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 04월 | 칼럼] 자유로운 노동과 제어가능한 시간을 향한 고민과 사색

일터기사

자유로운 노동과

제어가능한 시간을 향한

고민과 사색

-‘노동시간 공부모임’을 시작하며-





포럼 사회복지와 노동 회원 강 동 진



‘준법’, 말 그대로 법과 규칙을 제대로 지키는 게 노동자들이 자본과 사업주에 대한 투쟁이 되어버린 시대이다. 안전수칙과 기준을 지켜가며 법에 정한대로 차량을 운행하는 철도와 지하철 노동자의 투쟁, 정해진 시간에 맞춰 칼퇴근하는 정시퇴근 투쟁 등이 준법투쟁이란 이름으로 전개된다. 거꾸로 이들 노동자의 평상시의 노동시간은 불법을 비켜가긴 하지만 편법과 탈법의 시간이란 얘기가 된다. 퇴근시간을 넘은 초과노동이 일상화된, 비정상이 정상인 게 현실이다. 더욱이 편법과 탈법, 비정상적인 노동이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 더 나아가 시테크라고 불리우면서 시간을 쪼개어 자기계발의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같은 현실은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자본의 힘이 우세하면서 벌어지는 모습들이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노동시간의 양과 형태를 둘러싼 대립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고, 신자유주의가 전면화되면서 자본은 승리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이윤축적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시간에 대한 자본의 전략은 다양한 경로와 메카니즘으로 확장되고 발전되어 왔다. 장시간노동을 통해 잉여노동시간을 확대하는 것에서부터 테일러시스템 등의 기술적 분석을 활용하여 노동과정을 분, 초단위로 분할하여 배치하고 활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노동의 유연화가 구조적으로 추진되면서 탄력시간제라 불리우는 변형근로시간, 파트타임노동, 단기간 임시직노동, 교대제, 심야노동은 이제 일시적이거나, 특수직종에 국한된 특별한 노동이 아니라, 일상화되고 구체화된 상시적 노동과 고용형태가 되었다. IT 등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자본은 이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작업장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고 생산과 노동시간을 배치하고 계획하는 수준이 된 지도 오래이다. 이제는 휴식과 여가시간마저 자본의 촉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을 둘러싼 투쟁에서 자본의 승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시간에 대한 자본의 지속적인 승리의 이면에서 노동자의 삶은 악화되고, 노동자의 의식은 자본의 요구를 내면화한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지속, 휴식과 여가시간마저도 자본의 시야와 자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에 대한 권리와 자기통제의 부재라는 시간을 노동자는 경유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노동자의 몸은 망가지고, 정신마저도 점점 피폐해진다. 가족을 비롯한 사회적 관계는 파괴되고, 자본을 위한 관계만이 유일한 출구로 제시되고 보여진다. 자본주의의 2대 질병이라고 하는 빈곤과 실업은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감소되기는 커녕 다양한 모습으로 확대될 뿐이다. 24시간, 365일 내내 노동자의 삶과 사고, 그리고 문화는 스스로의 자율과 주권을 상실한 채 자본에 종속되어 있고, 그 수준과 범위, 밀도 모두 깊어가고 확장되어 가고 있다면 현실을 너무 비관적이고 잿빛으로만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러한 과정이 순탄하게 흘러온 것만은 아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는 8시간 노동제를 둘러싸고 노동자의 투쟁이 대규모적으로 격렬하게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났으며, 지금도 이 투쟁은 지속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8시간 노동, 주44시간, 주40시간 노동제 쟁취는 민주노조운동의 항상적인 과제였으며 형식적으로나마 2012년부터는 모든 사업장에 걸쳐 실시될 예정이다. 노동유연화에 맞서 ‘구조조정반대’ ‘비정규직 철폐’는 1990년대 말 이후로 10년 이상 노동조합운동이 항상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과제이자, 투쟁의 요구이다. 그에 따라 자본과 지속적으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노동시간단축, 심야노동철폐, 주간2교대쟁취, 생활임금, 동일노동동일임금, 건강권․사회보장권 확충 등은 자본의 전략에 맞선 노동의 대안이자 투쟁이었고, 당장의 요구이다. 일부에서는 ‘보편적 사회적 권리보장’과 연동된 ‘노동거부’를 제시하기도 한다. ‘자율과 자치’의 이름으로 자본의 ‘외부’를 건설하려는 맥락도 존재한다.

하지만 자본의 기획에 대한 노동운동의 전략은 자본이 승리를 누리고 있는 모습에서 보여지듯 한계를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 결과 앞에서 지적했듯이 노동자내부는 분할되고, 위계화되고, 서열화되어 ‘노동자는 하나다’란 금언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저임금 불안정노동의 확대로 인해 노동자 내부 구성이 다양해진 만큼, 이해와 요구도 하나로 통일되기가 어려워졌다. 의식주를 비롯해 교육, 의료 등 노동력재생산 영역까지 자본의 기획으로 포획되고, 포섭됨에 따라 작업장에서의 노동의 대응력은 더욱 취약해졌다. 이러한 조건속에서 이제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의 전략은 이제 시간의 양, 시간을 둘러싼 조건에 국한될 수 없고 재생산영역, 사회적 조건, 그리고 이데올로기, 문화에 이르는 총체성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시간 공부모임’을 시작하게 된 객관적 조건은 여기까지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객관의 짐을 공부모임에서 지기에는 그 짐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도 하고, 그 무거운 짐을 지겠다고 할 만큼 오만하지도,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에 투철한 의식을 지니고 있지도 못하다. 그리고 2년 전에 모임을 시작했다가 중단되었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하지만 진지하게 자유로운 노동과 제어가능한 시간에 대한 고민과 사색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고민과 사색의 시간이 풍부해져서, 그 결과물을 내올 수 있다면 바랄 나위가 없지만 우선은 고민과 사색 자체에 충실함이 목표이다.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