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4월|특집] 집배원의 죽음, 미담으로 보는 사회(1)

일터기사

<6> 집배원의 죽음, 미담으로 보는 사회 ①
우체국 제복 입은 그들은 우체국 직원이 아니다

집필노동자 희정

2011년 7월, 젊은 집배원이 숨졌다. 동료와 우편물을 배달하던 중, 무릎까지 불어난 빗물에 가려 배수관을 보지 못하고 빠진 것이다. 배수관 물살에 휩쓸려 가면서도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우편물을 동료에게 넘겼다. 이 이야기에 ‘잔잔한 감동’, ‘폭우 속 아름다운 순직’, ‘미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전하는 언론도 있었다.
미담? 29살 밖에 안 된 젊은 목숨이 끊어진 7월 27일은 104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다. 날 맑고 해 짱짱한 날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종일 거리를 헤매다 교통사고로 해마다 300명의 집배원이 다치고 죽는다. 폭우 속에 사람을 그리 보내고, 미담이라니. 그런 미담을 원한다면, 미담의 주인공이 될 이들은 얼마든지 있다.
태풍 볼라벤이 불던 날,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슬레이트 지붕 기와를 보며 배달을 했다는 집배원을 알고 있다. 그 날씨에 배달을 했냐고 물으니, 고작 날씨 때문에 쉰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다들 턱 끝까지 차오른 일에 허덕이는데 동료에게 짐을 지울 수 없어 하루 쉬는 것은 꿈도 못 꾸는 사람들. 이들이 다음 미담의 주인공이다.

전쟁이 따로 없네
올해 직업상의 이유로 사망한 집배원은 6명. 이중 4명이 교통사고, 2명이 과로사라고 한다. 과로사? 편지 배달이 뭐 그리 힘들어 죽기까지 하는 걸까? 나는 그들의 과로를 의심했다. 그런 내게 집배원 윤 씨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침이면, 사람 키를 넘어 층층이 쌓인 우편물 사이를 누비며 담당구역의 우편물을 분류한다. 일반 우편만 2000여 통. 수취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는 등기 우편, 작은 규모의 택배 물품까지 더해지면 종이 무게만 30~40킬로그램(㎏)이 넘는다. 한 짐을 지어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으면 “전쟁이 따로 없네”, 이 말이 절로 나온단다. 그로써 하루 평균 10.32시간이라는 집배원의 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윤 씨의 담당 구역은 2000여 세대. 거대 아파트 단지에 맞먹는 세대 수이다. 한 단지, 한 아파트에 모여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은 다세대 주택에도 살고, 저 달동네 언덕 너머에도 산다.
윤 씨가 경기도 모 지역 우체국에 발을 들인 것은 25년 전. 자전거로 편지를 배달하던 시절이었다. 사람은 적고 일은 많았다. 별보고 퇴근 하는 날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체신부 옆에 딸린 목욕탕에서 자는 날도 많았다. 입사 동기가 10명이었는데, 일이 힘드니 하나 둘 떠나 자신만 남았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텨보자 했다.
15년이 흘렀다. 자전거는 사라지고 오토바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연차가 쌓여가고, 일도 예전보다 수월해졌다. 이제 그는 지역에서 십년 넘게 우편배달 일을 해온 토박이 집배원이었다. 그는 자질구레한 주민들의 민원처리 담당이기도 했다. 법원 우편물 몇 백 통을 배달해본 경험으로 수취인에게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알코올중독이나 기력이 없어 쓰러진 노인들을 119에 실려 보내기도 했다. 아이를 혼자 두어 걱정이 된다는 주민 연락을 받으면 배달 사이사이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주민과 정을 붙였다.
그러나 98년이었다.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대규모 인력 감축이 있던 해였다. 집배원 5742명의 감축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이를 ‘군살 빼기’라고 했다. 목욕탕에서 쪽잠을 자며 일해 왔는데, 군살이라 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 세상은 변해 갔다. 온라인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택배물품을 만들어 냈다. 양도 양이지만, 주고받는 정이 없는 그저 얼마짜리 상품을 전달해야 했다. 예전에는 시골집에서 보내온 감자나 친구에게 주는 선물을 배달했다면, 이제 소포 물품은 ‘경비실에 놓고 가세요’ 혹은 ‘어제 배송돼야 했던 거 아니에요?’라는 소리나 듣는 물건이다. 그에게 물 한 잔 건네던 주민들이 살던 다세대 주택은 재개발 되어 고층 아파트로 변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가 초인종을 누르면 딱딱한 얼굴로 경계부터 한다. 세상은 흉흉했고, 강도들은 툭하면 택배기사나 집배원으로 변장을 했다.
우체국은 날이 갈수록 고객 서비스를 강조한다. 고객 민원에 벌벌 떤다. 민원이 들어오면 해당 우체국의 평가 점수가 감해진다. 그 평가로 성과급 등이 결정되니, 동료들까지 피해를 입게 된다. 심할 경우 동료 집배원들 앞에서 민원이 오게 한 잘못을 밝히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아비판을 해야 한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일은 늘 바쁘기에 놓치는 것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은 줄지 않고, 친절은 하라니 다들 신경이 곤두선다.

