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2월|A부터Z까지다양한노동이야기] 최저임금과 맞바꾼 노동자의 건강권

일터기사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 열 번째 이야기
자동차 부품제조 하청공장의 여성노동자
– 최저임금과 맞바꾼 노동자의 건강권
금사공단 노동자 배순덕
하청노동자가 되어 다시 공장으로 
여자 나이 오십을 넘겨 공장에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7년 가까이 상급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현장노동자들이 변하지 않고는 세상이 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17살 때 처음 노동자로 일했던 곳, 노동조합을 만들다 구속된 공단, 20년을 넘게 살았던 금사공단 자동차부품 하청업체에 입사를 했다.
자동차부품 중 고무제품과 관련된 물품을 생산해 납품하는 하청의 하청사업장이다. 무슨 일이든지 40-50대 여성노동자들이 60여명이 넘지만, 동일한 건물에 2개의 회사명의를 해놓고 혼재하여 작업을 하고 있다. 적지 않는 나이와 취업의 어려움이 있는 나로서는 근로조건을 꼼꼼하게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공정을 배정받고 나니 아차 싶었다.
내가 하는 공정은 재단인데, 호치키스 알처럼 철심이 박혀 있는 고무를 반듯하게 잘라 철심을 빼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공정인 프레스에서 불량이 발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보자 경우 고무 속에 박혀 있는 철심 위치를 제대로 파악 할 수 없어 철심을 자르기 일쑤다. 그러니 자연히 손목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었다.
2인 1조가 되어 10개 한 묶음이 10kg되는 제품을 여자 혼자 힘으로 100cm 높이의 재단대 위에 올려놓고 철심을 자르고 빼고 본드 통을 들고 고무 속으로 본드를 주입한다. 다음 패드를 넣고 긴 막대를 이용해 쑤셔 넣고 에어로 홀을 뚫고 재단이 완성된 제품을 다음공정인 프레스공정으로 넘겨준다. 이렇게 반복적인 작업으로 4분마다 한 묶음씩 해서 하루 1,000개 이상 2시간 잔업 때는 1,300개 이상 해야 된다.
갈수록 손목통증이 심해지고 손가락 관절이 아파와 주먹조차 쥘 수가 없었다. 종일 힘든 노동에 지쳐 밤에 수면을 취해야 하지만, 팔이 저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몇 번이고 깨서 손목이며 손가락을 주물려야 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재단을 하다가 그만 둔 여성노동자들이 많았으며, 일하다가 통증을 호소해 다른 공정으로 옮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손목통증으로 숟가락 젓가락을 잡을 수 없었다는 현장 동료의 말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밤새 뜬 눈으로 지새고 아침에 주먹을 쥘 수 없는 손으로 가족들 아침밥은 고사하고 아침식사 조차 거른 채 출근해서 중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작업하다가 통증이 너무 심하면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일을 해야 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계속 복용하다보니 몸이 자꾸 붓기 시작했다.
통증에 시달리는 내가 안쓰러운 남편과 주변사람들은 그만두기를 권했고 현장 동료들은 관리자한테 부탁해서 다른 공정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해보라고 했지만 작업 공정이 개선되지 않는 한 어느 누가 와서 일을 해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작업환경을 개선하여 노동자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고 현장 들어온 목적이라 여기면서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나기를 참고 기다렸다.
작업 환경개선 요구
3개월 수습기간이 끝나자 나는 다니던 병원에서 진단서를 발급받고 산재신청을 위한 재해경위서와 그동안 준비한 사진자료를 회사에 제출했다. 당황한 회사는 요구조건을 물어봤고, 나는 손목통증은 병원치료를 받으면 되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작업환경개선을 요구했다. 여성노동자 손으로 철심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철심재단을 해줄 것을 요구했고 회사는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조금씩 기계로 재단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애초 약속과 달리 기계재단이 쉽지만은 않았다. 기계로 재단하면 공정하나가 추가되기 때문에 한사람의 인원이 더 필요하다. 인건비로 이익을 챙기는 하청업체에서 작업 환경 개선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 기계로 철심재단을 하더니 생산물량이 바쁘고 하니 손 재단을 해야 했다.
산재신청을 하겠다고 하고 나니, 가끔 공장을 방문해서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너스레를 떨던 공장장이 나만 보면 얼굴이 굳은 채 돌아가곤 했다. 관리자 역시 내가 부담스러운지 꺼려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에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 하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재단 공정을 해봐서 손목통증을 당했던 동료들은 잘했다고 격려를 해주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틀 전 대리가 와서 설까지 손 재단을 하고 설 쉬고 와서 기계로 재단 할 예정인데 센스가 맞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면서 최선을 다해 기계로 재단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한다. 그러나 회사가 약속을 지킬지는 의문이다.
죽음의 공장
심각한 것은 재단공정 뿐만 아니라 공장 전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환기 시설이 없는 공장안에서 재단한 고무를 200-300도 프레스 열에 ‘주입제’라는 고무덩어리를 넣고 고무를 녹여 붙이는데 이때 시커먼 연기와 가스가 눈에 보일 정도로 발생한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일하니 그 연기와 가스를 작업자가 그대로 마시면서 일한다. 고무를 녹여 붙이는 온도가 얼마나 높은지 매서운 한겨울에도 프레스공정 노동자들은 얇은 티 하나 만 입고 일하고, 무더운 여름에는 40도가 넘는 기계온도로 온몸에 땀띠가 범벅이라고 한다. 기계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와 유독성 연기 때문인지 몰라도 프레스공정을 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마른편이다.
