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 04월 |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일터기사

헌법」제11조 제1항은 누구든지 성별 등에 의하여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국가인권위원회법」제2조 제4호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을 이유로 용역의 공급이나 이용과 관련하여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 주부전용 신용카드 발급, 남성은 안 돼?

얼마 전 북한이탈주민1) 순회 인권상담을 나가게 되었다. 나름 노동환경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상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담 시간이 근무시간 중에 있어서인지 노무사와의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간만에 찾아온 여유인가?

어차피 18시까지는 상담소를 지켜야 했다. 수첩을 꺼내놓고 일정 정리도 하고, 여기저기 시급한 전화도 하고… 갑자기 찾아온 시간적 여유가 낯설었다.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고…

인권위에서는 「인권」이라는 잡지를 격월로 발행한다. 개인구독신청을 하면 받아 볼 수 있었지만 2009.1.1.부터 예산절감과 발행부수 조정으로 개인구독신청은 중지된 상태이다. 올해 발행된 「인권」잡지를 들고 열심히 읽었다. 그러던 중 다음과 같은 사례를 접하게 되었다.

가사를 전담하는 여성을 흔히 가정주부라고 부른다. 가사를 전담하는 남성은 가정주부인가? 사실 ‘가정주부’라는 말도 마음에는 안 든다. 사례에 접근하기위해 부부 중 1명이 소득을 위한 경제활동을 하고, 1명이 집중적으로 가사노동을 하는 상황이라고 정리하자.

2009년 A은행에서 주부를 겨냥해서 많은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발급했다-기본적으로 개인의 결제능력에 따라 신용카드 발급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의 신용카드는 여성주부이더라도 “남편이 자격기준에 부합하고 남편의 동의를 받은 자로서 영업점장이 특별히 인정한 경우”에 한하여 발급할 수 있다는 발급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직업이 없는 남성의 경우 실제 가사를 수행하는지 혹은 단순 무직자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이들에게 신용카드 발급을 허용할 경우 결제 상환 불이행 등의 위험도가 증가하여 영업상 불이익이 예상되며, 본인이 직업, 소득 또는 재산 상황 등에 비추어 결제능력이 인정되는 않는 한 남성에게 주부 자격에 따라 신용카드를 발급할 수 없다는 것이 해당 은행의 입장이었다.

2009.7월 통계청의 발표 자료에 의하면 취업 또는 구직활동 중에 있지 않은 국내 만15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는 총 1,537만명으로 남성이 512만명, 여성이 1,025만명이다. 그 중 가사 또는 육아를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는 총 704만명으로 남성이 15.6만명, 여성이 688만명이었다.

A은행에서 신용카드 발급을 거절당한 남성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인권위는 직권으로 모든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직권조사를 실시했고, 시중 은행 4곳이 A은행과 같은 차별적 규정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개선을 약속한 3곳을 제외한 한 곳에 대해 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 결정의 주요내용이다. “피진정인의 입장과 같이 여성만을 주부로 인정하는 것은 배우자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여성인 배우자가 가사를 전담한다는 전통적 주부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고, 최근 공식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가사와 육아를 사유로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남성이 15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고용의 유동성이 증가하면서 양 배우자 중 현재 어느 쪽에 직업과 소득이 있는지에 따라 부부간 역할이 바뀔 수 있는 점 등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성별에 따라 신용카드의 발급기준을 달리하는 기준 및 관행에 합리적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였다.


# 청와대와 끈을 놓아 주세요!

60세는 훌쩍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상담실로 들어오셨다. 상당히 말라 주름도 많은 어르신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청와대와 끈을 놓아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말을 해봐야 소용도 없을텐데 청와대와 연결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데….’ 그리고는 말씀이 없다.

물론 청와대와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인권위까지 오신 이유를 듣고 싶다고 했다. “말해봐야 뭔 소용이야.” 하시더니 이윽고 사연을 쏟아내셨다. 60년대 말, 70년대 초 증권사에서 주요 업무를 담당할 정도로 승승장구 하셨던 어르신은 98년 IMF금융위기 이후 증권사에서 나왔다고 한다. 물론 동고동락했던 임원진도 함께 나왔고 조건은 경제상황이 좋아지면 자신을 이사로 데려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증권사에서는 10년이 넘도록 아무런 연락도 없다. 자신이 증권사를 그만두고 나왔을 때 청와대쪽에서 중요한 약속을 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인권위에서 이와 유사한 상담을 자주 접한다.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정리해고, 퇴사로 인한 충격에서 고통 받는 이들이 많다. 어느 시점부터는 사회현상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증권사에서 어르신을 찾아줄리 없다는 단언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저는 청와대와 줄을 놓을 수 없지만 다른 방법을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답 없는 답변을 드렸다. 최근에도 고직급, 장기근속자들에 대하여 희망퇴직을 종용하고 이를 거부하면 담당업무를 전환하여 업무수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 결국 쫓겨나듯 사직서를 쓰도록 만드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한 회사에서 청춘을 바쳐 일을 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무능력자, 저성과자라는 불명예와 자괴감의 늪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지금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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