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 유노무사 상담일기]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다

일터기사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다

유상철(노무사, 노무법인 필)

노동이 되지 못 한 예술
한 청년이 사무실을 찾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상당히 위축된 모습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상담자는 예술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른 프로젝트에서 3D 작업을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대학에 재학 중인 후배 2명을 소개해 주었다. 3개월 정도 지나 후배들의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얼마 후 후배들과의 자리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다. 매주 월, 수, 금 3일 동안 10시~20시까지 일했으나 월급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담자는 예술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일자리를 소개해 준 책임을 지고 본인이 일정한 금액을 지급할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 예술대학교 산학협력단과 교수, 조교 등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일자리를 소개해 준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안타까왔다. 상담자가 예술대학교 산학협력단 담당자에게 항의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당사자들이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을 제기하는 방법 등 구제방안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흔히 예술인들 사이에서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등 노동착취가 만연한 것은 권력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대응을 진
행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현실을 직감한 상담자는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는 것 같았다. 근로기준법 위반은 범죄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근로기준법 위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예술인들 사이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노동착취는 너무도 만연한 상황이다. 조심스럽지만 예술인복지재단 등 예술인 관련 권리구제 기관을 찾아가는 것은 꼭 해야 한다는 말로 씁쓸하게 상담을 마쳤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시행, 특징과 우려
2022. 9. 25.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이 시행되었다. 제정에 속도가 붙었던 배경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예술인 미투운동 등 폭넓은 범위에서의 권리 침해의 현실이 반영되었다. 예술인 복지법보다 적용 대상을 확대하여 예술인의 창작(기획과 비평 포함), 실연(연습과 훈련 포함)을 포함하고 있다. 성격 측면에서도 예술 활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예술인)에 대한 권리 보장적 측면이 강하다. 주요 내용은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 보장, 예술의 자유의 침해 금지, 예술지원 사업의 차별 금지, 예술지원사업의 공정성 침해 금지, 예술 표현의 자유 침해 금지 등이다.
독특한 것은 노동관계법과 달리 ‘예술인의 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2조 정의 규정에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사회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김재광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전 소장은 한 방송에서 사회적으로 ‘노동자’보다 ‘근로자’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근면하다는 기준은 사용자가 세운다. 얼마나 일하느냐가 아닌 얼마나 부지런하냐에 방점이 있다.”라고 말하였다. 굳이 예술인의 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예술 활동에 대해 근면·성실을 요구하는 ‘근로’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독특한 조항은 ‘예술인조합’에 관한 사항이다. 특정 예술 활동에 관하여 특정 예술사업자 또는 예술지원기관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체결을 준비 중인 2인 이상의 예술인이 자신의 권리보호를 위해 단체(예술인조합)를 구성하고 문화체육부에 신고하면 단체를 통해 계약 내용의 변경이나 계약조건에 대한 협의를 요청할 수 있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계약 체결은 단체가 아닌 예술인이 하게 되며 협의 요청 권한만 부여했다. 즉, 노동조합이 아닌 단체를 만들어 예술사업자 등에게 계약조건 등에 관한 협의를 요청할 수 있으나 단체행동을 할 수는 없다. 정당한 이유 없이 예술인조합과 협의를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경우 예술인보호관에게 신고,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구제 조치, 시정 권고를 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그나마 예술인 사업자와 집단으로 협의할 수 있는 공식 채널이 마련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법률적 권한이 없는 예술인조합의 실효성에는 의문이 든다. 제한적이지만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을 통해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노동과 복지 등 직업적 권리를 신장하며, 예술인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를 보장하고 성평등한 예술 환경을 조성하여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한다는 취지가 현실에서 구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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