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 아시아 과로사통신] 과로사, 조력과 방해 그리고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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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조력과 방해 그리고 공백

곤노 하루키 ‧ POSSE

 

*이 글은 지난 9월 7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11회 일본 과로사 방지 학회 컨퍼런스의 ‘과로사와 유족의 권리행사 – 일본, 한국, 대만, 인도네시아의 비교연구’ 세션 중 일본 발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일본은 ‘과로사’를 과로사 등 방지 대책 추진법(이하 ‘과로사방지법’) 제2조에서 정의하고 있다. ‘과로사 등’이란 1. 업무상 과중한 부담에 의한 뇌혈관 질환·심장 질환을 원인으로 하는 사망, 2. 업무상 강한 심리적 부하로 인한 정신 장애를 원인으로 하는 자살에 의한 사망, 3.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이러한 뇌혈관질환·심장질환, 정신장애를 말한다.

과로사가 발생했을 때 가족의 죽음이 과로사임을 밝히고 산재 인정과 회사의 책임 인정까지, 유가족은 산재보험법상 문제와 민사소송상 문제를 맞닥뜨린다. 이 과정은 유가족에게 매우 험난한 과정이지만, ‘과로사’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과로사’로 인정받는 일은 더욱 어렵다.

산재보험 청구는 유족이 신청한 후 불인정되면 두 차례의 재심사와 행정소송을 거칠 수 있다. 이때 통계상 과로사는 산재 인정 건수를 가리킨다. 한편 산재가 인정된 기업의 이름을 국가가 공개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정보공개 청구에서도 청구한 유족이 패소한 사례가 있고,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유족이 승소해서 밝힌 것들이다.

일본에서 산재보험은 기업의 과실 책임을 묻지 않고, 다만 사실관계상 인과관계로 인해 업무상 재해가 발생했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의미한다. 보상액도 일정한 기준이 정해져 있다. 이를 초과하는 범위 배상은 민사소송에서 청구하게 된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해야 비로소 기업의 귀책사유가 있는 ‘과로사’임을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민사소송에서는 배상액에 대해서 노동자 측의 개인적 취약성이나 가족 상황 등 개별적 요소가 상세히 고려된다. 또한, 민사소송을 통해 보상받는 경우, 산재보험은 상계된다.

 과로사가 발생했을 때 가족의 죽음이 과로사임을 밝히고 산재 인정과 회사의 책임 인정까지, 유가족은 산재보험법상 문제와 민사소송상 문제를 맞닥뜨린다.
과로사가 발생했을 때 가족의 죽음이 과로사임을 밝히고 산재 인정과 회사의 책임 인정까지, 유가족은 산재보험법상 문제와 민사소송상 문제를 맞닥뜨린다. ⓒ SNS 캡처

유가족들과의 인터뷰

나는 재판 방청, 과로사 심포지엄 참석 등을 통해 알게 된 유족들을 만나 과로사 사건에 대한 인식, 이후 과정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25차례의 인터뷰가 있었다.

유가족들에게 어떤 계기로 가족의 죽음을 과로사로 연결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남편이 사망한 한 유족은 사후에 학교에서 남편과 친했던 동료 교사가 “과로사다. 공무 재해를 신청해야 한다”고 전해준 덕분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편이 과로하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는 동료로부터 “(남편이) 너무 많이 일했어”라는 말을 들은 후 알게 되었다. 다른 유가족은 사망 반년 전에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회사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살한 것에 대해서는 사망 전날 있었던 부부싸움이 원인일 거라 생각했으며, 업무가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아내)의 친척에게서 조언을 받아 과로사방지학회에 함께 가서 가족회 간부와 면담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곳에서 과로사라고 듣고 과로사를 인식하게 되었다. 유품을 받아 그중 메모에 유서 같은 것(자살 충동)이 있었고, 새벽 4시에 기록한 내용이 있어 과로가 아니었을까 의심한 또 다른 유가족도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회사의 적극적인 협력은 보이지 않는 반면, 소극적·적극적인 방해가 관찰되었다. 기업 측 방해 행위에 대해 보다 상세히 특정하고, 국가가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유가족은 공공기관(병원, 경찰, 기타)이나 해당 기업으로부터 조언을 전혀 받지 못했고, 모두 동료, 가족, 유가족 자신이 가진 지식 및 정보 자원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오히려 회사의 부정적인 언행으로 인해 문제를 확인한 사례가 여러 건에 이르렀다.

과로사방지법이 제정된 지 11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과로사가 감소하거나 과로사 산재 승인율이 올라가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일본. 과로사 산재 신청을 하는 데 있어 회사가 산재 신청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거나 소송 중 책임 전가·위증 등의 방해 행위도 빈번하다. 회사가 과로사를 줄이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식시간을 충분히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지만 여전히 그러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은 실정이다. 회사가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법제도 마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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