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5월|특집]자본주의와 노동시간

일터기사

자본주의와 노동시간

노동시간센터(준) 김경근, 김보성, 김형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는 “노동시간센터(준)”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갖는 정치경제학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구소 회원뿐 아니라, 외부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결합하여 노동시간센터(준)를 구성하였다. 현재 노동안전보건센터(준)는 노동의 현장통제력을 노동안전보건을 통해 실현해온 두원정공사례연구, 철강산업과 공공분야 교대제 관련 연구,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과 노동자 삶의 변화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더불어 한달에 1회 노동시간 관련 세미나를 수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일터>의 지면을 통해 세미나의 발제, 토론 내용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번호에는 지난 4월 26일에 진행한 첫 번째 세미나의 발제, 토론의 내용을 싣고자 한다.
첫 번째 세미나의 주제는 “자본주의와 노동시간” 이었으며, 5개의 글을 읽고 토론한 결과를 정리해 보았다.

1.1) 강내희. 1999.「노동거부와 문화사회의 건설」(p.15~44).『문화과학』 20호.
1.2) 강내희. 2011.「시간의 경제와 문화사회론」(p.196~223).『마르크스주의 연구』 8권4호
2) 최형익. 2005.「4장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시간 기획」(p. 83~120), 「5장 부르주아적 시간기획의 현상학: 근대 사회의 노동양식」(p. 121~178).『칼 마르크스의 노동과 권리의 정치이론』. 한국학술정보.
3) 신병현. 2012. 「사라진 노동자의 시간들」 (p.50~57). 『문화과학』 69호.
4) 주은선․김영미. 2012. 「사회적 시간체제의 재구축 : 노동세계와 생활세계의 변화를 위하여」(p.237~283). 『비판사회정책』 34호.
이번 세미나에서 참고한 자료는 아래의 5가지이다.
다섯 개의 글 중에 강내희의 글은 단연 공격적이다. 그는 1999년의 글에서 자본주의사회가 “노동사회”임을 비판하고 바람직한 비자본주의사회의 모습으로 ‘문화사회’를 제시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을 업으로 삼지 않으면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의미에서 노동사회이다. 노동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영업이건 임금노동이건 노동을 전업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고, 이 결과 삶의 모든 것이 노동에 종속되고 노동의 하위 범주가 되고 만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하루는 임금을 벌기 위한 노동시간에 종속된다. 반면 문화사회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삶이 어려워지지 않는다. 즉, 삶이 노동에 의해 전적으로 포획되지 않는 사회이다. 문화사회는 또한 타율적인 삶을 강요받는 사회가 아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을 하며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타율적인 시간이며, 소비생활 또한 타율적으로 영위된다. 문화사회에서의 목표는 자아의 실현이다. 강내희(1999)는 이러한 문화사회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자세로 ‘노동을 거부하는 태도’를 제시한다. 노동거부에서의 노동은 임금노동, 직업노동을 의미한다. 기술 발전으로 사회적 필요노동 시간이 축소되었기 때문에, 이에 따른 과실이어야 할 자유시간을 노동자계급이 획득해야 하며, 이 자유시간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노동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강내희(1999)는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자본 등의 지배 세력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서 문화사회 건설을 막는 ‘노동윤리’ 또는 노동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은 흔히 노동예찬론의 형태를 띠거나 인간해방은 노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입장으로 나타난다. 노동을 통하여 자아 충족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한 오늘의 실제 상황을 고려할 때 노동을 통해 인간해방을 이룬다는 관점을 수용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지금 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만 끝내지 않고 노동을 희소화하여 노동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생존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맥락에서 노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은 자본의 지배 전략에 휘둘린 결과라고 주장한다.
강내희(1999)는 문화사회 건설의 조건으로 첫째, 선물 교환과 상징적 교환의 복원. 즉, 임금노동, 직업노동이 전제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들과 삶의 방식들을 찾아내고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자유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시간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노동거부의 사상이 필요하다. 또한 노동시간 단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소득 개념을 활용하여 임금과 소득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상징적 가치들이 교환되는 사회적 교환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적 공공영역을 구축해야 한다. 즉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적 소득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사회적 교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2012년의 글에서는 자유시간의 확보를 위한 물적 기반은 이미 마련되었고, 자유시간을 진정한 자유시간으로 만들려면 몇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 조건으로 첫째, 가치의 사용가치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간의 자유시간으로의 대폭 전환이 함께 일어나야만 한다. 노동시간은 가치 생산을 위해 투여되는 시간이고, 자유시간은 사용가치 생산을 위해 투여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둘째, 새로운 권리 투쟁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기본소득 요구와 같은 소득보장 운동이다. 사회적 공유에 대한 인류의 보편적 권리에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셋째, 과도한 노동시간으로부터 면제되고 소득이 보장된다고 해도 자유시간이 진정한 자유시간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자기-주체화가 요구되며, 이 때 중요한 것이 문화의 역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시간경제의 논리에서 도태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을 일차적인 주체로 상정하면서도 이러한 운동의 조직 가능성과 방법, 노조 운동 등 기존 운동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또한 문화사회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가교로서 소득보장 운동을 제기하고 있지만, 소득보장 운동에 대해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는 비판들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소득보장운동이 현실적으로 기존 부르주아 복지국가 후퇴에 대한 저항을 뛰어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의 가교를 놓는 전략이 될 수 있는지, 또한 고도화된 자본주의 시간기획에 포획되지 않고 자기-주체화/문화화될 수 있는 여지와 방법이 있는지 검토될 필요가 있다.
