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4월|현장의 목소리] 장애등급제 폐지, 권리보장법 제정으로 완성하자!

일터기사

장애등급제 폐지, 권리보장법 제정으로 완성하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남병준
(namtoosa@naver.com)

4월 20일은 정부가 정한 소위 ‘장애인의 날’이다. 1년 364일을 차별과 억압에서 신음하는 장애인들을 위한답시며 온갖 행사와 감동의 이야기들을 보여주며 또 한 번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만의 날이기도 하다.
2001년 이동권 투쟁을 통해 자신들의 당당한 권리와 투쟁의 의미를 자각한 장애인들은 2002년부터 장애인에게 강요된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날’로 부르고, 강력한 민중연대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2013년 420공동투쟁단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비롯한 5대 요구를 선명하게 제시하고 투쟁하고 있다. 또한 지난 해 8월 21일부터 지금까지, 무려 8개월간 광화문역 해치광장 앞 지하도에서는 장애인단체와 빈곤단체들이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한국의 장애인복지의 바탕을 이루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 운동은 그만큼 어렵고, 기나긴 과정이 요구되지만 투쟁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장애등급제 폐지’ 문제가 장애인계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지난 2010년부터였다. 정부가 장애등급을 재심사하면서, 장애등급이 떨어지면 복지가 떨어져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 장애인들의 공포와 분노는 극에 달했고,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하는 등 강력한 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장애등급제는 1988년, 일본의 방식 그대로 한국에 도입되었다. 장애인복지제도는 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데, 현재 정부는 15가지 장애유형을 지정하고 있고, 장애가 중한 정도에 따라 1급부터 6급까지, 예를 들면 000씨는 시각장애 1급, ◯◯◯씨는 지체장애 4급 등으로 등록이 되도록 하고 있는데, 장애등급제란 바로 이것을 말한다.
장애인이 장애인복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장애유형과 등급 요건을 충족해서 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1급 또는 2급 정도의 중증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야만 유리하며, 가구소득기준으로 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층에 속하여야만 그나마 알량한 장애인복지제도를 기대할 수 있는 현실이다.

정부는 복지를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에게 제한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이라며 장애등급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복지를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과 ‘의료적 기준의 기능손상 정도’는 일치하지 않으며, 장애인의 생활환경과 욕구를 배제하는 획일적 행정을 야기할 뿐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장애등급재심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등급기준이나 등급심사를 강화하는 간단한 방법만으로 복지예산을 마음껏 줄이면서 효과적으로 불만을 통제할 수도 있는 장치이다.

15가지 장애유형에 속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장애가 있어도 장애인복지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개인마다 다양한 환경과 욕구가 있지만 의료적 기준의 등급기준이 모든 것을 정하는 장애등급제도는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장애인연금 등 현행 장애등급에 따라 지급대상을 정하는 제도들은, 사실 등급기준이 아니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될 일이다. 개인에게 복지가 제공되는 과정에서 의료적 상태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환경이나 욕구 등이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인데, 한국의 장애인복지제도는 장애등급제로 인하여 지금도 구시대적 행정편의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몸에 등급을 매겨 구분하는 낙인화’의 문제가 있다. 인간의 몸에 등급을 매기는 행위 자체가 반인권적일 뿐 아니라, 장애인은 손상된 몸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장애의 사회적 관계를 철저히 은폐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2010년 <장애등급제폐지와 사회서비스권리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를 점거하고 농성투쟁을 진행하면서부터 철옹성 같았던 구시대적 복지시스템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는 장애판정제도 및 장애관련 서비스 개편을 위하여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을 구성하고 장애인계와 논의를 진행하였고, 장애등록 및 판정제도 방안에 관한 연구도 시행이 되었다.

2012년 8월 21일 장애인운동단체와 빈민운동단체로 구성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광화문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을 진행하면서, 장애등급제 폐지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지난해 말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당선자를 포함한 모든 후보자들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장애인공약 1번으로 약속한 것이다.

수십 년간 장애인의 권리를 짓눌러온 장애등급제는 이제 무너지기 직전이다. 이제는 장애등급제 폐지의 대안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 정부는 1~3급을 중증으로, 4~6급을 경증으로 구분하여 이름만 바꾸는 기만적 대책을 추진하려 하고, 장애인계는 수십년간 장애인을 짓눌러온 구시대적 복지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장애인단체들은 (가칭)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여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에 관한 근본적 패러다임과 복지체계를 변혁하기 위해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연대(준)>를 구성하고, 지난 3월 15일 장애등급제에 관한 장애인계 대토론회를 진행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를 개인적 신체의 결함으로 규정하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를 사회적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또한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 혹은 가족의 부양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가치관과 구조를 없애고자 한다.

시설보호가 아닌 탈시설화 방향을 명시하고 인권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옹호 제도를 도입하고자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등급과 가구소득기준에 의한 2열 종대 선착순 복지가 아닌, 개인의 환경과 욕구에 따른 개인별 지원체계를 만들고자 한다.

장애인의 몸에서 등급의 낙인을 없앨 때, 비로소 감춰진 인간의 권리가 드러날 것이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
– 존 맥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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