 완전 다르다. 대부분의 발암물질은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므로 발암물질이 걸러지지 않은 상태로 공장 밖으로 배출될 경우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지역 주민들에게 암을 유발할 수 있다. 게다가 공장 안에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취급하는 물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최소한의 보호조치(환기설비, 보호구 등)를 취할 수도 있지만 지역 주민들의 경우 자신들이 그럼 발암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보호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공장 밖을 벗어난 발암 물질이 지역 주민들에게 더욱 해로울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취급하는 발암물질이 완전히 걸러진 채로 외부로 배출되는 경우는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아니 아직까지도 공장 안에서조차 발암물질인줄 모르고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취급하거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취급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환영함과 동시에 이러한 판결이 다른 사례로 확대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그런 연구들이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삼성 반도체 공장들 주변에 사는 지역 주민들의 백혈병 및 각종 희귀 난치성 질환의 유병율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발암물질이 아닌 유해 물질의 경우 발암 물질에 비하면 조금 덜 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들이 곧바로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노동자의 건강이 곧 지역 주민의 건강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판결을 이끌어낸 부산석면추방공대위의 활동은 상당히 모범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부산은 일본과 인접한 항구도시라는 특징으로 석면원료와 석면완제품 수입수출로 석면 산업이 왕성했던 곳이다. 10개 넘는 석면방직공장이 있었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그곳을 거쳐 갔다. 2007년 부산의대 강동묵 교수의 연구와 부산 MBC의 특집기사로 석면방직공장에 의한 석면 노출이 크게 다루어지면서 석면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부산지역에서 2008년 석면전문가(보건, 환경), 석면공장 노동자와 주변 환경성 피해자, 환경단체, 노안단체, 지하철과 조선사업소의 노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부산석면추방공대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활동해 오던 지역의 노동자, 노동안전보건단체와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해 활동해 오던 지역의 주민, 환경단체가 연대했던 것이다. 이번 판결은 바로 부산석면추방공대위활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법원이 정부와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가에 대해서는 당시 석면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없었다, 일본 기업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각각 청구를 기각했다고 한다. 당시 국내에서는 석면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없었을지 모르겠지만 국제적으로는 이미 석면의 발암성이 충분히 입증된 상황이었다. “활발한 연구가 없었다기 보다는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대책 마련을 하지 않은 정부는 책임이 없는 것인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유명한 원진 레이온 기계는 일본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중국으로 이전해갔다. 석면방직공장 기계 역시 일본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지금은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선가 가동되고 있다. 이런 유해 물질, 유해 산업의 국제간 이동에 해당 기업의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그럼 이런 문제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부산석면추방공대위와 부산석면피해자가족협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국가와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항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 판결이 노동자의 건강과 지역 주민의 건강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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