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 04월 | 이러쿵저러쿵] ‘일터’와 ‘삶터’

일터기사

‘일터’

‘삶터’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김 정 수

연구소가 수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튼지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지역의 다양한 활동 주체들과 관계 맺기, 수원촛불, 경기 이주공대위, 최근의 KCC 석면 대책위 등 지역 차원의 공동 활동에 참여하기, 지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보건 실천학교와 같은 독자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군불때기를 하고 있다. 2009년 이후로 수원, 경기 남부 지역으로 거처를 옮긴 회원들이 늘면서 올해부터는 지역 회원모임도 시작하기로 했다.

산업의학을 전공하고 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일하던 중에 건강을 잃은 많은 노동자들을 만났다. 보려고 하니 더 잘 보였던 것도 있었겠지만, 그들에게서 건강을 빼앗아 간 것은 십중팔구 안전하고 건강하지 못한 ‘일터’였다. 그들에게 ‘일터’는 생명줄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놓을 수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일터’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부족하나마 힘을 보태려고 애썼다. 그런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좀 더 많은 얘기들을 나누다보니 비단 ‘일터’만의 문제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지 못하는 ‘일터’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삶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사 걱정 없이 살 만한 집도, 사교육 걱정 없이 맘 편하게 아이들을 보낼 만한 학교도, 병원비 걱정 없이 믿고 갈만한 병원도. 아무것도 없는 ‘삶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위험천만한 ‘일터’를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위험을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는 살 만한 집과 맘 편히 아이들을 보낼 수 있는 학교와 믿고 갈만한 병원이 있는 ‘삶터’와 더불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연구소 회원들이 몇 년 전 총회에서 지역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하자고 뜻을 모았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이처럼 ‘일터’와 ‘삶터’를 함께 바꿔 나가는 것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그럼 이런 취지에서 앞으로 지역 회원모임에서는 어떤 얘기들을 나누고 어떤 일들을 하면 좋을까? 마침 아주 적절한 꺼리가 있다. 최근에 과거 한때 노동자들의 ‘일터’였고, 지금은 지역 주민들의 ‘삶터’를 위협하는 수원역 인근 KCC 석면공장 철거 문제가 터졌다. 지금까지 연구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기도 한 석면에 대해 회원모임에서 함께 얘기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함께 해보면 좋겠다. 100회가 넘게 이어져 오는 동안 계속 함께 하고 있는 수원 촛불에 대해 다시 함께 얘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는지, 그들과 더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찾아서 함께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지역 활동에 있어서는 그들이 선배이므로 그들과의 공동 활동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경기 이주공대위의 활동에 대해서도 함께 얘기해 보면 좋겠다. 지금까지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되짚어 보고 앞으로 지역 회원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최근 박지연씨의 죽음을 계기로 싸움이 한층 격해진 삼성반도체 문제는 우리 지역 주민들에게는 보다 민감한 사항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반올림 활동가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에서 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 지역 회원모임에서 함께 얘기해 보면 좋겠다. 거창한 목표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미 지역에서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부터 하나씩 얘기하고 실행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많겠다 싶다. 그런 작은 실천과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삶터’, 누구나 한번쯤 일해보고 싶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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