우정사업본부장이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 부임 시기 자신의 목표가 집배원들에게 “적어도 9시 저녁 뉴스는 집에서 볼 수 있게 해주자”였다고 한다. 이것은 해줄 일이 아니라 당연히 할 일이지만 여하튼, 집배원들은 9시에도 집에 들어가기 힘든 조건이란 말이다. 일이 넘치니, 아예 6시부터 출근을 하는 사람도 생겨난다. 두세 시간 먼저 나와 일을 시작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것이다. 토요일에 돌아가며 부분 근무를 하지만, 일요일에도 나와 우편분류를 미리 해두는 것이 일상이다. 이것도 명절이나 선거철 같이 배송이 급증하는 때는 소용없는 일이다. 평소의 3배가량으로 물량이 증가하니 주말에 근무를 미리 해두어도 밤늦도록 일이 끝나지 않는다.

장시간 노동은 집배원을 쓰러트린다. 윤 씨는 말했다.

“집배원 되고 대통령 선거만 4번 치렀어요. 대통령 선거 때마다 집배원이 두 명 이상 죽어나가요. 사망 원인이 뇌경색, 심장질환. 과로질환이죠. 이런 걸로 죽어요.”

부재자 관련 우편물, 투표 안내문, 정당 홍보물까지 합치면 3, 4만 통을 훌쩍 넘는다. 하루 100통도 간신히 배송을 마친다는 등기우편을 1000통 넘게 배달하고는 원인 모르게 세상을 떠난 집배원도 있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어떤 집배원이 죽음에 문턱에 가 있는지 모를 일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집배원만 13명
업무량이 늘면 교통사고도 늘어난다.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없다. 오토바이 핸들을 잡는 손이 경직된다. 원래 두 바퀴만 달린 것들은 위험하다. 그것을 타고 급히 움직이려니 사고가 난다. 지난 5년간 교통사고로 사망한 집배원은 13명, 중경상을 입은 집배원은 1520명이다.

윤 씨는 자신의 동료 이야기를 해준다. 다리가 부러지다 못해 아예 허벅지 뼈가 다 부서진 사람이다.

“뼈가 다 부서져가지고, 핀을 많이 박아 놨어요. 겨울 되면 핀 박아놓은 데가 차가워서 시리고, 그 고통이 엄청난 거야. 낙엽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느낌이 온데요. 한 겨울 오토바이 타면요, 아무리 옷을 껴입어도 옷 틈새 사이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는데 시리다 못해 아파요. 핀까지 박은 사람은 더한 거죠. 고통을 참아가며 일을 해야 하는 거고. 그렇다고 우체국 나가면 생계가 막막하고.”

하지만 정작 그가 정작 분노하는 것은, 사고와 후유증이 아니다. 사고에 대한 우체국 태도다.

“동료가 사고가 나면 나는 거고 죽으면 죽는 거지. 그냥 모든 것을 사고가 난 당사자에게 부주의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 해요. 일 년에 2, 3명씩 꾸준히 죽어가도 바뀌지 않고 개인 부주의라고. 사고 난 그때 잠시 교육을 한다고. 사실상 예방 교육이라는 게 주의해라, 교통법규 지켜라….”

