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부터Z까지 다양한노동이야기]“웨딩 촬영자 구함, 초보 가능”

일터기사

세 번째 이야기

“웨딩 촬영자 구함, 초보 가능”

정리 _ 한노보연 선전위원 흑무

유진(가명)씨는 영화감독을 꿈꾼다.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작품이 있는 감독이 아닌 이상 아르바이트로 쌈짓돈을 만들어 영화를 찍고 필모그래피를 쌓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유진씨는 지금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 위에 있는 불안정하지만 버텨야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웨딩촬영은 생활비를 마련하고 영화를 찍기 위한 쌈짓돈을 마련하기 위해 유진씨가 하는 일이다. 자신의 작품은 아니더라도 아는 이들의 작품 두어 개를 함께 작업하다보면 아르바이트를 위한 규칙적인 시간을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유진씨가 택한 아르바이트다.

웨딩촬영은 말 그대로 결혼식 날 본식, 폐백과 하객들을 촬영하고 편집해서 DVD로 만드는 일이다. 웨딩 촬영 업체에서 구인구직 사이트에 낸 광고를 보고 유진씨는 이 일을 시작했다. 청첩장이 밀려드는 3-4월이나 9-10월이 성수기고 1-2월, 7-8월은 일이 없어 다른 아르바이트를 한다.

결혼식장에 보이지만 또 보이지 않는 웨딩촬영노동자.

“꼭 찍어야 하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식 끝나고 행진을 하면 그 장면은 반드시 찍어야 해요. 그런데 저번에는 주례 선생님 쪽에서 신랑신부를 찍고 있었는데, 행진을 시작한 거예요. 그 자리에서 찍으면 신랑신부 뒤통수가 나오잖아요? 이럼 절대로 안 돼요, 나중에 컴플레인(항의) 들어온다고요. 그래서 정면에서 찍으려고 완전 뛰다가 넘어져서 행진하는 길에 장식용으로 세워놓은 화분 쓰러뜨려서 돈 물어줬어요.”

그런데 요즘 결혼식장에서 영상 촬영하는 이들을 별로 못 본 것 같다.

“요즘 결혼 패키지의 핵심은 사진이에요, 요즘 웨딩영상 촬영하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그러니까 웨딩촬영은 먹이사슬의 맨 밑바닥에 깔려있죠.

음……. 설명하자면 좀 긴데요. 신랑신부가 저희랑 계약하는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웨딩홀에 있는 패키지로 사진과 영상 촬영을 한다고 하면, 사진기사(스튜디오) 중심이에요. 사진기사가 영상촬영업체를 데리고 들어오는 형식이죠.

신랑신부가 영상촬영비용으로 30만원을 지불한다고 치면, 10만원은 웨딩홀 사장이 먹고, 사진기사가 5만원 먹고, 웨딩촬영 업체 사장이 10만원 먹고, 그리고 그날 촬영을 하는 기사가 5만원을 먹는 거예요. 제가 예전에 일했던 A업체는 그랬어요. 아, 그리고 그 화분 깬 날은 다른 업체 일할 때였는데 그 회사 일당이 7만원이어서 1만원 빼고 6만원만 받았죠.”

웨딩홀 사장은 웨딩홀을 가지고 있으니 10만원 떼어 가고, 사진기사는 자기가 업체를 데리고 왔으니 5만원 떼어 가고, 웨딩촬영 업체 사장은 일감 떼어 왔으니 10만원 떼어 가서 촬영노동자 손에 무사히 도착한 일당은 5만원. 다단계 하도급이다! 요즘은 웨딩플래너가 주인지라 웨딩홀 사장의 자리에 웨딩플래너가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유진씨는 A업체와는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편집 비용을 포함해서 5만원만 주는 거예요. 보통 편집비는 따로 주거든요. 그럼 촬영에 3만원, 편집에 2만원, 뭐 이렇게 되는 거잖아요. 처음엔 ‘2만원 받고 하는 편집이지만 잘 만들어줘야지’라는 마음으로 공을 많이 들였었어요. 그런데 밤새서 편집해도 손에 들어오는 건 5만원이니 지치는 거죠. 그런데 일당은 그렇게 주면서 퀼리티(영상의 질)를 요구해요. 하도 닦달하기에, ‘나는 2만원 받은 대로 2만 원짜리 편집하는 거다’ 그랬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면서 ‘일생에 한 번 하는 결혼식 영상 편집이다. 결혼하는 사람들의 마음, 행복함을 담는 거다’ 하는 거예요. 황당하죠.”

