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4월|포커스] 2013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끈질기고 침착하게 접근하자

일터기사

2013년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끈질기고 침착하게 접근하자

정리 :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김재광

2002~2003년 금속 제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한 지난한 투쟁과 끈질긴 요구에 의하여 근골격계 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의무가 2003년 하반기 산업안전보건법 제24조, 산업보건규칙 제9장이 신설되어 법제화된 지 거의 10년에 이르고 있다.
사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를 법 시행 1년 이내 즉, 당시 노동부가 2004년 6월 30일까지 완료하도록 했던 것부터 따져보면 많게는 4번째 맞이하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이고, 그 외 사업장의 경우 역시 한 두 번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노동자가 훨씬 많을 것이다. 법적으로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는 모든 사업장이 의무적으로 시행하게 되었으나, 대게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소리 소문 없이 법적으로 필요한 문서만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입법화 이후 10년 가까이 시행되는 유해요인조사에 대해서 이런 저런 회의적 푸념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경총을 필두로 한 자본은 유해요인조사 자체가 회사 뿐 아니라 노측 역시 힘들게 하고 있고, 실제 의미 없는 조사라고 하면서 법률 규정의 폐지 또는 후퇴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일부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잘 활용하기에도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관련 전문가나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형식화되어 사실상 사문화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명하지만, 평론가적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노보연은 지난 3월 말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10년 평가”회원토론회를 진행했다. 본 글은 토론회를 통해 제기된 내용과 문제의식을 정리한 것이다.

