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8월ㅣ안전보건연구동향] 인권의 관점에서 산재보상을 바라보다

일터기사

인권의 관점에서
산재보상을 바라보다

한노보연 기획위원 최 민

미국산업의학저널 2012년 6월호는 ‘인권의 관점에서 산재보상을 다시 생각하며’라는 특집을 다루었다. 미국의 산재보상이 산재 노동자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의 원인이 근본적으로는 현재의 산재보상제도가 서 있는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기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대안을 찾아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에 대한 논쟁을 시작해보려는 취지라고 한다.
현재의 산업재해보상제도는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타협에 기초하여 수립되었다. 즉 산재노동자에게는 신속하고 공정한 보상을 보장하고, 사업주에게는 산재노동자의 소송으로부터 방어해주는 것이다. 애초부터 산재보상은 산재노동자에 대한 보상과 치료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으며, 이를 일정하게 양보하고 제한하는 가운데 사업주 이익과의 ‘합리적인’ 타협으로서 역사에 등장한 것이었다.
지난 20여년 사이에 미국 여러 주의 산재보상 관련 법률은 산재노동자가 더욱 보상받기 어려운 방향으로 변화했다. 주 정부들은 노동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업주의 비용을 줄이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산재보상제도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발상이었다는 점은 둘째치더라도, 협상의 양 당사자 가운데 사업주 쪽으로 일방적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산업의학저널 6월호 특집의 저자들은 ‘인권’이라는 관점으로 현재의 패러다임을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 관점은 적절한 보건의료 및 경제적 수입, 사회적 안전,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의 존엄을 보호하려는 접근이다. 이런 틀에서는 산재노동자가 권리주체이며 정부와 사업주는 의무당사자가 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가치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1)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는 보편적 인권이다.
현행 산재보험제도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농업노동자, 가사노동자, 실업자 및 임시노동자 모두 체계적으로 산재보상의 권리를 제한당하고 있다. 이들 모두에게 산재보상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저자들은 노동 능력 상실에 대한 보상과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 보편적인 ‘인권’이라면, 질병의 원인에 관계없이 즉 질병의 업무관련성과 관련 없이 필요한 경제적 지원과 치료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산재보상 제도를 넘어 전사회적인 안전망과 관련된 문제제기로, 산재보험에 대한 대안 모색이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이런 접근은 요통처럼 뚜렷한 원인을 찾아내기 어려운 질병에서 더욱 유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2) 산재보상은 그 자체로 필수적인 공익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연구는 산재노동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 자체가 사회적 선이며, 중요한 목적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의 보험요율 인상 문제가 있다. 이는 사업주에게 산재예방활동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이 때문에 해당 사업장의 산재노동자가 사업주의 눈치를 보고, 산재보상을 청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방을 위한 활동이 산재노동자의 충분한 보상을 가로막고 있다면 이는 일의 앞뒤가 뒤바뀐 것으로, 산재노동자의 보상을 방해하지 않는 다른 정책적 수단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3) 산재노동자의 존엄을 보호해야 한다.
산재노동자는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의 주체라는 점이 분명히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의 산재보상제도는 산재노동자에게 적대적이다. 산재노동자가 산재보상을 신청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업무관련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보상 신청 절차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어렵사리 산재보상을 신청한 후에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다거나 실직의 위협, 사업주와 보험회사의 감시에 시달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산재노동자들은 쉽게 제2, 제3의 피해에 노출된다.
4) 산재노동자의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권리주체의 참여이다. 산재노동자에게는 본인의 권리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산재노동자의 목소리는 고려해야 할 여러 입장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우선적으로 충족돼야 할 권리주체의 요구로 인식되어야 한다.
미국 제도에 대한 논문이지만 한국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도 산재보상은 노동자에 대한 시혜이며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관점에서 한국 산재보상제도를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길 기대한다.

원문 :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002/ajim.v55.6/issuet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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