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장애인의 성(性)의 닫힌 문, 이제는 열자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2020. 천자오루 저. 강영희 역. 사계절
정경희 선전위원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을 처음 펼쳐볼 때, 솔직히 ‘아차’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장애가 있는 환자의 배뇨기능은 중요하게 다뤘다. 하지만 배뇨기관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성 기능’에 대해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화엔 공감하면서도, 이들의 성적 욕구는 그보단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왔단 것도 부정하긴 힘들다. “앗, 왜 그동안 장애인의 성에 대해선 인식하지 못했을까?”라는 반성과 “이제라도 장애인의 성적 인권에 대해 외면하지 말자”라는 다짐이 뒤섞인 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의 서평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성(性)’을 솔직하게 다룬 책을 접해본 건 아주 오래전의 ‘아야툰’이 고작인 나였지만, 책 속 구체적인 사례들은 단순히 은밀하거나 가벼운 쾌락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인의 성적 교감이 젠더와 소수자의 인권적 측면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제기해, 전혀 낯 뜨겁지 않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물론 노안으로 눈이 쉽게 피로해져, 독서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기존 교육체계와 사회복지시스템, 사회적 여론은 여태껏 장애인을 무성애자나 성별을 지운 존재로 취급해왔고, 집단 시설화에 맞춘 돌봄의 편의를 추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행한 적이 거의 없거나 성폭력 예방이란 명분으로 성기를 적출시키는 등 장애인의 성적 욕구를 사력을 다해 봉인해왔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장애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 돌봄에서 그들의 성적 인권을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 보여준다.
우선 저자는 지적장애인에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능력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들의 신체와 욕망을 있는 그대로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특수학교 학생의 필요에 맞는 권한을 부여해, 그들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성교육 설계 역시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학생이 자신의 필요를 요구할 능력을 기르고,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유린당하거나 억압받는 상황을 강력하게 거절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책에선 지적장애인 M과 F 부부가 연애와 결혼, 출산의 시기를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동행한 류진웨이 사회복지사가 등장한다. 해당 사례를 통해 지적장애인 부부가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를 걱정할 게 아니라, 우리의 사회시스템이 이들을 돌볼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질문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적장애인 부부의 출산과 육아는 불가한 일이 아니며, 이는 지원과 복지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장애인의 일상은 돌봄의 편의를 이유로, 수시로 사람들 앞에 노출된다. 루게릭병으로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샤오치의 사례는 장애인의 성적 발달과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장애인 역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장애인의 자위, 섹스 등 지극히 사적인 권리를 위한 시공간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도우미들에게도 인식돼야만 한다.
장애인의 성에서도 젠더차별은 여지없이 존재한다. 대만정부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독자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장애여성은 64.56%로, 51.82%의 장애남성보다 많다. 자궁경부암검사를 받아본 장애여성도 없었는데, 병원에 마련된 진료대에 지체장애여성이 올라갈 수가 없어서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젠더차별 역시 만연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돌봄제공자로서, 장애여성은 해당 역할에 있어 실패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다큐멘터리 영화 속 소아마비로 인해 휠체어를 탄 여성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어 섹스할 때 불을 켠 채로 하고, 들리지 않아 성관계 시 내는 소리가 너무 커 이웃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한다는 청각장애인의 이야기. 움직일 수도, 눕지도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고심 끝에 시각장애인을 불러 체위를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에선 그간 우리가 접하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장애인의 성과 사랑에 관한 수많은 사례를 소개한다. 그중 장애인이 운영하며, 장애인의 신체적 해방을 넘어 신체에 대한 자기 비하와 초조함을 벗어나 평상심을 갖고 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다변화, 시도, 혁신을 바라보는 지식과 태도를 돕는 대만 성 서비스 자원봉사단체 ‘손천사’가 기억에 남는다.
일본,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체코 등의 국가에선 합법적으로 성교육을 받은 도우미를 통해 유료 성서비스를 제공한다. 덴마크의 사회서비스법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개인도우미는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성적 필요에 따른 도움을 포함해 협조하도록 명시한다.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민간에서 유료화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그렇다 해서 이것이 우리가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얘기하지 않아야 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장애인의 성적 권리보호에 대해, 이를 어떻게 사회시스템에 구축할 것인지에 대해 더욱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장애인 역시 성적권리를 누릴 자유가 있는 인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