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유노무사 상담일기] 어떤 노무사들, 노노모 20주년을 보내며

일터기사

어떤 노무사들, 노노모 20주년을 보내며

유상철(노무사, 노무법인 필)

지난 9월 『어떤 노무사들 –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의 20년 이야기』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노노모’ 소속 회원들이 매일노동뉴스 ‘노노모의 노동에세이’에 실었던 글과 지난 20년 동안 ‘노노모’의 주요 활동을 모은 책이다. 과연 어떤 노무사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노무사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노동자 권익 보장을 위해 ‘노노모’에 가입하는 노무사들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기 전 노동자 권익 보장을 위해 노동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노무사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지인들 소개로 몇몇 법인과 노동조합에 있는 선배 노무사들을 찾았다. 수습 자리도 구해야 했고 선배 노무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아~ 저렇게 살아갈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강해졌다. 내심 존경의 마음과 부러움까지 들었던 것 같다.
얼마 후 노무사회에서 진행하는 집체교육에서 또 다른 노무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공통으로 어떻게 하면 기업에 영업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노동부 등 관청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등을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처럼 얘기했다. 사실상 직업윤리를 저버린 자기 자랑이었다. 돈만 많이 벌 수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무의미한 교육이 반복되었다. 수습 노무사들 앞에서 어떻게 저리도 뻔뻔할 수 있을까 하는 한탄만 되풀이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적극적으로 노동자들의 권익 보장을 고민하는 노무사들이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노노모’였다. 당시 나는 개인 노무사 사무소에 취업한 상태에서 기업자문도 했었기에 노노모 가입은 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때 노동부 체당금(대지급금) 사건을 진행하면서 담당 근로감독관의 기고문을 대리 작성한 적이 있었다. 기고문을 써야 하는데 감독관이 바빠서 못 쓰고 있다며, 조만간 사실상 도산인정 심의가 개최될 예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원고를 대신 써달라는 압박이었다. 고민하는 나에게 사무소 소장은 “그냥 쓰면 되지 뭘 고민하냐!”라며 어깨를 툭 쳤다. 내가 고민했던 이유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금채권 보장법의 요건에 충족되기 때문에 당연히 도산 사실인정이 되어야 하는 상황인데 감독관이 불편한 요구를 하는 상황이 싫었다. 무엇보다 감독관이 노무사를 대하는 태도는 봉건시대 지주가 마름을 대하는 것처럼 거리낌이 없었다. 이 일을 겪은 후 개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이후 김재광 노무사와 노무법인 필을 개업했다. 고민 없이 바로 ‘노노모’에 가입했고 지금도 회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무사로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노노모’
『어떤 노무사들』 책을 보며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노노모’ 회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주고 길을 밝혀주었던 선배 노무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더불어 이 모임에 함께 하는 후배 노무사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과거 임금체불 사건을 진행할 때, 노동부 감독관들의 “노무사님이 만약 사용자 측 대리를 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보다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노사 양측 대리인 노무사들끼리 적당히 성공보수 나눠 가지자는 의미가 강한 것이다. ‘노노모’ 소속 노무사로 살아가면서 “전 사용자 측 사건 하지 않는데요”라고 단칼에 잘라 말할 수 있어 편하다. 나의 자존감을 이런 방식으로 지켜나갈 수 있었다.
얼마 전 ‘노노모’ 20주년 행사를 앞두고 인터넷 검색 중 2014년 노동자의 벗과 간담회를 진행하고 경향신문에 실렸던 기사(“노동자들이여 울지 마세요. ‘노노모’가 있잖아요”)를 다시 보게 되었다. 당시 ‘노노모’ 회장이었는데, “노동법률 전문가로서 동일한 사안을 놓고 사용자와 노동자 중 누가 사건을 맡겼느냐에 따라 다른 법률적 해석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 노동인권의 실현을 위해 살기로 했다면 개인의 생각과 노무사의 삶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노무사로 일관성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관성이 무너진다면 노무사로 살아갈 수도 없을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노노모’가 소중하고, 함께 하는 노무사들이 있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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