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2월/쿠바여행기 2편] 쿠바의 의료기관 방문

일터기사

쿠바의 의료기관 방문

한노보연 부산회원 김대호

아바나에서의 첫 느낌

‘바라데로’의 초호화 호텔을 뒤로하고, 기대하던 아바나로 들어왔다. 일행이 탄 차에서 바라보는 아바나의 풍경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프라하나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의 어떤 고풍스런 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필자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_^) 한참동안이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흔적과 함께 개보수를 별로 하지 않아 땅이 파이고, 낡은 집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가정집에서 키우던 돼지우리 일행이 묵을 뗄레그라뽀(Telegrafo) 호텔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연휘발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차들이 무질서하게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다녔고, 사람들은 따로 횡단보도가 없어도 그냥 차들 사이로 길을 건넜다.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히치하이커들은 군중을 이루고 있었고, 가끔씩 우리 일행들을 향해서 “치나?(중국인?)”라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시가공장 노동자들이 몰래 빼내오는 시가를 팔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눈빛만 마주치면 “치나! 시가?”하며 치근덕거렸다.

가정집에서 키우던 돼지호텔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아바나 인근의 한 마을을 방문했다. 쿠바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 위해 아바나에 빨래 건조 공간살다가 젊은 남자 애인을 만나 그 집에 눌러 살게 된 한국인이 안내해줬다. 그녀는 7~8명 정도 되는 남자친구의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었고, 20평 남짓한 조그만 아파트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아주 작은 정원과 부엌, 식탁, 방 두 칸, 돼지우리와 빨래 건조공간이 전부였다. 좁고 약간 지저분해 보였지만 가족들이 오손도손 살아가기에는 그리 넘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쿠바정부에서 저런 집을 마련해준다고 하니 학자금 융자와 대출금을 갚기에 급급한 나로서는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중경제

쿠바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이면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달러를 많이 벌어들이려 한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아바나에는 관광객들 상대로 장사를 하면 제법 짭짤한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고급레스토랑의 웨이터들은 일종의 공무원처럼 등록을 해서 일을 하게 되는데 자신들이 받는 월급보다도 관광객들에게 팁으로 받는 수입이 훨씬 크기에 쿠바에서는 잘사는 부류라고 했다. 사람들은 달러를 벌기 위해서 투잡을 많이 한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했던 몰래 시가를 파는 사람들은 달러를 벌기 위해 우리가 아바나에 있는 동안 계속 귀찮게 했다. 의료기관을 방문하지 않은 때엔 쿠바 혁명사박물관, 어네스트 헤밍웨이 생가 등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일하던 공무원들도 우리 사진을 찍어주는 댓가로 1달러를 요구했다. 앞으로 쿠바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쿠바사람들의 친절에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사진 찍어주겠다고 하면 반 이상은 1달러를 요구하거나 “시가 살래?”하고 물어본다.
미국의 쿠바경제봉쇄시기(Special Period)를 이겨내기 위해서 쿠바는 자구책으로 관광산업을 발전시켰고, 관광산업은 달러를 벌어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해내긴 한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새로운 계급들을 만들어냈고, 시가공장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몰래 시가를 빼돌려 달러를 벌어들이는 짓을 하도록 유도했으며, 달러가 통용되는 암시장이 활성화 되는 등의 부작용이 많은 것 같다.

가정진료소

아담한 아바나의 어느 마을을 뒤로하고, 우리들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쿠바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은 쿠바의 의료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고자 한다. 쿠바는 의사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인구는 약 1,200만 정도인데 1년에 생산되는 의사의 숫자는 남한과 비슷한 약 3,000명이라고 한다. 인구 1,000명당 의사수도 5.91명으로 남한의 1.57명보다 월등히 많다. 1차 의료를 담당하는 가정의(Family doctor) 비율은 47% 정도이며, 가정의는 보통 160명 정도의 주민들을 담당쿠바여행기한다 한다.

