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2월|기획]기업살인사회를 넘어-질주하는 인력감축과 외주화 노선

일터기사

질주하는 인력감축과 외주화 노선
순식간에 5명이 열차에 치여 사망,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집필노동자 희정
작년 12월, 철도 선로 보수 작업을 하던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들은 철도공사의 자회사 코레일테크의 협력업체 소속으로, 선로에 자갈을 까는 동파방지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한밤이었다. 열차는 순식간에 이들을 치고 지나갔다.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소식… 어디 영화에서 봤는데.’
본 지 수년이 지났지만 어둡고 우울한 이미지로 기억 남는 영화가 하나 있다. 켄 로치 감독의 2001년 작품 <네비게이터(The Navigators)>다. 영국이 철도 민영화로 몸살을 앓고 있던 시절 이야기다. 다시 찾아보니, 철도 노동자들의 형광주홍빛 작업복이 화면을 메우고, 군데군데 유머가 섞인 영화였다. 그럼에도 어두운 색채로 기억에 남았던 것은 영화 끝부분 야간작업 장면 때문이었다.
영국 철도 공사가 민영화되고, 노동자들은 에이전시라 불리는 민간 하청업체 소속이 되어 일하게 된다. 휴가나 퇴직금 등 당연한 권리는 더는 없다. 때론 시간외근무 수당도 포기한다. 이 자리에 들어오려는 노동자는 많다는 에이전시의 협박만이 노동자들이 가진 것이다.
영화 내내 철도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한 대사는 이것이다.
“사람이 부족해요.”
늘 인력이 모자랐다. 업체는 번번이 말했다.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했어요.”
최대한 낮은 단가로 일을 따내야 하는 업체가 비용문제로 포기한 것은 안전시설과 보호 장구, 작업 중 열차가 오는지 확인하는 감시원, 그리고 충분한 인력이었다.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해야 하니 밤늦은 시간까지 작업이 이어진다. 그렇게 하게 된 야간작업 중 달려오는 열차 파편에 맞아 동료가 숨진다.
영화 속 사망자는 1명. 그러나 아직 민영화되지도 않은 코레일(철도공사)은 2011년 한 번에 5명의 사망자를 냈다. 원래 현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누가 붙들어 잡아둔 것도 아닌데 다섯이 한꺼번에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그들에겐 열차가 오는지 확인해줄 감시원이 없었다. 원청 철도공사 관리자는 그들을 감독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것이 관례라 했다. 하청 노동자들은 막차 운행 시간을 모르는, 일이 급해 야간에 불려 나온 주간조 근무자들이었다. 열차 기관사는 선로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소통 받지 못 했다. 열차가 달려오는 철로에 5명의 노동자를 붙잡아둔 것은 하청업체를 통해 비용을 아끼려는 원청 철도공사와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했어요”라고 했을 하청업체 관리자의 말이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미 그해 2월 서울메트로 외주업체 노동자가 선로보수 중 열차에 치인 사고가 있었다. 감시원은 없었다. 7년 전에는 신태인역에서 철도 최대 규모의 사망사고가 났다. 7명의 하청 노동자가 죽었다. 역시 감시원은 없고, 작업장소가 철도청과 제대로 된 소통되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그럼에도 바뀌지가 않는다.
사람 지나갈 길목이 없어 열차에 깔리던 노동자들
1980년에 첫 근무를 했다는 철도 기관사를 만났다. 지금은 철도 일에 만족한다는 그가 30년 전, 열차에 앉아 한 생각은 뭐 이런 곳이 다 있냐는 거였다.
“젊은 데 놀지를 못하는 거예요. 나이는 스무 살인데, 일이 낮밤이 없고. 명절이 되도 못 놀죠. 더 바빠요. 근무 시간은 불규칙하고.”
철도 노동자의 한 달 기본 근무시간은 192시간이었지만, 실제 24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기 시간이 길고, 화물 열차의 경우 밤 운행을 많이 하는데 야간근무도 정해진 것 없이 주어졌다. 한 달에 휴일은 많아 봤자 이틀.
이런 환경은 80년대로 끝나지 않았다. 1999년 입사한 이도 당시의 근무 환경을 이리 말했다.