보통 웨딩촬영은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웨딩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은 자신의 장비를 가지고 촬영하게 되는데, 장비가 있으면 일당에 1만원 더 얹어준다. 장비가 없는 이들이 웨딩촬영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웨딩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 중에는 영화학과 학생들이나 영화감독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데, 소유한 장비가 상대적으로 고가인데다 편집 또한 자신의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음을 고려해보면 중간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떼어가는 수수료는 실제로는 더 큰 금액이다.

유진씨는 같은 업체에서 일하던 몇몇을 모아 일을 거부해볼까 했었다고 한다.

“노동자들 파업하는 것처럼 일감을 거부할까 했었어요. 당장 웨딩 촬영할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사장에게 이런 식으로는 일 못하겠다고 버텨볼까 한 거죠. 그런데 못했어요. 아르바이트다 보니까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에요. 우리도 파업해보자고 같이 얘기했던 분들이 조건이 나은 다른 업체로 옮겨버린 적도 있고요. 그리고 어지간한 곳 아니면 웨딩촬영 업체들이 영세해요. 업체사장과 촬영노동자가 한 끗 차이에요, 고용조건을 보면……. 그래서 그냥 관뒀어요. 없는 놈끼리 싸우는 꼴이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이 과정을 거쳐 사장님이 되기도 하지만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루어지는 시장의 벽은 몹시 높아서 힘들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웨딩촬영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없었는지 물었다. “좋은 거요? 뷔페요. 결혼 성수기에는 매주 뷔페를 먹을 수 있는 거? 그게 좋죠, 하하. 힘든 건 존중받지 못한다는 거죠. 결혼식장이나 행사장에서 사람들이 ‘어이’, ‘거기’, ‘카메라!’ 라고 부르고 손짓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이 정신없이 불러대죠. 내가 이 촬영에 얼마를 공들이고 있던지 간에 그냥 나는 금액이 딱 나오는 얼마짜리 인거죠.”

그는 웨딩촬영만이 아니라 각종 촬영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역축제 촬영했었어요. 촬영하고 편집까지 해서 30만원 받았죠. 하루 촬영하고 30만원 받는다고, 일당 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아니에요. 편집을 하면 꼬박 3-4일을 컴퓨터 앞에 앉아있어야 하거든요. 사람들은 촬영시간이나 영상분량만 보고 보통 판단하더라고요.”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1분짜리 영상을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만들어진 영상을 확인하며 좋아라만했지 부탁을 받은 그가 그 영상제작에 얼마나 시간을 쏟았을 지를 차분히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이젠 사람들이 편집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요. 그러면서도 편집비는 제대로 주지 않아요. 촬영비로 퉁 치는 경우도 많고요. 편집에 드는 노동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거죠. 해본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영상이 프로그램만 있으면 그냥 다 되는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우리의 수다는 교수님 퇴임영상 아르바이트 경험담으로 끝났다. 45년 교수 생활을 되짚어보는 영상이었는데 교수님은 유진씨를 골프장으로 데려가 골프 실력을 뽐내며 찍으라고 하시기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하면서 열심히 찍었다는, 웃기지만 끝이 개운치 않은 이야기로.

엊그제 결혼식에 다녀왔다. 결혼식장에 있었으되 보이지 않았던 촬영 노동자, 또 다른 유진씨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유진씨처럼 가까이 있으나 내가 보고 있지 않았던 노동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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