가정의가 하는 일은 대충 이렇다. 오전에 가정진료소를 방문하는 20명 정도의 환자를 보고, 오후에는 5~6가구를 방문 진료 한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정환경과 주변 환경, 최근의 심리적 상황까지 꼼꼼히 차트에 기록한다. 치료보다는 질병의 예방에 더욱 신경을 쓴다.

업무를 보고 있는 가정진료소의 가정의쿠바는 의과대학을 나오고 난 뒤에 의무적으로 가정의를 2~3년간 한다고 한다. 그 뒤에 계속 가정의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전문의가 되고 싶은 사람은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한댄다. 우리나라는 거의 대부분 전문의 과정을 밟고 난 후 의원을 개원해서 1차 의료를 담당하는 것과 비교해서 의료 인력을 효율적으로 써먹는 것 같다.

가정진료소에서 처리가 되지 않는 환자는 전문의들이 외래진료를 하는 종합진료소(Poli-clinic)에 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2차병원인데 여기서는 대부분 외래진료를 하고, 응급실과 분만실 정도를 운영한다. 환자가 입원을 해야 될 상황이면, 3차병원인 종합병원으로 옮겨진다. 병원의 수익을 위해 1차, 2차, 3차병원들이 서로 경쟁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기 쿠바에서는 수익을 따지는 것도 아니라서 역할분담이 확실하게 될 수 있는 것 같다.

암튼 「가정진료소」부터 방문했다. 의사 2명이 환자를 보고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의사에게 나는 한국에서 온 의사이며, 쿠바의 의료기관들을 방문하러 왔다고 했더니 기꺼이 사진 찍는 것을 허락했으며, 일하고 있는 모습과 진료소 내부의 촬영도 허락했다. 사실 진료소 내부는 별로 볼품이 없었다. 환자를 진찰하기 위한 침대 1개에 약을 담아두는 케비넷과 아기들 몸무게 재는 것, 세면대가 고작이었다.

정말 의료적으로 필요한 것만 가져다 놓은 모습이다. 환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비싼 장비를 채워놓고, 고급 인테리어를 하는 등 비의료적 비용이 많이 드는 우리나라의 동네의원과는 아주 비교되는 모습이다. 쿠바는 의사의 숫자가 많기 때문에 하루에 의사가 봐야할 환자수도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아주 작다. 그만큼 환자 한명에 대해서 더욱 정확한 평가를 하리라 생각된다.
쿠바는 모든 가정진료소(1차 의료)에서 80%의 의료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쓸데없이 지출되는 의료적 낭비를 막으면서 적쿠바여행기은 비용으로 80%의 의료적 문제를 담당한다고 하니 부러울 따름이다.

그나저나 여기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어찌나 표정도 밝고, 친절하고, 이쁘기까지 하던지…
곧바로 2차 의료를 담당하는 인근의 종합진료소를 방문했다.

기타 의료기관들
1. 종합진료소

고전적인 건물에 종합진료소는 그냥 우리의 보통 중소병원의 모습과 비슷했다. 응급실도 있고, 분만실도 있고, 간단한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우리와 다른 것은 의과대학 실습생들이 여기서 수업도 듣고, 실습도 한다는 것과 입원실이 없다는 것이다. 종합진료소는 통원치료를 해야 할 사람들이 다니는 곳이고, 입원할 정도가 되면 종합병원에 가야한다. 여기 일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도와줬고, 낡은 시설이 있다고 해서 가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낡은 장비들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으라고 손가락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았다.