자신이 일한 이후 달라진 것은 더 빨리 달리라고 지급된 오토바이와 손으로 적을 시간 없다며 주어진 PDA밖에 없단다. 우체국은 속도와 친절을 강조하지만, 집배원들의 안전에는 마음 쓴 적이 없다. 오히려 그 속도와 친절이 집배원을 병들게 한다. 그래서 섭섭하고 원망스럽다. 분명 찾으면 방법이 있을 텐데. 몇 백 명의 추가 인력만 있어도 덜 죽을 텐데.

1926년에 순직한 고 이시중 집배원의 추도식이 매년 열린다고 한다. 이시중 집배원은 폭우 속에서 불어난 냇물에 편지가 휩쓸려가자, 이를 주우려다가 목숨을 잃은 이다. 그의 희생정신을 기리려 추도식을 연단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지난 지금 반복된 이유로 젊은 집배원이 목숨을 잃었다. 강물에 휩쓸려, 트럭에 부딪혀, 뇌 질환을 일으켜, 반복되어 사람들이 죽어간다. 희생정신을 기리기에 앞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돌아볼 때다.

그래도 우리는 낫죠
윤씨는 집배원 신세를 한참 토로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낫죠.”

자신들보다 열악한 처지의 이들이 있다고 했다. 우체국 택배 배송을 담당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택배기사들의 과다한 업무는 많이 알려진 바였다. 하루 몇 백 건의 택배 물품을 이고 날라야 하는 업무. 그래도 우체국 택배는 우체국 소속이라 좀 낫지 않나 했다.
그런데 우체국 택배는 그냥 택배가 아니라, 위탁 택배란다. 택배 업무를 위탁했다는 것이다. 업무를 위탁받은 이들은 우체국 로고가 그려진 차를 타고, 우체국 집배원 옷을 입지만, 우체국 직원이 아니다. 개인 사업주란다. 우체국은 배송 일에 있어 정규직 집배원 말고도, 상시계약 집배원, 위탁 택배원, 특수지집배원, 그 외에도 일용직 단시간 근무자들을 두고 있다. 다들 계약직, 비정규직, 특수 고용직이다. 이들 수가 40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우체국이 군살을 뺀다며 정규직 집배원들을 수천 명 감축한 그 자리에 들어왔다.
어쩐지 우체국을 통해 택배를 받는데, 한 날은 나이가 있는 집배원이 오고, 한 날은 젊은 사람이 왔다. 한 구역에 두 사람이 번갈아 오는 것을 보고 우체국은 공무원이라 휴가 쓰기가 자유로워 대체 근무를 하는 건가, 생각을 했다. 철이 없었다. 한국 땅에서 돈 벌기가 그리 수월한 게 아닌데 말이다. 오토바이에 실을 만한 작은 물품은 집배원이, 무게가 나가는 제품은 위탁 계약을 한 이들이 배송을 한다. 내가 본 젊은이는 위탁 택배 노동자였던 것이다.
서울에는 관서마다 스무 명 정도의 위탁 택배원이 있다고 한다. 내가 본 것과 같이 젊은 택배원은 흔치 않다고 한다. 위탁 택배원 대부분이 4, 50대다. 젊은 사람들은 들어와 일 년을 버티기가 힘들단다. 일이 힘들어서? 아니라고 했다. 일도 당연히 힘들지만 이직을 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일해도 돈이 벌리지 않는 악순환에 청춘들이 견뎌내질 못한다는 것이다. 돈이 벌리지 않는 까닭은 신기한 취업 구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탁 택배원은 운송회사에서 배송 차를 사고, 물류지원단 소속으로 편입되며, 개인사업주로 신고를 내고, 우체국 물품을 배송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빨간 우체국 차를 사는데 드는 돈은 1500만 원 정도. 2000만 원을 넘어가는 것도 있다. 대부분 시중에서는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중고차다. 그럼에도 비싼 돈을 주고 운송회사를 통해 차를 사는 까닭은, 운송회사를 통하지 않고는 우체국으로 취업이 힘들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뻥튀기된 차량 비용은 취업 수수료이다.
운 좋게 기존에 소유한 차로 일을 시작한다 해도, 개인 돈을 들여 도색을 해야 한다. 우체국 배송차 모양으로 도색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돈을 들여서다. 택배 일 할 때 빼고는 쓰지도 않을 차를 색깔, 모양까지 우체국 입맛에 맞게 바꾸면서도 자기 돈을 들여야 한다. 그들이 개인사업주, 위탁 택배원이기 때문이다.
운송 회사는 차를 웃돈 받고 팔아 좋고, 우체국은 손 안 대고 코를 푸니 좋다. 이런 현실은 또 하나의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데, 택배원들의 업무 촉진이다. 빠듯하게 일한다 치면 하루 150개 정도 배송을 한다. 요즘 같은 김장철에는 20, 30㎏짜리 절인 배추 상자를 들고 뛰어야 한다. 아침 6시에 출근하여 깜깜해져야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잠드는 것이 일상이다. 그럼에도 택배원들은 물량이 떨어질까 조바심을 낸다.
택배 물품 하나당 택배 기사가 받는 수수료는 970원(작년 2주간의 파업을 통해 40원 인상된 금액이다). 이마저 고스란히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몇 천만 원짜리 차를 할부로 샀으니 매달 50~60만 원의 돈이 빠져 나간다. 게다가 차 기름값, 정비값, 점심값 등도 자기 부담이다. 물품이 파손되었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그 손해배상도 온전히 개인 몫이다. 위탁이기에 고객 친절에 따른 성과급은 없지만, 민원에 따른 책임은 있다. 빠져나가는 게 많으니, 혹여 일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몸이 병들어 감을 알면서도 조바심을 낸다. 이 굴레에 젊은이들은 버텨내질 못한다.

