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 알아보자 LAW동건강] 정신질환 산재, 반복되는 조사 줄여야

일터기사

정신질환 산재, 반복되는 조사 줄여야

김지나 후원회원, 노무사

상사의 폭언 및 괴롭힘으로 고통받아오던 A는 불면, 호흡곤란 및 우울 증상을 호소하며 동네 개인 정신과병원에 내원하여 치료받았다. 이후 회사에서 관련 조사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가해자는 결국 징계를 받았다. 그럼에도 업무장소를 옮겨야 했던 건 피해자 A였다. 수개월에 걸친 조사와 부당한 근무 장소 변경까지 감내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였다. 이제 산재 인정 여부만 기다리면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산재 판정까지 너무나 긴 소요 기간
‘2021년 판정위원회 심의현황 분석’에 따르면 정신질환 산재 신청 건수는 695건, 이 중 492건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었다. 2020년은 각 558건, 375건으로 인정률은 2020년 67%, 2021년 70%로, 낮다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판정까지의 소요 기간과 조사과정이다.
업무상 정신질환은 소요 기간이 특히 길다. 2021년 8월 기준 정신질환 판정에의 소요기간은 209일이다. 역학조사를 실시하여 소요 기간이 긴 직업성 암이 306일이었고, 뇌심혈관계질병은 123일인 것과 비교하면 정신질환 판정의 소요 기간은 특히 길다.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 기간 자체가 길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특별진찰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정신질병 업무 관련성 조사 지침’에서 “진단기준에 따른 전형적 증상이 나타나는지를 의무기록에 따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진행 경과를 파악하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9조에 따른 진찰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특진 기관은 “소속 병원 또는 종합병원 이상으로서 정신건강 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가진 전문가를 보유한 의료기관”이다. “임상 심리검사 결과가 없거나 제출된 검사 결과가 정신 질병 특진의료기관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에서 실시한 경우가 아닌 경우”, “최초 진단 시점, 최초 요양 승인 신청 시점, 재해조사 시점에서의 증상 변화 양상, 스트레스 요인의 해결 상태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도 특별진찰을 요구할 수 있다. 사실상 종합병원 이상에서 종합심리 검사가 정신질환 산재 신청의 조건이 되고 특별진찰 시에도 병원이 제한되어 더 오
래 걸릴 수밖에 없다.
A는 개인병원에서 약 1년간 상담 및 약물치료를 받아왔고 의무기록 상 증상 및 치료과정이 확인되었지만, 특진을 진행했다. 너무 많은 기간이 소요되었다. 산재 접수 후 특진 결정까지 5개월, 특진 시작까지는 접수 후 거의 1년이 걸렸다. 2022년 6월 현재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회의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 특진 시 업무 관련성에 대하여 ‘매우 높음’ 소견이 나오면 판정위 단계에서 소요되는 약 40일의 기간은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반복되는 재해조사 줄여 피해 상황 재경험 막아야
소요 기간이 길더라도 정확하게 판정을 받을 수 있다면 감내할 수라도 있겠지만, 정신질환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조사과정의 문제를 보면 노동자의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① A는 산재를 신청하기 위해서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스트레스 내용을 다시 정리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하여 회사에서 관련 조사가 여러 번 이루어지면서 이미 정신적인 부담이 컸기 때문에 다시 내용을 떠올리며 정리하고, 주변인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②산재 접수 후 공단에서는 A에게 문답서를 요구했고, A는 29장의 문답서를 작성해서 보내야 했다. ③ 이후 공단은 A에게 주치의 소견서를 요청하였다. 주치의는 공단 양식은 아니지만, 소견서를 작성해 주었고, A는 이를 제출하였다. ④ 수개월 뒤 특진을 위해 특진 기관에 내원했을 때 다시 몇 시간에 걸쳐 그동안의 내용, “조직도부터 그려가면서 다시 설명”을 하였고, 검사를 진행했다. ⑤ 그런데 진료 후 약 1개월 뒤 특진 기관은 사업장에 A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의 면담’을 하겠다고 알렸다. 공단이 아닌 면담 요청을 받은 동료에게 그 사실을 전해 들었다. 면담 요청을 받은 한 동료는 ‘못 해주겠다’고 했고 A는 판정에 불리해 질까 봐 걱정하였다.
무엇보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로 이미 회사와 동료들에게 사건이 알려진 상황에서 A는 폭력성이 있는 가해자가 알게 되거나 또다시 회사에 소문이 돌까 봐 불안감을 느꼈다. A는 울면서 말했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산재가 이런 것이면 이제 하고 싶지 않네요. 사람 두 번 죽이는 일 같아요.” 안타까운 것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회의 단계가 아직 남았다는 것이다.
결국 동료 면담은 생략되었다. 하지만 A의 사례로 본 정신질환 조사과정의 문제는 특진 등으로 조사 기간이 너무 길고, 이 길어지는 기간 동안 반복된 조사로 재해자가 문제 상황을 지속적으로 재경험한다는 점, 그 과정에서 오히려 증상이 악화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A의 경우에는 상담일지, 내용, 가해자 징계 사실 등 객관적인 자료가 이미 제출되어 있었다.
특진 기관의 조사는 원칙적이었지만, 특진 시 공단 조사와 불필요하게 반복되지 않도록 규정 및 방법이 보완되어야 한다. 예컨대 공단에서 문답서를 제출받더라도 특진 기관에서 거의 같은 내용으로 다시 조사(검사)받는다. A의 경우 경위 및 스트레스 사실이 자료로 제출되었고, 이미 공단에서 보험가입자 의견을 요청하였으나 보험가입자는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 이 경우 공단은 요양업무처리 규정에 따라 제출된 내용으로 사실관계를 조사하여 결정할 수 있다. 특진 기관이 다시 동료 면담을 진행하는 것은 A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외부기관이 직장 내 괴롭힘 조사를 다시 처음부터 진행하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또 하나는 공단 담당자가 특진 기관이 사업장 조사를 예정하고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당연히 당사자도 몰랐다. A는 결국 회사, 공단, 특진 기관 각 기관에서 동일한 업무 스트레스를 따로 조사받았던 셈이다.
정신질환의 특성을 고려하여 필요성 및 시기를 고려한 특진 대상의 조정, 반복되는 재해조사 및 방법 개선이 필요하다. 판정까지의 소요 기간을 줄이고, 산재를 통해 신속하게 보상해야 하며, 치료받고자 하는 노동자가 오히려 조사과정의 스트레스로 상병이 악화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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