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5월|문화읽기]무엇이 정답일까? – 신우섭의 『의사의 반란』을 읽고

일터기사

무엇이 정답일까?
– 신우섭의 『의사의 반란』을 읽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김정수

『일터』에 대단치 않은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지 대략 2년쯤 되어 간다. 초반에 서평을 썼던 책 중에 일본의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 교수의 『면역혁명』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암과 만성질환의 근본적인 원인을 자율신경계의 교란과 그로 인한 면역기능의 장애로 설명하고 자율신경계 교란(특히 교감신경 우위 상태)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현대인의 장시간 노동, 과로를 지목한다. 또한 기존의 서양의학의 질병 중심, 증상 중심, 약물 중심의 치료 방식은 대부분의 질병에 대해 증상 중심의 약물 치료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질병을 키운다며 맹공을 퍼붓는다. 아보 도오루 교수의 이론과 서양의학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실제 아픈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혹시 우리나라에도 그런 방식으로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있는 의사가 있는지 자못 궁금했는데 더 이상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안성의료생협 안성농민의원에서 진료를 하게 됐다. 수 년 전부터 원주의료생협에서 가정방문 의료상담을 지속하며 기회가 닿으면 의료생협에서 직접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안성의료생협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게 됐다. 안성의료생협은 국내의료생협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으로 안정적 운영이 담보되는 기관이다. 의료생협 소속 의료기관이 6개(의원 세 개, 한의원 두 개, 치과의원 하나, 재가장기요양기관 하나), 의료인이 15명(의사 7명, 한의사 5명, 치과의사 3명)이나 되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의료생협의 맏형이다. 나는 전공의 수련 이후 주로 건강검진센터에서 근무를 해온 터라 환자 진료 경험 자체가 많지 않아 처음 한두 달은 기본적인 것을 익히는데 온 힘을 쏟았다. 주로 OCS(처방 전달 시스템)프로그램,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기본적인 만성질환에 대한 약 처방, 감기나 복통 등 흔한 질환에 대한 약 처방, 건강검진센터에서 의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위내시경을 배우고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두 달이 지나 기본적인 업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문득 의료생협의 진료가 다른 일반 병의원의 진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잉진료를 하거나 부실진료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불필요하게 항생제나 스테로이드 제제를 처방하지 않고, 수익을 위해 비보험 진료를 남발하지 않고, 대기실에 환자가 북적여도 진료실을 찾은 환자가 궁금해 하거나 하고픈 말이 있으면 다 들으려고 애쓴다. 나도 늘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의료생협 소속 의사선생님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의료생협 의사의 급여는 다른 병의원 의사의 절반 수준이다.) 성심성의껏 진료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기존의 서양의학의 질병 중심, 증상 중심, 약물 중심의 치료 방식”이라는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칙에 충실한 교과서적 진료를 하면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의 경우 다른 일반 병의원에 비해 약물을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그래서 다른 병원에서 혈압이나 당뇨가 잘 조절되지 않는다고 찾아오는 환자들도 꽤 있다.)
혼란스러움이 없지 않으나 진료 업무는 아직 초보라 일단 열심히 배운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진료를 하던 와중에 우연히 신우섭 선생님의 『의사의 반란』이라는 책을 알게 됐다. 이 책은 올해 4월 초반 1쇄가 발행된 따끈따끈한 새 책이다. 신우섭 선생님은 의정부에 있는 오뚝이의원의 원장으로, ‘약 없는 임상의학회’ 회장이자 채식하는 의료인의 모임인 ‘베지탁터’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오뚝이의원은 의정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의료생협 전환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신우섭 선생님의 질병과 인체에 대한 이론은 아보 도오루 교수의 지론과 대동소이하다.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질병은 염증반응 형태로 나타나는데 염증 반응은 우리 몸이 병들거나 다쳤을 때 손상된 조직에서 나오는 노폐물을 제거하고 정상적인 조직을 재생하기 위해 혈류를 증가시키는 노력이고 그 과정에서 통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런 염증을 소염진통제와 같은 약물로 억제하는 것은 증상을 억누르기만 할 뿐 우리 몸을 회복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의 경우 교감신경이 우위에 있고 이런 상태에서는 우리 몸 구석구석에 필요한 혈액의 공급이 어려워져 스트레스에 의한 병들이 발생하므로 부교감신경을 끌어올려 교감신경과의 균형을 맞추어 혈액순환이 원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식사 조절로 장운동을 촉진해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논리에 따라 신우섭 선생님은 만병을 이기는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현미밥 먹기, 천천히 먹기, 좋은 소금을 충분히 먹기(지나친 당분 섭취를 줄이기 위해), 아침밥 먹기, 물 많이 먹지 않기, 찬물로 씻기, 창문 열기(춥게 지내기), 약 끊기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제시된 것들 중 일부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만 일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좋은 소금을 충분히 먹기나 약 끊기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런 것은 현대의학의 기본적인 전제를 완전히 뒤집어엎는, 말 그대로 ‘반란’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달간 배우고 익히느라 정신없던 각종 약 처방이 질병의 근본적인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건강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얘기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겨우 몇 달 되지 않은 내가 이 정도인데 그렇게 십 수 년을 진료해 온 의료생협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실제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를 생각하면 신우섭 선생님의 제안을 따르기가 매우 힘든 경우도 있다. 특히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힘겨운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노동자에게 생활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의료전문가에게 의존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동의할 수 있으나 그것이 지나쳐 개인적인 노력으로 생활습관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는 좀 과도한 듯하다. 장시간 노동, 과도한 노동,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고용에 대한 불안이 만연해 있는 사회에 살면서 올바른 생활습관은 쉽게 만들 수도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 나도 아직 모르겠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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