“여름에는 기관차에 에어컨이 없었어요. 한 여름에 외부 온도가 30도다, 그러면 기관차 내부 온도는 40도를 넘어가고 이래요. 여러 방편을 쓰는 거죠. 물 떠 가지고 발 담그는 사람도 있고. 터널 들어갈 때는 일부러 문을 열고. 공기가 안 좋아도, 터널은 시원하니까. 겨울에는 합숙(기관사들이 장거리 운행 후 머무는 숙소)에 들어가 누워 ‘후’ 불면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였어요. 너무 열악했죠.”
그 합숙소에서 노동자들이 자다 죽고, 과로로 쓰러져 죽었다. 1998년 산재 사망 수 35명. 1999년 23명. 2001년 31명. 2000년 초까지 철도는 평균 30여명 꼴의 산재사망자를 내는 작업장이었다. 이 중 대다수가 과로사와 작업 중 사고로 인한 것이다.
“열차가 지나가는 교량을 보수해야 하는데, 그때는 작업자들 지나는 길이 없었어요. 열차가 다니는 철로 위에서 작업을 하다가, 열차가 오면 정말 좁은 여유 공간으로 피하거나 그것도 없어서 열차가 오기 전에 다리 밖으로 뛰어나가야 해요. 좀 늦으면 무조건 죽는 거예요. 열차에 치이는 것보다 낫다고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고. 뛰어내림 잘하면 다치는 걸로 끝나는 경우가 있으니까.”
사람 지나는 길 하나가 없어 목숨을 잃었다. 철도청이 사고를 줄인다며 직원들에게 차에서 뛰어내리지 마라, 열차가 오는지 확인하라, 입 바른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죽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정작 안전 불감증에 걸린 이는 철도청이었기 때문이다. 길목 하나 놓는 예산을 아끼느라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못 본 척 했다.
높은 사망자 수는 공공부문이라는 미명 아래 형편없던 노동조건 속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과로사의 원인인 장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것은 노동자들의 시간 값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붙잡아두는 시간이 많았어요. 화물 같은 경우는 일반 여객 우선 보내고 나서 가니까, 한두 시간은 기본. 길면 6시간도 대기하는 거예요. 그래도 단가가 그때는 1시간에 천 얼마 이천 얼마 밖에 안 했으니까. 240시간, 270시간 초과 근무를 해도 철도청 돈이 그리 들 지가 않았어요. 그러니까 신경을 안 쓴 거죠.”
그런 철도청이 안전 불감증을 조금이나마 벗은 것은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이 높아지면서 부터다. 2005년 공사로 전환된 후,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른다. 그에 따라 시간외 근무수당 또한 오른다.
“그러니까 이제는 조금만 시간이 넘어가도 공사도 신경을 쓰죠. 자기네들도 비용을 줄여야 하니까. 예전처럼 무조건 기관사를 기다리게 하는 게 아니라, 차를 잘 빼는 편이에요. 화물도 거의 정시로 나가게 하고.”
철도공사의 안전 불감증을 고친 것은 바로, 돈이었다. 일 년에 12명이 과로사로 죽어나가도 바뀌지 않던 현장은, 철도공사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게 생기자 변했다.
안전 불감증 치료제는 하나 더 있었다. 일하는 이들의 직접적인 요구였다. 2001년 철도 노동조합이 민주화되었다. 그로써 시작한 작업은 철도사업장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냐를 따지는 것이었다. 적용 대상이 아닌 줄 알고 살았다. 그전까지는 따져볼 힘이 없었다.
노동조합의 질의에 노동부는 ‘철도는 적용대상 사업장이 맞으며, 2002년 4월부터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해야 한다’라는 답을 해왔다. 그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안전보호구 착용, 안전 설비 개선이 되었다. 철도 교량에 사람이 다니는 길목이 세워졌다. 당연한 설비들이 그제야 부랴부랴 만들어졌다. 그래서 덜 죽었다. 철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제 철도 작업 중 사망 사고는 1년에 두세 명꼴이란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죽음들
이 수치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철도 관련 일을 하지만, 집계되지 않은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외주 하청 업체다. 외주업체의 노동자들은 지금도 알게 모르게 죽어나간다. 그 죽음조차 크게 죽어야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것이 인천공항철도 5명의 죽음이다.
