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지역 노동안전 네비게이션] 충북, 사각지대에 집중된 중대재해와 노동조합의 고민

일터기사

충북, 사각지대에 집중된 중대재해와 노동조합의 고민

이주용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총무부장)

만약 어떤 지역에서 매달 서너 건씩 연쇄살인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주민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죽음의 공포에 떨고, 지방정부는 물론이거니와 중앙정부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부처를 가릴 것 없이 앞 다퉈 대책을 발표할 것이다. 해당 지역구 의원이나 지자체장 역시 이 ‘비상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을까.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올해 11월 초까지 충북에서 산재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만 최소 29명에 달한다. 매달 적게는 1~2명, 많게는 4~5명이 중대재해로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하는 <사망사고 속보>나 언론보도로 파악하게 된 사건만 추려도 이 정도다. 실시간 통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질병 사망까지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중대재해를 ‘기업살인’이라고 불러왔다. 산재사망은 ‘우연히’ 혹은 ‘작업자 과실 때문에’ 발생하는 게 아니라, 사업장의 안전보건체계가 이윤 축적에 밀려 총체적으로 부실하거나 무너진 결과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 1호 사업장 삼표나 SPC그룹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재해 발생 사업장을 들여다보면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위반한 건수가 수두룩하게 나온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에게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사업주들은 작업 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으면서도 정작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렇기에 중대재해는 ‘우발적 사고’가 아닌 ‘기업에 의한 살인’인 것이다.

사각지대에 집중된 기업살인
이렇게 매달 우리 지역에서 살인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너무나 조용하다. 책임지고 나서서 사과라도 하는 당국자조차 없다.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뜯어보면 구체적인 문제들이 좀 더 드러난다. 올해 충북에서 발생한 산재사고 사망의 2/3는 현행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중대재해가 50인 미만 사업장이나 50억 원 미만 공사 현장에서 벌어진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대상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재해자는 하청·기간제 등 비정규직이거나 화물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 혹은 이주노동자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충북에는 청주·음성·진천 등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가 밀집해 있는데, 올 4월~5월 초,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만 이주노동자 중대재해가 4건이나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듯 작은 사업장을 비롯해 권리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산재사고 사망의 위험에도 더 크게 노출돼 있음이 명확히 나타난다.
한편, 올해 충북 중대재해 희생자 중 아직 민주노총 조합원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노동조합이 있으면 최소한 사측이 눈치라도 볼 텐데, 재해 발생 사업장 가운데 상당수에서는 노조가 없거나 유명무실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일터가 안전해지거나 중대재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사측의 일방적 작업통제에 맞서 현장에서부터 조직된 힘으로 싸울 구심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앞서 언급했듯 중대재해가 집중되는 중소 영세 사업장이나 크고 작은 여러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혹은 비정규직이나 이주노동자처럼 노동권을 박탈당한 이들이 노조를 결성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노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데 안전할 권리가 지켜질 리 만무하다.

충북 노동안전지킴이단, 모든 노동자의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향해
물론 ‘노조를 만들어야 안전할 권리를 지킬 수 있다’라는 말은 ‘쌀로 밥 짓는 얘기’나 다름없을 수도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마치 시혜를 베풀 듯 노조를 대신 만들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소속 조합원만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계급 대표성을 지닌 조직을 지향해왔다. 그렇다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우리 지역에서 확대하기 위해 조직된 노동운동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간단히 답할 수 없는 문제지만, 충북에서는 ‘노동안전지킴이’ 활동을 그 매개 중 하나로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 운동본부>를 중심으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정당 등이 모여 주민발의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충청북도 산업재해 예방 및 노동안전보건 지원 조례”를 만들어냈다. 이 조례에 따라 충청북도는 ‘노동안전지킴이단’을 구성해 운영해야 하며, 노동안전지킴이단은 도내 사업장을 대상으로 노동안전보건 관련 예방·감시활동 및 지도점검 활동을 수행하게 되어 있다. 지난 10월 충청북도가 조례 시행 이후 근 1년 만에 노동안전지킴이단 최초 모집공고를 냈고, 현재 민주노총 소속의 간부·조합원 10명이 위촉돼 11월 말부터 현장 지도점검 등 활동을 시작했다.
그간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조례에 따라 노동안전지킴이단을 구성하고 노동자·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충청북도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노동안전지킴이단 활동을 통해 조직 노동운동이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우리 지역에서 중대재해가 집중되고 있는 미조직·중소 영세 사업장의 노동안전 문제로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도 분명 눈에 띈다. 가령, 충청북도가 이번 첫 모집에서 위촉한 노동안전지킴이 수는 도 전체에 걸쳐 16명에 불과하다. 현장 지도점검 역시 연간 4회에 그치며, 지도점검 대상은 지자체 발주공사 현장으로 제한했다. 민간 발주공사나 제조업 사업장은 제외한 것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노동조합은 노동안전지킴이단 모집 과정에서부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노동안전지킴이로 활동할 동지들을 모아 집단으로 위촉신청을 내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노동조합의 참여권을 확보하고 지속적인 활동과 투쟁을 거쳐 사업 범위를 넓혀나간다면, 미조직·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확대라는 취지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취약층 노동자들이 지금처럼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그러나 고통스럽게 기업살인의 주요 희생자가 되는 악순환을 조직된 노동자들이 앞장서 끊어내야 한다. 이제 막 시작된 충북 노동안전지킴이단 활동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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