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반증의 삶 그리고 일 / 2021. 04

일터기사

[직업환경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반증의 삶 그리고 일 

송윤희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본 글은 영화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으나 비교적 꾸준한 작업이 가능했던 숙련된 경력자의 이야기로, 전체 영화 현장의 노동을 대변할 수 없음을 밝힌다. 현장 노동의 문제와 노동자의 건강을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이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으로 한 동료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현재 의사이면서 영화 각본, 감독의 일을 계속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이자 ‘친구’ 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일터 독자들의 양해를 미리 구한다.

아주 오랜만에 한 ‘영화 노동자’를 만났다. 9년 전 나와 함께 영화 학교에서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를 쥐어짜 만든 촬영감독이었다.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고 잘살고 있는 듯했 다. 그와 같이 양고기를 먹으며 근황을 나눴다. 이제 40대에 들어서는 우리는 영화업에 계속 발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살 궁리도 같이 강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이대가 됐다. 다행히도 그는 계속 촬영을 할 생각인 듯했다. 나는 이미 생계로써 의사로 일하고 있고, 다만 언제 과연 ‘감독 입봉’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우리 둘 다 아직 꿈의 ‘감독’ 직에 입봉하지 못 했다는 뜻이다. (이 짠한 문장에 침울하지 않아도 된다. 글을 끝까지 읽으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한 영화감독들과 A급 촬영·미술·조명·음악감독들을 영화계에서 는 ‘오야지’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이다. 오야지 밑에서 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팀원들은 ‘언제까지 영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즉 아직 자기 이름(브랜드)으로 자리 잡지 못한 영화계 노동자들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불안한 청년, 아니 중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번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고 배도 불러오자 나는 솔직하게 궁금한 걸 물었다.

“K야 좀 실례일 수도 있는데, 궁금하다. 너 정도 경력이면 페이가 어떻게 돼?”
“회당 45~50만 원 정도요. 드라마랑 영화랑 비슷해요.”

나쁘지 않은 페이인 것 같았다. 그는 현재 제1 카메라맨이다. ‘퍼스트’라고도 하는 이 직무는 카메라 옆에서 계속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일이어서, 매우 숙련된 기술과 경력을 요구하는 업무다. 즉 가장 중요한 카메라 포커스 플레이어다. 얼핏 듣기에 일당이 꽤 괜찮은 것 같지만, 촬영이 보통 아침 7시에 집합하고 밤이 되어서야 끝나는 강행군인 걸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래도 이제 하루 촬영시간이 딱 정해져 있잖아.”
“네. 영화는 14시간이고요, 드라마는 16시 간이에요.”

나는 조금 놀랐다. 식사 시간을 빼고는 하루 12시간,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이었다. 몇몇 기사를 보면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 먹을 즈음에 끝난다던데, 아마 그런 사례는 드물고 아직은 최대 허용 촬영시간을 다 써야 하는 현장이 많은 듯했다. 고(古) 이한빛 PD의 사건 이후, 지난 몇 년간 촬영 현장이 매우 좋아졌다고 해도 간신히 수면시간 정도를 확보해준 데 불과한 것이다.

“그럼 밤에 끝나면 영화사에서 택시비는 다 챙겨주는 거야?”
“아, 다 포함이에요. 식대랑 교통비 다요. 그래서 다음 날 촬영 있으면 근처에서 잠만 자고, 다음 날이 쉬는 날이면 택시 타서 집에 가고 그래요.”

예전에 다른 동료가 한 말이 기억났다. 그도 촬영팀이었는데, 촬영에 들어가면 짧게 군대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주변 지인들과 연락도 두절되고, 작품 촬영 말고는 모든 개인적인 일들이 멈추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음에도 다행히 K는 좋아 보였다. 1년에 들어가는 대략 두 개의 작품을 하 는 7~8개월이 아닌 때에는 운동과 자기계발을 한다고 했다. 작품을 할 때도 재미없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생함을 맛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작업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실직 상태가 되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 있지만, K는 나름대로 그 상황에서 최선의 적응을 한 듯 했다.

요새 그는 조금 시야를 넓힌 것 같았다.

“전에는 영화에만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맞다고, 그래야 한다고. 근데 세상이 넓잖아요. 영화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든 것 같고…”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40대 초반에는 영화 현장이 괜찮을 수 있다. 어쩌면 40대 중후반까지도 버틸 수 있겠다. 그러나 50대, 60대 초반까지 현장을 지키는 기술 스태프는 매우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다들 아마도 K와 같은 나이대에서 여타의 살길을 조금씩 도모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영화 산업이 많이 죽었다. 영화계의 앞날은 어찌 될지 걱정이 들었다.

“영화계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영상 산업은 앞으로 훨씬 더 커질 것 같아요.”
“그래. 꼭 영화만 해야지,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웹드라마도 할 수 있고, 뭐, 유튜브도 있고, 여러 OTT 플랫폼들이 생겨나니까 계속 버티자.”

5년 뒤 K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가 상업 영화 촬영감독으로 입봉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런데 만에 하나 아쉽게도 그 피라미드 오르기에 기회나 운이 닿지 않는다면, 제2의 바람은 그가 영화 현장에서든 어느 분야에서든 충분히 품위 있게 생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이제껏 쌓은 영화 영상의 기술을 이용해 한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브랜드)을 지니는 것이다.

나는 그의 5년 뒤가 기대된다. 물론 불안정한 영화 노동자이기에 고민도 많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을 10대, 20대를 넘어 40대까지 하는 건 살짝 서글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계속 내 인생을 도전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직 입봉을 못 한 40대 촬영감독과 영화 감독 지망생들의 근황에 침울하지 마라. 우리는 계속 도전한다. 실패해도 또 일어난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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