다음으로 심각한 공정은 고무에 홀을 뚫는 작업이다. 에어를 이용하여 고무에 홀을 뚫는데 이때 고무가루가 날려 환기시설이 안 되는 공장안으로 뿌옇게 쌓이지만 매서운 바람이 들이닥치니 창문을 열어 둘 수도 없다. 여름에도 홀 뚫는데 햇볕이 들어와 눈금이 보이지 않는다고 창문을 닫고 고무가루를 입으로 다 들이마시면서 일한다고 한다.
내가 들어가기 얼마 전 10년 정도 다니던 여성노동자가 폐암으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나이 먹어서 암이 걸렸다고 회사와 현장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작업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암에 걸린 여성노동자는 홀을 뚫는 공정 담당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동료들한테 마스크 착용을 권해봤지만, 매캐한 고무 냄새 속에 수년 동안 일해 온 노동자 대부분은 비염 또는 축농증으로 후각이 둔하고 마스크를 착용하면 숨쉬기가 어렵다고 마스크 착용을 안 한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은 화장 때문에 더욱 마스크 착용을 꺼려한다.
회사는 번창하고 노동자는 병들어가고
우리 회사는 10년이 된 기능공도 최저임금인 4,860원을 받고, 이제 들어온 신참도 4,860원을 받는다. 저임금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계를 위해 마련된 최저임금제도가 사업장에서 최고임금으로 둔갑해 노동자들을 길들이고 있다. 아무리 힘들게 한 달 동안 일해도 세금공제하고 나면 100만원도 안되니 회사와 관리자한테 잘 보여 잔업한대가리, 특근한대가리 더해야만 몇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고 여기고 회사를 위해 과잉충성(?)을 하는 노동자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여성노동자들이 많은 사업장이다 보니 별의별일이 다 있다. 회사에서는 이를 이용해 과잉충성을 하는 사람한테 남모르게 몇 만원씩 더 지급하나보다. 그래서 우리 공장은 완장 없는 관리자들이 수두룩하다.
현장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회사는 더 기고만장이다. 고무가루와 유독가스를 그대로 다 마시면서 일하는데 기본적으로 지급해야 할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는다. 답답하면 사서 착용하라는 식이다. 두 장씩 끼고 일하는 장갑도 한 달에 10켤레 밖에 주지 않는다. 일주일씩 끼고 일하다 보면 손에서 쉰내가 다 나고 손톱에 시커먼 고무 때가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하기야 재단가위를 자주 갈면 오래 못 쓴다고 가위를 자주 갈지 말라고 해서 관리자와 한판 싸운 적도 있다.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기본적으로 비치해야 되는 화장실 화장지조차 헤프게 쓴다고 한 달에 1개씩 지급해주고 있을 정도로 짠돌이 회사다.
알고 보니 우리공장은 정관공단에서도 짠돌이라고 소문이 난 00고무의 자회사이다. 이렇게 노동자를 푸대접해서 번 돈으로 또 다른 공단에 수천 평의 땅을 사서 새로 공장을 짓고 아들 3명한테 한 개씩 공장을 물려주고 그래도 남아서 아들친구까지 명의를 빌려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공장은 번창하고 확장할수록 현장노동자는 가스배출시설이 없는 공장안에서 유독가스와 고무가루를 마시며 조금씩 자신의 건강을 잃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노동자들이다. 고용이 불안한 요즘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게 어디냐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이 아프고 고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변하게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예전 같으면 노동조합 가입도 쉬웠지만 복수노조 허용이후 소수의 몇 명이 노조가입하면 회사는 관리자를 대동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이용해 노조를 만들기 때문에 노-노 간의 갈등이 되기 때문이다.
하청사업장의 노동자가 건강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으면서 일 할 수 있도록 긴 호흡을 갖고 나 혼자의 활동이 아니라 노동자 스스로 필요성을 깨닫고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일한지 이제 6개월이 되어 간다. 아직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못했지만 한노보연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일터 작은 창문 너머로 수많은 작고 허름한 공장사이로 깨끗하고 높은 건물 하나가 눈에 훤하게 들어온다. 바로 고용노동부 동부지청과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건물이다. 그 건물 뒤로 지금 이 순간에도 다치고, 공장에서 쫓겨나고, 임금이 체불돼 사는 게 막막한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아직 하루하루 버거운 노동을 나 스스로 이겨내는 게 급선무인 요즘이지만, 남루하고 허름한 죽음의 공단, 죽어가는 하청노동자가 아니라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자본에 저항하며 투쟁에 연대하고 지역노조를 갈망하던 그 옛날 노동자의 생명이 살아있던 그때가 그립다. 다시 그런 공단으로 생명을 키우고 꽃을 피 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30년 전 처음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처럼 한 마리 애벌레가 되어 다시 현장에서 나의 남은 삶을 소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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