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활동가 운동장] 죽음을 딛고 일어선 건설노동자의 웃음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재밌어야지!”

일터기사

죽음을 딛고 일어선 건설노동자의 웃음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재밌어야지!”

전재희(회원,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실장)

산재 사망 끊이지 않는 건설 현장
2022년 1월 3일 시무식을 하러 마석모란공원에 가는 길, MBC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고 김다운 전기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 이어 1월 11일 HDC 현대산업개발 광주 화정아이파크 신축 현장에 붕괴참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올해 들어 9월 26일 현재까지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 7만 조합원 중 5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
었다. 이젠 지역 동지들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오면 반갑기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제발 누가 죽었다는 전화는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건설현장은 참혹하다.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법 시행일이 설 명절과 겹치면서 유례없는 일주일, 보름짜리 명절 연휴가 건설현장에 있었다. 아마도 건설현장에서 산재사망이 없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설사 자체 판단에 따라 어떻게든 1호는 피하고 보자는 의도로 보인다. 그럼에도, 중처법을 앞두고 원청 건설사 스스로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겠다고 나서는 등 안전에 대한 분위기는 확실히 달랐다.

노동안전, 현장 활동부터 제도 개선까지
건설노조에서 올해 신설된 노동안전보건실(이하 노안실)은 수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게됐다. 나 역시 노안실은 처음이라 긴장과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노안실에선 4.28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건설노동자 안전하게 일할 권리 쟁취 3.1 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3.1’이란 3가지 노동안전보건에 참여할 권리와 1가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캠페인이었다. 3가지 권리 중 작업중지권을 보장받기 위한 신고센터도 개설했다.
큰 결과가 난 것은 아니지만 건설노조에 노동안전보건실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걸 알리는 계기는 되었다. 이후엔 산업재해 발생 보고 양식을 만들고,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들과 회의를 하고 수련회를 가고, 국회토론회를 벌였다. 또, 전봇대를 오르내리며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해온 12명의 서울 지역 배전 노동자들이 집단 근골격계 산재 신청도 있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생긴다. 토목건축 노동안전보건 담당자들과 폭염기를 맞아 LH 현장 23군데의 편의시설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한 현장별로 하루에 172명 정도의 건설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에 화장실은 고작 2.5개 정도 뿐임이 드러났다. 최근 신축 아파트 인분 파문은 공분을 일으켰는데, 즐비한 고층 건축물 공사 현장엔 대변기가 없다. 일주일에 한 층씩 건물을 올려야 하는 노동자들이 20~30분 거리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도 참다못해 남성 화장실에라도 들어가 볼 일을 본 후 똥독에 오른 여성 노동자, 거리가 먼 화장실 가다가 수차례 자신의 옷에 실례한 남성 노동자. 현장별로 화장실 숫자를 세고, 사진을 찍고, 냉방장치 유무를 살펴 자료를 만들었다. 자료가 하나하나 올라올 때마다 짜릿했다. 취합 결과를 놓고 호주 등지의 사례를 살펴보니 매 층에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과 휴게실을 설치한다는 걸 알게 됐다. 노동조합은 매 층마다 화장실과 휴게실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생명과 가까운 노동안전보건 활동
나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텔레그램에 올라오는 현장 노동안전보건위원이자 형틀목수 노동자들의 활동 공유다. 오늘은 ‘난간 견고성 확인, 고속절단기 보조덮개 갖추도록 보완 지시, 외부 갱폼 구획 설정 횡대 보강 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역시 답은 현장에 있다. 현장 노동안전보건 활동가들이 있는 곳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실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게 하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건설현장 안전을 위해 건설안전특별법도 제정해야 하고, 중처법 시행령 개악 시도도 막아야한다.
활동을 하면서 ‘나의 행복이 1순위’란 생각을 되새기고 굳힌다. 노동안전보건실은 죽음과 가깝지만, 생명과도 가까운 곳이었다. 그간 신경 쓰지 않았던 각종 질환을 알아야 하고, 각종 법령을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하는 건 내겐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영영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다. 반면,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며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동지들, 노무사 동지들, 단체 동지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이전보다 더 현장에 가까워지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본능적으로, 의식적으로 매일 결의한다. ‘오늘도, 내일도 재밌어야지!’

2일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