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4월|연구소리포트] 발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실태조사 연구 2

일터기사

발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실태조사 연구 II

한노보연 콩

2012년 10월 경 발전 공기업 5개사에 노동강도와 건강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설문지를 배포했다. 총 6,337명의 노동자 가운데 1,104명이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 참여자 중 여성은 49명이었고 95.5%에 해당하는 대다수는 남성이었다. 나이는 40대가 약 45%, 30대가 36%를 차지했으며 평균 나이는 40.4세였다. 이 중에는 발전노조 조합원 뿐 아니라 비조합원(기업별 노조의 조합원 포함)도 절반을 차지했다. 참여율은 조합원 1,051명 중 49.7%, 비조합원 5,286명 중 9.1%였다. 설문을 통해 파악된 발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건강 실태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뽑아 요약해보았다.

* 편집자 주 : 지난 호에 이은‘발전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건강실태조사 연구’두 번째 글로, 설문조사 결과와 연구소의 제언을 4월호에 싣는다.

잠 좀 제대로 자봤으면
발전 노동자들은 수면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평소 수면에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5% 미만이고, 30% 가량은 그저 그런 수준, 절반가량은 만족스러운 잠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중등도 이상의 주간 졸림증이 있어,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졸음이 와서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받고 있다.

설문 참여자 3분의 2는 교대근무, 3분의 1은 통상근무 형태로 일한다. 교대 형태는 4조 3교대를 기반으로 하되 일부는 변형된 4조 2교대 형태다. 교대근무자들은 낮 근무에 비해 밤 근무를 할 때 수면의 양이 6.5시간에서 5.1시간으로 현격히 줄어들었다. 수면의 질이 나쁘다는 경우도 주간 근무 때 27.5%에서 야간 때 57.5%로 두 배 이상 많아졌다. 통상 수면 장애는 교대 근무를 오래 할수록 점점 심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설문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평균 근속 14.9년, 평균 교대근무 기간 9.4년이 되는 발전 노동자들의 수면 건강 실태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몇 년 뒤에는 얼마나 더 악화될지 걱정스럽다.

60%가 우울증 의심
발전 노동자의 정신건강에도 빨간 불이 확인된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사용하는 우울증 간이 설문을 조사했더니 설문 참여자 열 명 중 여섯 명이 우울증으로 의심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좀더 폭넓게 정신건강을 평가하기 위해 사회심리적 스트레스(Psycho-social Wellbeing Index) 지표를 조사한 결과 건강하다고 판정된 경우는 3.6%에 불과했고, 25.6%는 고위험 스트레스군, 나머지 70%는 잠재적 스트레스군으로 드러났다.
인간다운 노동 조건은 단지 노동시간의 길이나 작업장 환경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과 삶이 얼마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발전 노동자들은 평소 일하지 않는 날이면 운동을 하거나 TV를 시청한다. 그러나 38.3%는 피곤해서, 22.4%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여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아무리 교대근무를 한다지만 2교대도 아니고 3교대를 기반으로 하는데, 하루 8시간 근무가 그렇게 피곤할까 의심을 품을 법도 하다. 그런데 일 때문에 일상생활 중 어떤 것에 방해를 받는지 묻자, 놀랍게도 50% 이상이 “쉽게 잠들고 깨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꼽았고, 사회생활이나 모임, 가족과의 유대에도 지장을 받는다는 응답이 40~50%에 달했다. 절반가량의 노동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이들의 노동조건에는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한편 발전 노동자들 중 30%는 현재의 수입이 생활하기에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평균 부양가족 수가 3.3명인 40대 노동자들에서 경제적 필요가 충족되지 못하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에서“비용 부담 때문에 여가시간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노동자들이 20%를 넘은 데서도 알 수 있듯, 경제적 필요가 얼마나 잘 충족되는지는 노동자의 사회적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다.