입법화의 배경과 취지를 되돌아보자
2003년 당시 유해요인조사의 입법화는 투쟁의 성과이며 동시에 더 이상 진전시킬 수 없었던 한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2002년과 2003년 금속제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었던 근골격계직업병 인정 투쟁을 자본의 입장에서는 유해요인조사의 입법화를 통해 합법적(?)으로 저지해야 했고, 노동 측에서는 직업병 인정 투쟁 이상을 넘어 노동강도 저하 및 현장 통제력의 복원으로까지 투쟁을 확장시켜내지 못하면서 제도적 성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법 조항과 노동부의 11개 신체부담작업 고시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한 마찰은 있었으나, 현재 수준의 제도화는 노자간의 ‘긴장감 있는 절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긴장감 있는 절충’의 결과물인 ‘법 규정’이 영 시원치 않았던 것은 아니다(모든 법제도는 세력 간의 힘겨루기의 결과이고, 2004년을 보자면 결과적으로 노동 측에서는 썩 나쁜 결과도 아니었다). 오히려 산업안전보건 규정 중에 ‘유해요인조사’ 만한 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해요인조사는 특별한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약간의 조력만 있으면 현장 노동자의 참여의 폭을 훨씬 넓힐 수 있고, 정기적 조사 뿐 아니라 작업공정의 변화, 관련 직업병의 발병 등과 같이 비정기적인 조사도 가능하고, 이를 통해 작업 환경을 개선할 여지와 근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 안전보건법의 ‘작업중지’ 규정만큼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권리의 행사와 현장의 단결을 모색하는데 꽤 쓸모 있는 제도인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입법화의 배경과 취지를 돌아보는 이유는 제도의 맥락을 이해하고 잘 활용하기 위함이다. 즉 역동적 투쟁의 결과인 제도화는, 그 자체로 진전된 것이기는 하지만, 투쟁이 소강 국면에 들어서면 노측에게는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해요인조사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대적으로 누구나 쉽게, 그리고 필요한 시기에 조사를 하자고 주장할 수 있는데, 이때 노동의 주체가 자본의 의도대로 더 쉽게 정리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업환경측정에 비해서도 더욱 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노동자가 훨씬 많을 것이며, 법적으로 모든 사업장이 의무적으로 시행하게 되었으나, 대개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거나 소리 소문 없이 법적으로 필요한 문서만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또 하나의 독은 관성화이다. 법제도의 배경과 취지에 대한 환기나 자각의 부재 속에서는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유해요인조사가 ‘계륵’과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안하자니 찝찝하고, 하자니 번거롭고, 결과를 보자니 부담스러운 그런 것 말이다. 물론 몇몇 사업장과 지역에서의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장도 있으나, 앞서 언급한 부정적 경향성이 상당히 지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에 서있나
그렇다면 유해요인조사와 연관된 근골격계직업병 문제는 현재 어느 위치에 서있는 것일까?
첫째, 여전히 제도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근골격계직업병에 관련한 예방의 한 방법으로, 그 한계의 논란을 차치하고,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후 10년이 지나도 그 의미에 있어서는 원칙적으로는 동일하다.
둘째, 유해요인조사와 그 입법화의 배경이 되었던 근골격계직업병 투쟁이 적어도 금속제조사업장에서 활력 있는 투쟁의 주제가 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인 듯하다.
근골격계직업병 집단요양투쟁과 유해요인조사는 노동강도 강화와 이에 대한 대응이라는 논리적, 현실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본 역시 이에 대한 대비도 미비하였을 뿐 아니라, 도덕적(?) 동요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계속 되는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노동 측은 노동강도 문제,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에 있어 오히려 더욱 더 심리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후퇴하고 있고, 자본에 입장에서는 직업병 인정이나 유해요인조사에 있어 제도적 대비를 함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해 유리한 고지에 서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해요인조사나 근골격계 직업병문제를 투쟁이나 운동으로 상승시키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임은 분명하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금속제조사업장의 전반적 분위기에 경도된 판단일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장 노동자의 대규모 투쟁과 운동의 폭발적 상승만이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 현재로써는 10년 전과 같은 폭발적 투쟁으로 운동의 상승국면을 만들기에는 주체 상태가 빈약하고 자본은 만만치 않은 한편, 그동안의 투쟁의 역사와 법제도의 활용은 정체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이유로 유해요인조사와 그에 따른 모색 전체를 현실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기각할 이유는 없다. 유해요인조사제도 도입의 배경과 취지를 각성하면서도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폭발적이지는 못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 일상성의 유의미한 맥락을 잡아야 한다.
일상성의 맥락을 잡는 것에 첫째는 당연히 ‘때가 되면 조사를 하는 것’이다. 가능한 현장 노동자가 참여하고 관여하는 것이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거나, 조사 이후 어떻게 할 힘이 없다는 것 등등은 그 다음 문제다. 돌이켜보건대 1990년 초 작업중지권이 입법화될 때, 경총은 ‘일상적 파업권’을 운운하며 반대하였지만, 결국 현장에서 행사되지 못하거나 안함으로 인해 사실상 사장된 제도가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동이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자본이 제도의 유명무실을 운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노동자가 이 제도를 잊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로 현재 유해요인조사의 효과적 활용과 노동부의 11개 부담 작업에 대한 문제 제기를 끈질기게 계속해야 한다. 물론 직업병 인정기준, 안전보건법의 적용 등 적지 않은 노력이 지속적으로 되고 있으나, 형식적 조사와 허술한 관리 감독에 대한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한편 연구 및 조사에 있어 항상 현장의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실행하는 것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보기 좋은 연구조사 보고서가 아니라 현장을 개선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현장 노동자들과 공감하고 다짐하는 과정으로 연구조사 사업을 조직해야 한다. 만일 과정에서 이러한 연구 방법론으로 인하여 현장의 노동주체와 갈등하게 된다면 과감히 토론하고, 조사연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기획된 투쟁도 중요하지만, 투쟁 이후 이것을 치열한 일상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근골의 시대를 갔어”라는 식의 푸념은 그만하자. 일면 맞다. 예전의 근골투쟁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강도와 구조조정, 그리고 골병은 노동현장의 일상으로 늘 같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유해요인조사를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질기고 침착하게 접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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