2. 노인재활센터

노인재활센터에 출근(?)하는 노인들지역에 사는 노인들 중에 장애가 있는 노인들은 ‘노인재활센터’(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이름이 맞는 지는 모르겠다)로 간다. 이곳 노인들은 매일같이 출근(?)해서 밥도 같이 지어먹고, 관광상품들도 만들면서 관광객들에게 팔기도 하면서 치료도 받는다. 일종의 낮병동(Day care center) 개념인데 낮에만 이곳을 이용하고, 밤에는 가족들과 같이 지낸다. 치료도 받으면서 같은 노인들과 먹고 노는 곳이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가정의의 진단이 있어야 하며, 이곳 상주하는 의사로부터 3개월마다 평가를 받고, 계속 치료를 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의 실버타운에 들어가는 기준은 돈이 있고, 없고 이지만 여기는 의사가 여부를 결정하니 돈보다는 기준이 인간적일 것 같다.

3. 소아재활센터

1세에서 18세 사이의 장애아동이 출근하는 곳이다. 물론 여기 들어오기 위해서도 의사뿐만 아니라 여러 심사를 거쳐서 입소할 수 있다. 방문한 곳은 40여명이 등록되어있었는데 파견직원 20여명 포함해서 60명 정도가 여기서 일을 한다고 한다. 맨파워가 좋다보니 장애아동들이 충분한 재활치료들을 받는 것 같았다. 치료뿐만 아니라 교사, 심리치료사들까지 있어서 교육과 정신적인 문제들도 해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장애아동들이 비장애 아동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없어 보인다.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들을 엄격하게 구분해 교육을 시킨다고 하니까 이건 약간 씁쓸해 보인다. 비장애 아동들이 장애아동들을 보게 되면 ‘이상한 애들’이란 인식이 심어지지 않을까? 하긴 우리나라도 마찬가진데 뭘… 암튼 장애인 문제는 어렵다. 그래도 국가가 노동력을 상실해보임직한 장애아동들을 저렇게 지극정성으로 치료하고, 교육하는 걸 보면 인간적인 정부이긴 하나보다.

4. 산전관리센터(Care center of Pregnant Women)

쿠바에서는 전통적으로 산파(?)를 통한 출산이 주로 이뤄졌다. 하지만, 비전문가에 의한 출산으로 인해 모성사망률, 영아사망률 등이 높게 나타나자 혁명 후 국가주도로 전문가에 의한 산모관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전문가에 의한 출산은 전체 출산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찾아갔던 시설에서는 산모 중에서도 고위험군 산모들이 입원해있었다. 우선 입원 대상자는 고위험 산모, 미혼모, 빈곤계층이고 쌍둥이, 빈혈, 고혈압, 당뇨가 있는 산모도 우선 입원시킨다. 실제로 저체중산모, 나이어린 산모, 고령 산모들이 많이 입원해 있었다. 하지만, 보다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한 산모의 경우 병원에서 관리한다고 한다.
여기도 건강한 산모들은 어느 시점부터는 직장을 휴직하고, 여기 외래로 매일같이 오고 있었는데 여기 시설에서 밥도 같이 해먹고, 수다도 떨고 하며 지내면서 정기적으로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는다. 필자의 누나도 임신해 있을 때에 귀찮다면서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모가 그렇겠지. 쿠바의 산모들은 정말 산부인과 교과서에 나오듯이 정기적으로 검진을 하고 있었다.

사회가 책임지는 쿠바 국민들의 건강

대체로 쿠바의 어린이들이나 어른들은 영양상태가 좋아보였다. 내가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행려환자나 의료보호환자들과 같이 불량한 건강상태를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보였다. 모든 의료기관에서 국가가 국민들의 건강을 철저하게 챙긴다는 것을 느꼈다. 단지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느껴졌다.(필자가 쿠바를 너무 좋게 봤나보다) 이 모든 것이 의료체계만 잘 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혁명 이후 사회 전반에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의료시스템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되었을 것이다.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만들어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를 하나의 상품화시켜 관광객을 유치시키겠다는 한국정부의 관리자들은 쿠바 좀 갔다 와야겠다. 의료를 산업화시켜 정말 국민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곳이다.

쿠바여행기 3편에는 기적의 수술(Operacion milagro)를 수행하고 있는 Pando Ferrer 안과병원과 중남미 28개국의 가난한 학생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의 감동적인 모습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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