최형익의 글은 자본의 노동시간 기획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저항이 생산관계 내에서 필요노동의 가치를 확장시키는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산관계 밖에서 보편적 생존/생활의 권리 투쟁을 조직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 자동화 공장 생산양식은 이를 위한 토대-단일 고등교육을 통한 보편노동자의 양성, 생산기술의 고도화와 이에 따른 생산성의 비약적 향산-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권리투쟁의 토대로서 노동자계급의 보편성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 최형익은 보편적 교육체계와 노동체제의 연관성, 즉 보편적 교육을 통한 유연한 범용 노동력의 양성이 자본의 시간기획을 전지구적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며, 역으로 이러한 상황이 노동자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권리 요구를 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노동자들은 차이들을 담지하고 있으며, 자본은 노동통제와 비용절감을 위해 그러한 차이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차이들을 섬세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분절노동시장론, global value chain, 혹은 Peck 등 노동지리학자들의 논의를 참고) 예컨대 현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에서 노동시간 단축 요구나 유급 휴가의 확대 요구는 법제도적인 권리요구를 할 수 있고 또 그러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일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만 연관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노동운동의 패퇴, 노동내부 분절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현재, 보편 노동자와 보편 권리에 대한 주장은 허상적 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또한 보편성에 대한 위의 지적과 관련하여, 현대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을 자동화된 공장 생산으로 일반화하여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급운동의 전략을 도출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현대 자본주의 하에서도 많은 노동은 자동화된 공장 생산체제의 외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자본 역시 이윤 확대를 위해 생산방식과 노동형태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산업구조조정과 결부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이주여성 가내하청 노동의 증대 등이 사례가 될 수 있다. 노동시간과 자유시간의 이분법, 생산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작업장과 그 외부라는 이분법에 대한 검토 역시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상품화하고 임노동을 확산시킨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지만, 임금노동에 기초한 자본주의 분석과 이에 기반한 노동운동의 전략 도출은 다른 형태의 수많은 노동활동을 그림자 노동으로 만들어 분석 범주에서 배제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예컨대 대표적으로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 등. 그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와 최형익의 자본주의 시간기획 분석은 ‘시간=화폐’라는 근대적 시간개념의 틀 내에서 전개되는 논의라 할 수 있다. 최형익이 주장한 보편적 권리주장 요구_새로운 권리정치 운동은 현실 노동세계에서 드러나는 차이들과 주장의 분석틀이 전제하고 있는 근대적 시간개념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지할 때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보편적 요구란, 현존하는 노동자 분할/위계 구도에서 낮은 위치들에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신병현은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시간 장기화의 불균등한 분포를 지적한다. 즉, 노동자 범주별로 노동시간의 분포가 불균등하여 범주별 차이를 제대로 식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재의 노동시간 장기화는 과거와 다르게 장시간 노동의 증가가 아닌, 개별 노동자의 여러 단시간 노동의 결합을 통한 노동시간의 증가이며, ‘노동시간의 장기화’에 영향을 미친 것은 공장의 변화라고 주장한다. 예전에 공장은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적 가능성을 품고 있던 노동자들만의 고유한 장소였다. 그런 공장이 이제는 시간계산, 임금계산의 논리가 주도하는 화폐의 장소로 환원되고 말았다. 공장이 국가와 자본에 의한 통치의 장소로 단순화된 것이다. 이로 인해 정규직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잔업과 특근에 매달리고 2~3개 일을 이어서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시간의 장기화에 맞추어 일자리 나누기를 하자는 정책은 노동과정의 기술적 변화와 수량적 유연화라는 존재론적 불안의 근원을 제대로 직시하는 접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신병현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라 노동시간이 일상생활로 연장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로 인해 노동의 착취가 무한히 연장되고 무상으로 착취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이후 사라졌던 민주노조 정치가 이제 다시 비정규 단시간 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소들에서 노동자 지성으로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주은선은 근대 직선적 시간 체제의 경험에서 벗어나서, 즉 자본과 국가의 시간 구획에 종속된 삶으로부터, 삶 자체의 향유를 가능하게 하는 시간체제로의 전환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으로 자유의 영역을 확장하는 시간정책을 제시한다. 기준 노동시간 단축, 유급휴가 증가, 단시간 노동의 확산 등을 주장한다. 특히, 단시간 노동 확산은 실업 감소, 고용률 증대에 부응한다. 또한 개인의 자기계발 양립 가능성과 충분한 돌봄, 특히 생애과정에서의 피크타임에 대한 대응 능력을 제고시킨다.
그러나 이 정책이 가지는 고용 불안정화 및 노동조건 하락 가능성은 경계의 대상이다.
다음으로, 생애 전반에 걸친 시간 재배치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시간 총량의 변화와 구분되는데, 장기적 시간 지평에서 일과 여가의 선택에 유연성을 가지도록 정책적 설계를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시간계정’이다. 생애 시간 사용 조정 정책은 노동자의 필요에 따른 자율적 시간 사용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노동과 삶의 균형을 증진시키고, 시간에 대한 노동자 주권을 확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확대(소득보장제도 확충, 공공사회서비스 확충, 보편적 수당의 확대)를 통한 소비의 공공화 전략이 노동시간 단축과 결합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주은선과 김영미의 글은 자본주의 시간경제에 대한 제비판들을 모두 껴안으며, 제도주의적 관점에서 사회적 시간체제의 재구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의 제안과 실현에 있어 자본주의 사회의 세력관계가 작용한다는 점에서 분석의 맹점이 존재한다.
다음달에는 “노동시간 단축 vs 소비주의 : 미국 사례 살펴보기”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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