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5월|기자회견문]삼성반도체 온양공장 뇌종양 사망노동자 故이윤정님 추모1주기 윤정씨에게 바치는 추모사

일터기사

[기자회견문]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뇌종양 사망노동자 故이윤정님 추모1주기
윤정씨에게 바치는 추모사

윤정씨, 당신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벌써 1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늘 우리는 당신의 유해가 모셔진 납골당 앞이 아니라, 당신의 죽음의 이유를 감추고 있는 삼성 앞에 모였습니다.
어느 죽음이 서럽지 않겠냐마는 서른 둘의 짧은 인생,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남기고 간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서러움이 북받쳐 옵니다.
하필, 당신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6년 밤낮을 꼬박, 반도체 칩을 검사하면서 정체모를 검은 분진이 설비 안에 쌓이면 아무렇지도 않게 에어건으로 불어주면 그만이었습니다. 뜨거운 챔버를 열 때면 고약한 냄새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고작 냄새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었습니다.
후배 명화씨가 일하다 갑자기 쓰려져 회사에 나오지 않고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문만 파다했을 때에도 당신은 일을 멈출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런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다만 교대근무는 너무 피로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6년간 일한 반도체 공장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생기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습니다. 가난을 벗어나 이제 좀 살 만한가 했더니…하필 2010년 5월 어린이날, 당신은 악성뇌종양 중에서도 악성이라는 교모세포종을 진단받고 길어야 1~2년밖에 못산다는 청천병력 같은 소릴 들어야 했습니다.
그제서야 당신은 의심을 했습니다. 백혈병 아니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린 명화씨도 떠오르고, 함께 입사한 동료 두 명이 뇌종양인 것도 떠오르고. 하지만 도대체 그 무엇이 몹쓸 종양을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먼 나라 미국의 반도체공장 노동자들도 뇌종양이 많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뿐.
항암치료로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간신히 붙잡고, 10년 전에 일한 반도체 현장의 모습을 하나하나 백지에 적어, 산업재해 신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과 역학조사 기관은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무엇 때문에 뇌종양이 걸렸는지 아픈 당신이 증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고약한 일이 있을는지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어떤 정보도 내놓지 않으면서도 절대로 산재가 아니라는 삼성이나, 아픈 노동자가 산재임을 증명하라며 2년이 넘도록 재판을 받고 있는 현실의 벽은 참으로 견고하고 모집니다.
당신을 억울하게 떠나보내고 명화씨마저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는데 진상규명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죄스럽습니다. 당신의 죽음 앞에 삼성의 사죄의 한마디 받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은 참 못났습니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님에 이어 55번째 죽음이 된 삼성노동자 고 이윤정님! 당신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싸움에 대해 새롭게 결의를 다집니다.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뇌종양으로 숨져간 이들이 70명이나 밝혀졌지만 세상이 그리 놀라지 않음에, 언론의 무관심에, 삼성의 거대한 돈의 힘 앞에, 삼성만의 정부에 더 이상 우리 노동자들을 빼앗길 수 없다고, 산재인정을 넘어 건강하고 평등한 노동세상 앞당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노라 다짐합니다. 편히 쉬소서.

2013. 5. 7.
고 이윤정님을 추모하며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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