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6월|기획]노동시간 단축은 왜 중단되었는가? – 미국의 경험

일터기사

노동시간 단축은 왜 중단되었는가?
– 미국의 경험

노동시간센터(준) 김경근

이번 호에는 지난 5월 31일에 진행한 두 번째 세미나의 토론 내용을 싣고자 한다. 두 번째 세미나의 주제는 “노동시간 단축 vs 소비주의 : 미국 사례 살펴보기” 이다.

안정옥. 2002.『현대 미국에서 “시간을 둘러싼 투쟁”과 소비적 현대성』.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학위 논문.
벤자민 허니컷. 2011.『8시간 vs 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이후.
이번 세미나에서 참고한 자료는 다음의 2가지이다.
두 글은 공통적으로 “왜 노동시간 단축이 중단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노동시간 단축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1910년대 하루 8시간 노동이 보편화되고 1930년대에는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그 후 노동시간은 40시간에서 더 이상 줄어들지 않았고,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197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더 늘어나기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가장 단순한 답은 아마도 “더 이상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 때 노동운동의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가 노동시간 단축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목표는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지 않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허니컷은 시리얼을 만드는 켈로그의 역사를 살펴보고, 안정옥은 미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살펴본다.

8시간 vs 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켈로그는 1930년 하루 6시간 노동을 도입한다. 기존의 8시간 3교대제에서 6시간 4교대제로 전환한 것이다. 경영진은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여가 확보와 실업률 감소라는 점에서 이를 환영했다. 하지만 1950년대부터 사측은 8시간으로의 복귀를 추진했고, 부서별 투표를 통해 조금씩 전환되어 결국 55년 만에 6시간 노동은 사라지고 만다. 허니컷은 경영진의 전략과 행위를 살펴보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의식과 정서에 주목한다. 8시간으로의 복귀가 투표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은 곧 노동자들이 6시간을 거부하고 8시간을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2시간 더 일하는 것을 선택했을까?
1950년대부터 8시간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일돼지’)과 6시간을 지지하는 노동자들(‘독불장군’)은 계속해서 의견 대립을 보여준다. “일과 여가 중 어떤 것을 우선하는가”, 그리고 “돈과 시간 중 어떤 것이 중요한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8시간 노동자들은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했다. 그들은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더 익숙했고, 더 떳떳했고, 가정에서 대접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노동에 대한 보상은 오로지 돈으로 받길 원했다. 이에 반해 6시간 노동자들은 일하는 것보다 ‘자유시간’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추구했다. 그리고 돈 말고도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세미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루어졌다. 우리네 노동운동에서 “노동해방”은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리라. 그런데 “노동해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해진 것도 사실이다. ‘일돼지’들처럼 장시간 노동과 고임금을 추구하는 것이 충분한 답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명확해진 듯하다. 하지만 ‘독불장군’들처럼 일터에는 관심을 끈 채 자신의 여가시간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여가시간에 공동체적이고 연대적인 활동이 가능했던 당시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현재 그런 조건이 주어져있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 부분은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세미나에서도 계속 논의될 지점이다.

생산성의 정치와 소비주의의 등장
켈로그의 ‘일돼지’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잔업․특근을 통해 돈을 더 벌어들이는 것에만 주력한다. 이것은 그들이 유독 이기적이거나 돈독이 오른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의 변화와 관련이 있음을 안정옥이 보여준다. 그러한 변화는 바로 “생산성의 정치”, 그리고 “소비주의”의 등장이다.
미국 노동운동은 1950년대부터 보수화․우경화되기 시작한다. 이는 노동조합 지도부가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생산성의 정치“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 이면에는 냉전과 노동법 개악이라는 제약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도부의 실리주의적 접근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경제적 지표를 임금결정요인으로 받아들였고, 노동조건 개선 등의 다른 사안들은 배제한 채 임금인상에만 주력했다. 지도부에게 경제성장은 고임금을 확보해주고 나아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따라서 경제성장에 저해가 되는 노동시간 단축을 포기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한편 1950년대부터 노동자들의 소비 형태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은 집, 자동차, 가전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여가는 상업적인 방식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비주의의 확산은 예전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는 남성들의 노동시간의 증가, 나아가 주부들의 신규 취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역사는 한국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여가가 상업화되고 가족중심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총 노동시간 단축은 진전이 없었지만 주말과 휴가는 점점 늘어났다. 즉 평일에는 더 길게 일하지만 주말에는 가정에서 여가를 즐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노동자들의 교류와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핵가족 문화가 등장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상업화된 여가 산업이 발달했다는 것.
즉, 노동자들은 개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높아진 소비기준은 다시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총 노동시간 자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줄이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최근 ‘시간제 노동’이나 ‘노동시간 계좌제’와 같은 유연성 강화에 기반한 노동시간 단축 논의들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여, 노동시간 단축의 바람직한 방식에 대해서 앞으로의 세미나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의 현실로 한걸음 더
노동시간 단축의 성공/실패, 혹은 노동시간 배치의 변화는 개인의 자아성취 방식, 가족 관계, 작업장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변화는 노동조합 나아가 노동운동의 변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세미나는 자연스럽게 현대자동차와 두원정공에 대한 논의들로 이어졌다. 두 글이 담고 있는 쟁점들은 실제로 한국의 노동시간 단축 운동,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과 직결되는 문제들이었다. 두원에서 교대제 변경 이후 3년여 동안의 변화들은 한국 노동시간 단축 운동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볼 수 있는 실험실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차에서의 교대제 전환 과정에서의 여러 우여곡절은 한국 노동운동의 현 주소를 진단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지난 세미나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을 탐색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세미나는 미국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다음 세미나에서는 한국의 현실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것이다.
일터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