사고 이후, 구속 영장이 청구된 이는 하청업체 관리직원 세 명과 열차를 운전한 기관사뿐이다. 영문도 모르는 기관사에게 영장이 떨어질 동안 철도 공사는 물론, 코레일테크의 어느 누구도 사고에 대한 책임을 추궁 받지 않았다. 이들은 하청업체이니, 원청인 철도공사와는 관계가 없다 한다. 코레일테크가 진 도의적 책임이라고는 1억5000만 원의 보험금뿐. 죽은 목숨 하나 당 3000만 원인 셈이다. 이 돈은 철도공사가 외주화를 통해 벌어들인, 하청업체를 이용하여 아낀 인력비용에 비한다면 극히 일부일 것이다.
철도의 안전 불감증은 돈이 들어야 고쳐지는 데, 외주업체는 죽어도 다쳐도 철도공사 돈이 안 드는 영역이다. 그러니 병은 커지고, 외주화 비율도 늘어난다. 경의선, 안산선, 중앙선 등 여러 선로의 유지보수 업무를 외주화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정규인원은 줄어간다. 이미 2009년에 5115명이 감축되었다.
반면 KTX 부산선, 전라선, 인천 공항철도 등 노선은 자꾸 늘어난다. 사람은 없고 일은 늘고, 그러니 점검 등 안전 업무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역에서 용산까지 사람들은 한 구간이라 생각하지만, 거기에 선로가 10개 있으면 일이 10가지가 있는 거예요. 예전에는 선로 하나를 하루에 순회 점검을 해서 총 열흘, 2주가 걸렸다면. 인력을 계속 줄여야 하니까. 하루에 두 개씩 점검을 하라고 위에서 내려오는 거예요. 2주 동안 할 일을 1주에 하라고. 그러니 자연스레 일이 대충이 되는 거고, 사고가 많이 나죠.”
외주화 역시 사고를 불러오긴 마찬가지다.
“외주화가 제일 심각한 건, 사고가 많이 나는 KTX인데. 일반 열차는 복잡하니까 외주를 주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KTX 고속 열차는 이제 막 구간들이 늘어나니까, 새로운 구간이 생겼다 그러면 그냥 그 구간은 통째로 외주를 줘 버리는 거예요.”
지난해 KTX 고장사고 횟수는 41건이라 한다. 한 달에 서너 번 꼴이다. 기차를 평생 안 탈 것이 아니라면 안전에 대한 걱정을 해두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낡은 몸의 기관사들
우연히 열차 기관실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가까이서 본 열차는 꽤 높았다. 계단을 찾았으나 없었다. 기차에 바짝 붙은 철 사다리가 전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좁은 난간을 지나면, 더 좁은 문이 있다. 그 문 안쪽이 기관사실이다. 열차 유리창 앞에 기관사 조종석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조종석은 오른쪽 구석에 있다. 왼쪽 공간에는 의자 하나가 달랑 놓여 있는데, 보조기관사의 자리다. 의자 쿠션이 터져 스펀지가 밖으로 비여 나와 있다. 전반적으로 황폐하고 낡은 인상을 주는 이 열차는, 디젤 기관차로 80년대부터 운행되었다 한다.
함께 탄 기관사는 조종석에 모로 앉아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어 정면을 보고, 반대로 몸을 비틀어 열차 뒤편을 확인했다. 조종석 옆으로 뚫린 작은 창문이, 그가 후진을 할 때 볼 수 있는 전부였다. 사람이 기차에 깔려 죽는다는 것이 이해가 됐다.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았다.
다행히 이와 같은 7000번 대 디젤 기관차는 곧 폐기된다고 한다. 그러나 낡은 열차에서 수십 년을 일해 온 사람들의 몸은 폐기할 수 없다. 몸을 모로 틀어 앞뒤를 보고, 저 낡은 의자에 앉아 열차 진동에 몸을 맡긴, 이제는 늙어버린 기관사들. 몸이 군데군데 상했다. 한 자리에 앉아 서울에서 대구까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네다섯 시간을 간다. 대부분 허리 통증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근골격계 환자들이다.
그래도 철도청 시절보다 많이 좋아졌단다. 불법파업, 공익사업장 파업이라는 정부의 압박에도 싸워 얻은 권리들이다. 그러나 옛 시절을 회상할 틈도 없이 이들은 새로운 문제에 부딪혔다.
