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2월|일터 다시보기] 일터 다시보기에 임하는 소박한 자세

일터기사

일터 다시보기에 임하는 소박한 자세
한노보연 부산회원  류현철
말끔하게 생긴 미남형의 얼굴이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흔치 않게 우뚝한 콧날과 날렵한 턱선. 베트남에서 온 지 일 년이 갓 넘은 청년 노동자는 여기저기 기름때에 절은 작업복을 걸쳤으나 화이트칼라의 느낌이 났다.(화이트칼라의 느낌이라니…이런 나의 문제적 선입견은 어디서 학습된 것일까?) 관리자에게 호출되어 불려온 탓인지 약간 불안한 기색이었지만 여전히 다부진 인상이다. 그의 인상에 왠지 가능할 것만 같아서 건네 본다. “캔 유 스피크 잉글리쉬?” 돌아온 것은 멋쩍은 미소뿐이었다. 결국 그와의 상담도 몇 마디 쉬운 한국어와 몸짓, 그리고 간간이 끼어드는 회사 보건관리 담당자의 언질로 충당되고 말았다. 
 보건관리 대행이라는 명목으로 석 달 만에 다시 찾은 공장이었다. 발전소나 선박에 들어가는 대형 금속제품을 단조하고 가공하는 회사에서 예의 청년 이주노동자는 제품이 녹슬지 않도록 방청 작업을 하고 포장하는 일을 한다. 지난번 방문할 때 확인해보았던 특수건강진단에서 방청 작업을 하는 두 명의 이주노동자에게서 유기용제에 대해 요관찰 대상(C1)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한 분은 퇴사한 상태고 한 분은 여전히 같은 작업을 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그렇듯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건강 상담이 잘 안 이루어지고 있던 터였다. 작업현장을 일없이 쏘다니고 장비나 공정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귀찮게 하는 유별난 대행의사에게도 사뭇 호의적이던 회사 담당자에게 그를 꼭 상담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고, 매달 사업장을 찾는 대행 간호사에게도 간기능에 대한 추적검사를 부탁했던 터였다. 다행히 문제가 있었던 간기능검사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허나 상담하는 동안 그가 내 말을 다 알아들었는지도 내가 그의 표현을 다 이해했는지도 사실 정확하지 않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알아들은 것은 다른 증상은 없고 그냥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좀 아팠다 안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다는 정도다. 괜한 욕심이었나 싶었다. 몇 마디 그의 나랏말도 익혀놓지 않은 채 내 의욕을 앞세우고 그를 불러다 앉힌 것은 괜한 생색만 낸 것은 아니었나 싶었다.
“물론 노동안전보건 현실이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업복과 안전모, 안전화, 장갑 등 개인 보호구의 성능은 나날이 고급화되고 사업장 보건진단 시스템이나 안전보건교육도 다각화되어왔다. 보다 적극적으로 환기시설이나 공정 개조 등 작업 환경을 개선한 사업장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노동재해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좀 더 취약한 노동자에게 옮겨질 뿐이다. 직업병이나 사고가 많이 생겼던 위험 작업은 외부 하청업체나 사내하청/임시계약직 노동자, 그도 아니면 연수생의 이름으로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의 몫으로 전가된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정규직/이주노동자들은 재해와 직업병이 빈발하는 고위험 작업에 종사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 2005년 일터 3월호 “직업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옮겨질 뿐” 중에서
 ‘일터 다시 보기’ 꼭지의 기사를 쓰기로 작정하면서 “다시 보기”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다시 본다… 또 본다… 새롭게 본다…” 다시 보고 새롭게 봐도 그 시절 과거의 기록이 바로 오늘의 기록인 것처럼 느껴지는데서 오는 비애감과 피로감이 먼저 다가든다.
이주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공장의 노동자들 대부분이 오전 8시에 시작해서 저녁 8시나 9시가 되어서야 일을 마친다. 해가 뜰 무렵에 일을 시작해서 해가 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끝나는 노동의 일과를 반복하는 그들 앞에서 운동을 권유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의 참담함이란…
“하나의 위험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고, 그 자리에 또다시 새로운 위험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 2005년 일터 3월호 “직업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옮겨질 뿐” 중에서
외주나 협력업체로 나가는 일은 가장 고달프고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부터이다. 그 중에서도 더 고달프고 더 위험하고 더 지저분한 일은 이주노동자들의 몫이다. 위험한 물질일수록 더욱 안전한 방식으로 다루어져야하고 힘든 일일수록 여러 사람이 나누어야한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안전한 방식을 택하고 여러 사람이 나누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비용이 더 드는 게 문제다. 회사가 이것을 감당하기가 귀찮아지면 협력업체나 외주업체의 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맡게 되는 것은 50세를 갓 넘기자마자 정년을 맞이하여 퇴직을 당하고, 촉탁직이란 이름으로 가까스로 재취업한 중고령 노동자이거나 이주노동자이기 십상이다.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이 자신이 속한 나라의 자본과 부의 크기만큼, 그가 얽매인 회사와 자본의 힘만큼만 허락된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는 위험의 전이와 더불어서 책임의 전이/전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변함없이 위험한 일터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하릴없는 답답함으로만 글을 마칠 수는 없지 않은가. 비록 오늘의 이야기는 넋두리뿐이었지만 그래도 다시 보자, 새롭게 보자! 조금 더 현실과 일터를 들여다보고 새롭게 보자는 급작스런 반전 마무리가 스스로에게나 독자들에게나 마뜩한 것은 아니겠으나 어쩌겠는가. 물론 지면의 제한과 마감시간을 넘긴 원고 채무자의 조급함이 이유이기도 하겠으나 답은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과 가는 발걸음에 있을 터. 혼자 생색내는 일이다 싶어도, 말이 잘 안 통한다 싶어도 손짓발짓만 할지언정 이주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또 만나고 돌아다녀야 할 일이겠다. 이것이 일터 다시보기에 임하는 나의 소박한 자세이다. 
물론 다음에는 “Can you speak English?”로 시작하지 말고 “Xin chao”로 시작해보자. 흠… “불편하시더라도 방독 마스크를 꼭 쓰시고 일하셔야 합니다”는 베트남 어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 
4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