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지역 노동안전 네비게이션] 일터에 쉼표를 – 작은 사업장 노동자 쉴 권리를 위한 월담노조의 2022년

일터기사

일터에 쉼표를 – 작은 사업장 노동자 쉴 권리를 위한 월담노조의 2022년

임용현 (반월시화공단노동조합 월담노조 사무국장)

 

얼마 전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이라 쓰고 ‘노동개악’이라 읽는다.) 밑그림이 나왔다. 밑그림을 짠 주인공은 노동시장 개혁 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집단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였다. 핵심은 기업의 필요에 따라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고, 임금체계도 성과급 중심으로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동시간과 임금체계를 개편해 장시간・저임금 체제를 고착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 목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기껏해야 5개월짜리 연구를 통해 도출한 권고안에 대해선 대단한 업적인 양 한껏 추켜세웠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지난 1년여 동안 월담노조가 줄기차게 외쳐 왔던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쉴 권리’보다 ‘전문가들의 고견’이 훨씬 힘세다는 걸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정부와 경영계, 그리고 이들 편에 선 소위 전문가그룹은 하나 같이 노동자의 생명과 인권보다 기업의 돈과 시간을 ‘금쪽’처럼 여기고 보살폈다.

불안정・저임금 굴레에 갇힌 장시간 노동, 요원한 쉴 권리
2021년 10월 16일 출범한 월담노조는 사업장 담벼락을 넘어 공단지역 전체의 실질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월시화공단을 비롯한 산업단지는 반세기 가까이 ‘수출과 고용의 주역’, ‘지역경제의 젖줄’로 회자되었지만, 정작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기업과 정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단 노동자들조차 열악한 노동환경을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며 체념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엉킬 대로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야만 했다.
공단 노동환경 실태 설문조사를 나가면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답변을 망설이는 항목이 있다. 바로 고용형태를 묻는 문항이다. 나의 고용형태가 정규직인지, 아니면 파견제, 기간제, 일용직/단시간 노동자인지, 스스로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건 그 자체로 공단노동자들의 현재 지위와 조건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지 보여준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을 짓누르는 문제는 고용형태 하나만이 아니다. 장시간・저임금 문제도 ‘공단’ 하면 떠오르는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다. 특히 기계, 전기·전자 부품업체들이 밀집된 반월시화공단에는 저임금의 굴레에 갇혀 장시간 노동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다. 공단 어디를 가나 저임금이 당연시되니 길게 일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쉴 권리’를 나의 권리로 인식하는 노동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작은 사업장 차별하는 시행령에 맞선 활동
월담노조가 2022년 한 해 동안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쉴 권리 보장 요구 확장’을 주요 사업 목표로 정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쉬는 공간 사진 찍어 보내기’, ‘길 위에 쉼터’, ‘휴게 실태 심층 인터뷰’ 등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공단 노동자들의 휴게 실태를 모아내고, 일터에서의 쉼이 모든 노동자의 권리라는 인식을 확산하고자 했다.
이중 ‘쉬는 공간 사진 찍어 보내기’ 캠페인은 3월부터 4개월간 진행했다. 캠페인에서 만난 노동자들에게 점심시간이나 작업 도중 쉬는 시간에 주로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 사진과 한 줄 사연을 통해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총 50점의 사진과 사연이 모였다. 사진 속 노동자들은 마땅한 휴게시설이 없어, 작업장 안팎에서 휴게시간을 그야말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사업주가 법정 휴게시간을 잘 준수한다 해도, 휴게시설이 없다면 노동자들은 한적한 공간을 찾아 정처 없이 배회하거나 작업장 인근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휴게권은 시공간을 아우르는 문제다. 휴게시간에는 사용자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노동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공간상 권리’가 두루 보장되어야 한다. 일련의 캠페인 사업들은 이 점을 공단 노동자들, 그리고 관할 지자체와 고용노동청, 공단지역 사용자단체 등에 분명히 각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또다시 사업장 규모를 이유로 휴게시설 설치 대상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차별하고 배제했다. 모든 사업주에게 휴게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 그에 따른 시행 대상과 기준을 담은 시행령에 20인 이상 사업장을 적용 대상으로 삼아 2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휴게권을 박탈했다. 시행령은 2022년 8월 18일부터 시행되었지만, 정부는 이미 하위법령 입법예고 단계부터 이 같은 차별을 공식화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맞서 월담노조는 4월 ‘개정산안법 시행령 입법예고에 대한 월담노조 입장’ 발표, 6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서’ 제출을 통해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 관행을 철폐하고, 모든 사업장에 휴게시설 설치를 의무화할 것”을 요구했다. 의견서와 함께 ‘작은사업장 노동자 쉴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500명의 공동성명’도 함께 제출했다.

반월시화공단 공동 휴게실 마련을 위해 한 걸음
9월~10월에는 상반기 캠페인을 통해 수집한 50점의 휴게 실태 사진과 사연을 전시하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휴게 실태 사진전’을 진행했다. 사진전은 공단 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실태를 낱낱이 드러내기 위함이었지만, 무감각하게 전시한다거나 당사자의 권리보장 목소리를 박제화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다. 가령, 관람객이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이 아닌 장소(환경)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사진 한 장 한 장마다 스티커를 붙였다.
10월 26일에는 ‘공단노동자 쉴 권리 보장을 위한 토론회’를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휴게권 실현을 위한 사업단> 주최로 열었다. 안산시와 시흥시, 고용노동부, 산업단지공단 관계자들이 참석한 토론회에서(공단 사용자단체 ‘스마트허브 경영자협회’는 불참했다.) 공단 내 ‘공동휴게실’ 설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공동휴게실을 마련하기 위한 공동협의 테이블 구성이 과제로 남아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커녕 과로 사회로 회귀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다. ‘모든 노동자의 쉴 권리’를 위한 월담노조의 활동이 부질없는 꿈으로 남지 않기 위해 2023년은 또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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