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괴롭힘으로 탈인간화되는 학습지 영업직 노동자들
[알아보자, LAW동건강] 제도의 존재 이유, 실질적인 행정력으로 뒷받침돼야
문가람 ‧ 회원, 노무사
10여 년 전, 실적 밀어내기로 거센 불매운동을 불러일으켰던 모 우유기업 사태를 기억하는가. 최근 국내 굴지의 학습지 회사에서 발생한 직장내괴롭힘 사건과 그에 대한 외부 노무법인의 조사 결과는, 그리고 회사의 대응은 영업직 노동자의 인격까지도 쥐어짰던 당시의 사건을 그대로 재현한다.
조사기관인 외부 노무법인은 관리자가 부하 직원에게 한 모욕적 발언과 과도한 실적 압박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면서도, “업무상 적정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며 직장내괴롭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과통보서 말미에 ‘업무상 적정범위’를 판단하는 데 ‘업무상 필요성’과 ‘사회통념상 상당성’을 기준으로 삼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회통념상 상당성’은 피조사자들의 진술을 중심으로 동일 부서, 동일 조직에서의 관행을 살피되, 필요한 경우 특정 업종에 국한하지 않고 기업 조직 전반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지 여부를 종합 고려하였다.”
▲2025.09.11. 직장내괴롭힘 사건의 가해자 무혐의 처리에 대한 사측 규탄 및 노동부 진정 기자회견이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 노동과세계
해당기업, 조사기관이 ‘용인할 수 있는’ 행위의 문제점
일하기 위해 만난 사이에, 일하는 시간 동안, 일하기 위해 모인 공간에서 이러한 행위가 ‘용인될 수 있는가.’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은 일이 아닌 것들이 노동자의 몸과 마음을 해치지 않도록, 부당하거나 불필요한 언행들을 제도적으로 규제하고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법의 취지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조사기관 또한 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조사결과는 다소 상반된다. 조사기관이 “기업 조직 전반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된다고 판단한 행위들을 살펴보자.
해당 기업은 학습지회사로 신규회원을 모집하고 기존 회원을 유지하는 것이 주된 수익 활동이다. 행위자 A는 피해자에게 월 신규회원 목표치를 강요하며(“됐고 40까지 하세요!”), 충족하지 못하면 “며칠씩 놓고 있어?”, “자기 진짜 지독하다”, “저 엿 먹으라는 거예요?” 등 압박하는 언행을 했고, “지금 인당 5가 아니라 지구가 5도 못 했잖아. 그럼 이거의 심각성을 깨달아야지. 자기야 안 그래?”, “오늘 10개까지 해놓고 퇴근해.”라며 무리한 실적 목표를 주고는 미달성 시 퇴근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 평소 피해자의 한 달 목표치가 30개 정도임을 고려하면, 하루 만에 3분의 1을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행위자 A의 발언은 단순히 최선을 다하라는 독려가 아닌, 허위회원을 등록해서라도 실적을 채우라는 의미이며,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피해자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가 자신의 돈으로 회비를 채워 넣게 했다.
가해행위는 직장내괴롭힘 신고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계속됐다. 피해 내용의 정리를 도우러 일부러 피해자의 일과시간이 한참 지난 저녁시간에 피해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녁 9시 반이 넘은 시간임에도 피해자의 휴대전화엔 행위자 A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 받으면 안 되느냐는 만류에도 피해자는 “큰일 난다”며 잔뜩 겁을 먹은 얼굴로 손을 벌벌 떨면서 급히 전화를 받았다.
행위자 A는 피해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지금 어디예요?”라고 소리를 높였다. 맞은편에 떨어져 앉은 자리에까지 인사도 없이 불쑥 건넨 물음이 선명히 들려왔다. 행위자 A에겐 밤이고 낮이고 피해자에게 연락할 수 있는 권력이, 언제고 내가 궁금하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권력이, 사실상 퇴근을 시킬지 말지 정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행위자 A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관리’에 피해자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 사무실을 벗어나도, 어쩌면 아직도, 퇴근할 수 없다.
행위자 B는 승진 대상이던 피해자에게 “다른 데 가. 너 승진하겠어? 승진하고 싶어? 승진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데 갈래? 집 근처가 어디지?”라며 승진 누락도 모자라 전보를 빌미로 한 협박성 발언을 하고, “너는 그렇게, 노조에 뭘 그렇게 물어본다며?”, “노조 활동은 뒷배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가족 중 누구라도 함께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혼자 벌면서 노조 활동하는 건 바보짓”이라며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행위자 B는 피해자의 배우자가 실직상태라는 사실을 면담을 통해 알고 있었다.
피해자는 4월 마감을 겨우 마치고 난 직후인 5월 1일, ‘내가 죽어야 끝나나’ 하는 마음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 했다. 피해자를 말리고 정신의학과를 알아봐 준 것은 딸아이였다. 자신의 힘으론 병원에 갈 생각조차 못 할 만큼 피해자의 정신상태는 극도로 피폐해져 있었고, 자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찾아간 병원에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등도의 우울병 에피소드와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 피해자는 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아 겨우 문제를 공론화하고 즉각적인 보호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조사가 진행되는 기간에도 행위자들과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도록 내버려두었다. 피해자가 상세 내역을 제출하고 한 달이 지나고서야 받아본 조사결과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 모든 행위가 ‘업무상 적정범위 내’에 있다는 말뿐이다.
조사결과가 나온 후 피해자는 자택과 먼 곳의 지점으로 전보되었고, 행위자들은 ‘이것 보라’며 의기양양하다. 조사기관의 무책임한 판단은 행위자들에게 면죄부로, 피해자에겐 2차 피해로 전가되었고, 회사는 조사기관을 앞세워 아무런 실효적인 조치도 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이번 사건은 피해당사자의 개별적인 보호가 아니라 해당 업계, 업종에 ‘그래도 되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조사기관의 조사결과가 해당 업종 관리직급에게 공식적인 업무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영업직 종사자에 대한 성과 압박은 모욕적인 표현을 동반해도 괜찮다’, ‘실적을 못 채우면 퇴근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 ‘비인간적인 실적관리도 관행적이면 괴롭힘이 아니다’며 말이다.
현재 해당 사건은 객관적인 조사 및 조치의무 위반을 이유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고용노동부가 최소한 재조사를 명하거나 개선 권고를 하지 않는다면, 회사와 조사기관은 이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사안을 축소·무마하고, 비인격적인 성과관리 유형의 괴롭힘을 조직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반복할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위계적인 압박과 모욕, 강요가 반복되는 일터에서 영업직 노동자들의 탈인간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를 분명히 증명할 행정기관의 책임 있는 판단이며, 왜곡된 관행을 단호히 끊어낼 실질적 개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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