택배차에 오르고 내리는 것만 하루 200번
서울 한 우체국에서 위탁 택배원으로 일하는 박 씨는 일하다 다친 곳을 묻는 내게 자신의 동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리가 저려서 병원에 갔더니, 엉덩이뼈 부근이 혈액순환이 안 돼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원인은 너무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우체국 택배 일만 8년을 한 사람이다. 차에서 내리고 올라타는 것만 하루에 200번, 그것을 일주일에 6일, 8년을 했으니 무리가 온 것이다. 이 말을 하는 박 씨도 아침에 일어나면 손이 퉁퉁 부어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단다. 무거운 짐을 드느라 어깨가 결린다, 다리가 아프다, 이런 것들은 애교 수준이다.
정규직 집배원들이 부분 근무를 하는 토요일이면 일은 더 많아진다. 집배원들 담당이었던 소규모 택배까지 이들이 배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로 치면, 우체국 집배원 남부럽지가 않다. 어디선가 과로로 픽픽 쓰러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죽어도 통계가 안 잡히는 개인사업주들이다.
최근 들어 산재보험에 가입되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회의적이다. 박 씨는 산재는커녕 아파 며칠 쉬는 것도 할 수 없다 했다. 반나절만 쉬어도 동료 눈치가 보인다. 뻔히 서로의 업무량을 아는 처지에 짐을 더 지을 수가 없다. 아플 시간이 없어 아프지 못한다는 말이 맞다. 아프질 못하는데 산재법이 무슨 소용일까.
그러나 더 마음 아픈 것은, 이들을 못 본 척하는 우체국이다. 배송하는 것은 분명 우체국 물품이지만, 우체국에 있어 이들은 제삼자다. 죽음도, 병도, 우체국에는 아무 책임이 없다. 그러면서도 하는 말은, “교육 시간에 하는 말이, 당신들은 위탁이지만 우체국 제복을 입고 있고 우체국 물류를 담당하니, 그에 맞는 품위를 유지하라고 이야기해요. 우체국 직원이다 생각하라고. 차별을 이렇게 두면서.”
월요일 아침마다 하는 교육이라고 한다. 그에 맞는 품위? 제복마저 정규직에 1년에 2번 지급되는 것이 위탁에는 1년에 1번뿐이다. 신발은 지급되지도 않는다. 꼭 그리 차별을 둔다. 위탁 택배원 사무실은 지하 주차장 구석에 자리한 가건물이다. 공기는 매캐하고, 온풍기 하나 없어 요즘 같은 날에는 추워 견디질 못한다. 위층 집배원 우편국은 온풍이 짱짱하더라고 말하게 한다. 사람 치사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품위라니. 아무래도 위탁택배원들에게 직업병으로 화병이 추가될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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