부기관사 제도를 없애겠다는 철도공사의 계획이다. 무궁화열차와 KTX는 이미 1인 승무제도가 도입되었고, 슬슬 화물열차까지 손을 뻗어오고 있다. 화물열차는 대부분 야간 운행이 많은데, 뒤에 무엇을 싣고 가는지도 모르는 열차를 끌고 밤길을 혼자 달려야 한다. 1인승무제를 비롯해, 하루 자고 나면 철도공사와 정부의 새로운 외주화, 인력 감축 계획이 발표되니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아픈 몸이 감축 1순위가 될까
열차 안을 보여준 기관사는 둘이 근무를 해도 시속 100km 이상을 한 길로 가다보면 멍해질 때가 있다며, 혼자 달릴 동료들을 걱정했다. 자신은 여객 운행을 하고 있지 않다 했다. 7년 전, 그는 공황장애를 겪었다. 당시 갑작스러운 불안 증세에 열차에서 내려야 했단다.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다.
자신이 운행하던 열차에 부딪혀 숨진 모녀 때문인지. 사상사고가 나고도 단 하루 휴가도 받지 못한 채, 퇴근 후 술을 마시며 혼자 울던 기억 때문인지(사상사고 후 3일간의 휴가제도가 생긴 것은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개선해보겠다고 파업에 참가한 죄로 10년 동안 한 해고 생활 때문인지, 1평짜리 기관실에 앉아 5시간 6시간 꼼짝 못하고 가는 일의 특성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철도의 여럿 목숨을 정신적 장애나 공황장애로 잃은 사건이 잦았으니(올해 6월 보름 간격으로 두 명의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개인 문제라 할 수는 없겠다. 철도의 작은 사상사고, 허준영 사장 취임이후 강화된 경쟁체제와 평가 시스템, 파업 참가 조합원들에게 내려진 징벌 등 그 어딘가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산재신청 하기를 꺼려했다. 역 내 짧은 거리를 운행하는 일로 자리를 옮기고 약물치료를 받으며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실은 산재인정이 된 다음의 일을 걱정하는 거다.
“산재라 하면, 운전업무가 아닌 다른 곳으로 전직해야 하는데… 이 일을 20년 30년 한 사람이 또 이제 와 어딜 가서 새로운 일에 적응하고 기술을 습득하겠어요. 지금은 이 정도라도 근무할 수 있으니까. 산재 신청을 안 했음 하는 거죠. 그게 현실 조건이니까.”
철도 노동자들은 공황장애 같은 심각한 질환은 물론, 근골격계 같은 대중화된 질병조차 산재보험을 신청하길 꺼려한다. 공사의 민영화, 외주화 소문은 가실 날이 없는데, 산재 신청을 하는 순간 아픈 몸이 감축 1순위가 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낡은 보조의자에 앉아 20대를 보내고, 진동하는 기차 운전대를 잡고 3, 40대를 보낸 이들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야 할까봐 겁을 낸다.
우리 사회에서 무슨 권력처럼 이름 매겨진 ‘정규직’은 인력감축의 압박 속에 병을 봉해 버리는, 그저 안정적이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병을 감추는 것은 “아프고 힘든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의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는 노동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될 일이다. 일자리를 잃고, 나와 가족의 평온이 깨지는 일을 간단히도 표현한 ‘인력감축’이라는 이 네 글자는 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 누구에게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아픈 몸을 숨기려 하고, 하청 노동자들은 죽어서야 숨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체크메이트, 어떻게 해도 지는 게임
영화 <네비게이터>에서 철도 업무를 사들인 민간 기업은 노동자들을 교육시킨다. “이젠 일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일을 잘 해야 해요.”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지만, 일은 늘 주위에 있다고 한다. 능력껏 일을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졌다고.
새로운 변화에 맞춰 숙련공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일을 잃고 동료들을 떠나보낸 늙은 노동자는 휴게실에 앉아 홀로 체스를 둔다. 사무실 직원이 와 누가 이겼나 물어보니, 그는 “체크메이트”라고 대답한다. 체크메이트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해도 지는 거지.”
체크메이트는 왕이 사로잡히기 직전, 어떠한 수가 나와도 왕은 지게 되어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과연 늙은 노동자가 말한 왕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해도 지는 것은 누구일까? ‘사람이 부족해요’라고 한탄하다 결국 동료의 죽음까지 봐야 하는 노동자일까.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아 새로운 시대, 선진화를 꿈꾸는 철도공사일까? 80년대부터 민간화, 인력감축에 앞장 서온 일본의 JR철도 회사가 두 차례의 대형사고(91년 42명, 2005년 108명 승객 사망)를 낸 사실을 기억한다면, 어쩌면 모두에게 “어떻게 해도 지는” 위험한 게임인지 모른다.
3일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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