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4월|문화읽기] 택시 노동자에게도 멋진 하루를

일터기사

택시 노동자에게도 멋진 하루를

한노보연 재현

요즘 경기도 수원에서 해고된 민주노조 지회장 동지의 복직을 요구하며 200일 가까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경진여객 시민대책위에 한노보연도 함께 하고 있다. 노동자 다수가 한국노총 소속인 사업장에서 민주노조 깃발아래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의 노동, 건강권 실태에 대한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첫 차 운행을 위해 새벽 4시쯤 일어나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참으면서 운전하고 새벽 2시는 돼서야 집에 돌아온다는 버스 노동자의 일상을 듣고 마음이 참 무거웠다.

사납금은 불법이에요!
그런 찰나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하루 동안 택시 노동자가 되어 시민들을 만났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택시 노동자들의 일상을 함께 나누고 애환을 들었던 ‘멋진 하루’ 편이 방영됐다. 방송 말미에서 멤버들이 택시 노동자의 하루 일상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알게 되었다고 하여 방송을 찾아서 다시 보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무한이기주의를 표방하는 무한도전답게 멤버들간 경쟁을 부추기는 미션이 있었다. 택시 노동자가 된 무한도전 멤버 중 수입이 가장 적은 사람이 다른 전체 멤버들의 사납금을 한 번에 내는 것이었다.
사납금은 택시 운행에 필요한 정비요금, 보험료 등의 경비를 이유로 회사가 택시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돈을 의미한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하나. 사실 법에서는 사납금과 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납금 제도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 업종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관행으로 정착해있다. 회사가 사납금을 납부하는 근로계약서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에도 나오듯 사납금은 하루에 평균 10~12만 원 정도다. 회사로서는 매일 안정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니 계속 사납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방송 시작부터 사납금으로 영 찜찜했다. 이러한 불법행위를 마치 당연한 제도인 듯 자막으로 친절하게 사납금을 설명하다니!

필요한 것은 준법정신인가
친절한(!?)사납금 설명이 끝나고 택시 운전에 앞서 멤버들은 선서를 했다.
1. 우리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2. 우리는 승차거부와 합승은 절대 하지 않는다.
3. 도로교통법은 반드시 준수한다.
이 선서가 현장에서는 얼마나 무의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에 1만원 벌까 말까 한데 사납금은 채워야하는 현실에서 신호를 지키고, 추월하지 않고, 장거리 승객을 태우기 위해 승차거부하지 않는 운전이 가능할까?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현실은 안중에도 없고 택시 노동자들에게 준법정신을 강요하고 승객 안전에 대해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는 “하루 공치세요”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서 잠깐 얘기했던 심층 면접을 진행했던 경진여객도 다르지 않았는데 1년 동안 본인이 도로교통법을 몇 번이나 위반했는지 물어보는 설문에 1,000,000번이라고 적은 노동자가 있었다.(오타가 절대 아닙니다!!!) 배차 시간을 맞추고 승객들을 빨리 태우기 위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 교통법규를 위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배차 시간도 못 맞추고 화장실도 갈 수 없다.
방송에서도 출발한지 두 시간이 지나서야 손님을 태웠다. 택시 운전 중간 중간 멤버들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들린 주유소에서 만난 다른 베테랑 택시 노동자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얼마나 요즘 택시 경기가 얼마나 힘든지 확인 할 수 있었다.
“보통 하루 20시간은 일하고 2시간에 2만원도 못 벌어요.” “한 시간에 평균 3,000원에서 5000원 번다고. 손님이 없어” “연료 값도 안 나와” “하루수입에 1/3이 기름 값이여. 그러니 젊은 사람들은 매일 밤을 샌다고” “손님은 없는데 그렇다고 갈 곳도 마땅치 않으니 같은 동네를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돈다고”
한편 택시 승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부부였는데 버스 노동자인 남편이 운전을 하고 퇴근하다 무자비한 놈에게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하셨다. 그런데 병원이 갑갑해서 일찍 퇴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남편분이 “택시는 부지런하면 좀 괜찮다고 하던데?”라고 말한다. 이 버스 노동자는 비정규직이다. 1년에 한번 재계약을 해야 하니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서 힘들단다. 또한 항상 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니 아내를 비롯해서 가족들이 늘 염려하게 된단다.
얘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정말 병원이 갑갑하셔서 일찍 나왔을까? 버스 노동자들 대부분의 노동조건을 봤을 때 이는 사실이 아닐 것 같다. 아무리 사고를 당했더라도 대부분 비정규직 버스 노동자들은 회사를 오래 쉴 수 없다. 정식으로 병가를 받아서 병원에서 요양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자신의 연차를 사용해서 며칠 쉬고 다시 일하러 나오기 일쑤다. 한 달에 들어가는 생활비는 고정되어 있으니 일을 쉬면 이를 감당 할 수가 없다. 택시에 탄 남편 분은 택시를 탈 때부터 몸이 불편하셨다. 교통사고 이후 얼마나 완쾌했는지 알 수 없으나, 여전히 몸이 불편해보이던데 지속적인 치료와 휴식이 필요하지는 않았을까. 매년 회사와 재계약을 해야 하는 지금의 일자리를 잃으면 다른 곳에 취직하기 쉽지 않은 지긋한 연세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선택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무엇이겠는가?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죽을병은 아니니 아파도 일하는 수밖에.

훈훈한 방송, 멋진 하루?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되어 10시간가량 운행을 마치고 멤버들이 처음 미션을 시작했던 장소로 모였다. 각자 하루 수입을 공개했다. 1위를 기록한 멤버의 수입은 9만원이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몸은 고단한데 밥 값, 기름 값, 사납금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하루다. 뒤를 이어 멤버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택시 기사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외로움․고독과의 싸움이다” “생리현상 참는 일이 정말 힘들더라” “밥값이 비싸서 밥을 먹을 수가 없다”
그렇다. 하루 온종일 그 좁은 차 안에서 화장실 가기도 쉽지 않고, 다리 한번 마음 편히 뻗지 못하는 노동, 외롭게 홀로 라디오를 벗 삼아 운전해야하는 노동이 얼마나 고될까. 하루에 몇 백번은 넘어야하는 방지턱에 목과 어깨, 허리에는 얼마나 무리가 왔을까.
방송에서는 멤버들이 택시라는 공간에서 일반 시민들을 만나고 그/녀들의 애환을 듣고 함께 공감하는 하루였다고 해서 ‘멋진 하루’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방송 이후 각종 언론매체들에서 방송이 아주 훈훈했다, 무한도전다운 소소하고 정감 있는 따뜻한 방송이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이 일상인 택시 노동자에게도 ‘멋진 하루’인가. 택시노동자들에게 더 나아가 운수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멋진 하루’ ‘멋진 삶’ ‘건강한 삶’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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