대근, 더 심각해지기 전에 눈여겨봐야
발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평균 8.2시간, 일주일이면 40.1시간으로 거의 균일하다. 다만 야근이 한 달 평균 일곱 번이고, 대근은 한 달 평균 한 번꼴이다. 설문 참여자들 중 43%는 대근을 하지 않았으니, 실제로 대근을 경험한 노동자들만 따로 평균을 내면 월 평균 1.6회라고 할 수 있다.
대근을 자주 하는 노동자들은 노동강도를 비롯해 각종 건강 지표가 뚜렷이 악화된다. 가령 대근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 중 업무를 마칠 때 육체적 소진감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경우는 32.7%지만, 대근을 월 3회 이상 하는 노동자들은 56.4%로 훨씬 많다. 낮 시간에 졸음이 쏟아져 일상생활이나 작업을 안전하게 하기 어려운 주간졸림증도 대근 횟수가 많을수록 심각하며, 우울증이나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 지표도 마찬가지다.
대근이란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일하는 것이다. 누군가 사정이 생겨 출근을 못할 경우,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다른 노동자가 출근해서 일하는 것이다. 3교대를 하는 경우 앞 조의 노동자가 퇴근을 미루거나 뒷 조의 노동자가 출근을 앞당겨 8시간을 더 일해야 하니 16시간 연속 근무를 하는 셈이다. 2교대인 경우는 24시간 연속 근무가 된다. 발전 노동자들 중 절반 이상은 두 달에 세 번 꼴로 이런 대근을 하고 있다.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현재 인원은 적정수준의 69.4%에 불과
대근이 발생하는 까닭은 인력 배치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발전 설비를 담당하는 현장의 인원 배치도를 보면 한 블록, 즉 수십 미터 높이의 발전 시설 한 채의 현장설비와 제어를 총괄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집채만한 보일러와 터빈과 같은 핵심 설비의 운전도 한 두 명이 맡고 있다. 이들 중 한 명이 출근하지 못하면 전력 생산을 할 수 없으니, 집에서 쉬어야 할 다른 노동자가 불려나와 일을 하게 된다. 발전 노동자들이 마땅히 쉴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필수 공공재인 전력이 이처럼 불안한 조건에서 생산된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전력 생산에 단 한순간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온 나라가 들썩이는지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하루 일을 마칠 때면 늘 육체적으로 소진된 기분이라는 경우(38%)보다 정신적으로 소진된 기분이라는 경우(45.3%)가 더 많았다.
이런 문제들의 배경이 되는 인력 부족은 발전 노동자들의 81%가 입을 모아 호소하는 노동조건의 대표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다. 일손이 모자라니 노동자 한 사람의 업무량은 너무 많다. 설문 참여자의 4분의 1은“안전하게 일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인원이 부족한 걸까? 설문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적정 업무량과 적정 인원을 조사하여 현재 업무량과 현재 인원을 환산하니“적정 수준의 1.5배에 달하는 업무량을 적정 수준의 70%도 안되는 인원이 담당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람이 모자라니 아파도 좀처럼 쉬지 못한다. 설문 참여자 중 35.3%는 지난 1년 동안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데도 어쩔 수 없이 출근한 경험이 있었다. 평균 7.7일이나 된다. 이런 상황이 오래도록 쌓이면 건강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일에 쫓기다보니 근무 중 사고도 잦다. 설문 참여자의 30%는 지난 1년 동안 일하다가 한번 넘게 사고를 겪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아파도 참고 사람 모자라면 대근을 뛰면서 몸으로 때워왔지만,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설령 몇 년을 이렇게 더 버틸 수 있다한들, 그로 인해 훼손될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발전소의 역병, 현장탄압
이번 설문조사 참여자들 중에는 발전노조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절반씩 섞여있는데, 노동강도 강화의 주요한 원인에 대한 진단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거의 비슷하다. 순위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전력산업분할과 민영화 정책>, <경영평가 등 일상적인 구조조정>, <부당 강제전출 등 노조탄압>, <외주화 및 보직통합>, <실적중심평가와 경쟁강화하는 경쟁보직제> 다섯 가지를 핵심적인 문제로 지목했다.
이 중 노조탄압의 경우, 설문을 통해 확인된 그 규모는 다른 어떤 사업장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엄청나다. 설문 참여자들 중 무려 38%가 해고나 <구두상 협박 혹은 반성문, 서약서, 사직서 강요>, <감봉 등 경제적 징계>, <인사위 혹은 징계위 회부>와 같은 징계를 경험했고, 해고 경험자만 해도 7.4%에 달한다. 본래의 근무지에서 강제로 전출된 경험자들도 27.5%에 달한다. 특히 노동조합 간부나 대의원 활동을 했던 183명 중 절반은 징계와 강제이동을, 22%는 해고를 경험한 적이 있다.
발전 노동자들은 근무지 강제이동으로 인해 일상생활과 직장생활에 두루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강제이동 경험자들은 당연히 그 악영향을 더욱 강력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경험해보지 않은 노동자들도 80~90%는 강제이동의 악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특히 강제이동 경험자의 88%, 비경험자의 74%는 강제이동이 차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별다른 근거가 없었다고 평가했다.
발전 노동자의 60%가 우울증으로 의심되는 현실은 바로 이런 현장탄압의 여파로 보인다. 더 나아가 설문 참여자 가운데 5%가 전력산업 분할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었고 특히 해고나 징계를 경험했던 경우 더 많다는 점, 그리고 설문 참여자 중 8명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는 점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쯤 되면 노조탄압, 현장탄압은 발전소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역병과도 같다고 하겠다.

함께 풀어가야 할 여섯 가지 숙제
이번 조사 사업을 마치며 한노보연에서는 앞에서 확인한 여러 문제점들이 더 심각해지고 그로 인해 발전 노동자들이 쓰러지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풀어가야 할 여섯 가지를 제언하였다.
첫째,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과 발전공기업 구조조정의 즉각적인 중단이다. 국민의 세금을 털어서 민간 발전사의 이윤을 보장해주고 있을 뿐, 경영효율화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추진된 전력산업분할과 민영화 정책은 즉각 중단되고 원상회복되어야 한다.
둘째, 부족한 인력에 대한 즉각적인 충원이 필요하다. 무분별한 인력 감축 때문에 전력 생산의 안정성과 발전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중장기 전력생산 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발전공기업에서 전력생산에 필요한 적정 인력을 산출하여 부족한 인원을 시급히 충원해야 한다.
셋째, 발전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완화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인력감축으로 1인당 설비용량이 급증하고, 2011년 이후 설비용량은 다소 감소했으나 가동률을 늘리는 바람에 다시 생산량이 급증해왔다. 이에 따라 발전노동자들이 경험해온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의 악화를 멈추려면 노동강도를 줄여야 한다. 1인당 현재 업무량의 68.2% 수준이 현재 발전 노동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적정 업무량이다.
넷째, 근무형태 개선 대책을 세워야 한다. 24시간 가동을 멈출 수 없는 발전 업무의 특성상 교대근무는 불가피한 지점이 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발전 노동자들의 수면건강 훼손이 확인되었다. 심야노동을 동반한 교대근무는 수면장애 뿐 아니라 암을 유발하며(세계보건기구), 위장관 질환, 허혈성 심장질환을 일으키고 기존 질환을 악화시키며 공공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근무형태 개선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정신건강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 발전 노동자들의 1/4은 고위험 스트레스 집단이며, 60%는 우울증이 의심된다. 자살의 위험도 심각하다. 노동조건 개선을 포함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여섯째, 위법적이고 반인권적인 노조탄압 행위를 당장 중단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의 정신적 외상에 대한 적절한 치유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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