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11월ㅣ유노무사의 상담일지]

일터기사


노무법인 필 노무사 유 상 철
nextstep1@hanmail.net

요즘 ‘노조파괴 전문가’에 대한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1989년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 중 노동자들에게 각목과 식칼테러를 자행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기획∙주도한 것은 당시 ‘제임스 리’라는 인물이었고, 이때부터 ‘노조파괴 전문가’라는 용어가 쓰인 것 같다.
최근 설립한 노동조합이 있다. 9월 중순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청하였다. 사용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교섭을 미루었고, 이틈을 이용해 임원들은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종용하거나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임원의 면담 시 대화 내용은 이렇다. “찌질이들이 만든 거 너도 알잖아. 소신껏 행동해. 아~ 너 어디로 가고 싶다고 했지? 한번 잘 얘기해 보자!” 결국 해당 노동자는 노조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가 “‘노조파괴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있으니 노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미 끝났다.”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그러면서 그간 한 번도 운영하지 않았던 노사협의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유화책도 던져놓고 있다. 게다가 “노조 탈퇴서가 인사팀으로 자꾸 제출된다”며 “노조에서 직접 탈퇴서를 수령하라”는 우스꽝스러운 공문까지 노조로 보내는 친절함을 보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노조 주요 간부에 대한 징계일 것이다. 그 사이 조합원들은 계속 줄어들 테니.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한 상태이지만 돈과 권한을 모두 쥐고 있는 사용자의 오만함은 시간을 벌어가며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그저 방관자의 위치에서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노동부의 여유로움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보장해주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흔히 ‘노조파괴 전문가’라 일컫는 이들이 자행하는 노조탄압 방식이 마치 공식처럼 되어가고 있다. 복수노조 설립 허용 이전에는 “단체교섭 지연-단체협약 해지-노동조합 활동 제한-쟁의행위 돌입-직장폐쇄-부당해고 등 징계 남발-노조탈퇴 압박-사업장 복귀(업무복귀 협약서)-선별적 교육-노조 무력화”가 공식 중 하나였다. 이 과정에서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곳도 수없이 많았고 최근까지도 마찬가지다.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 이후에는 “제2노조(회사노조)” 설립을 통해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노조에 가입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교섭창구 단일화제도가 회사노조의 출연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는 노조 탈퇴를 위해 징계압박, 원격지 전보 등 경제적, 인사 상 불이익을 운운하면서 노동자에게 강요된 선택을 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 놓였던 노동자들은 그 기억을 잊고 싶어 할 뿐이다. 너무도 창피하고 자괴감으로 인해 동료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각종 사업장의 진상조사 보고서를 요약하면 사업장 이름만 바꾸면 될 정도로 노조탄압 시나리오는 유사하다.
회사는 돈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경영권, 인사권을 남용하며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각종 수단을 강구한다. 이를 감독해야 할 노동부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묵인하고, 경찰은 폭력을 비호하였다. 그 뒤에는 경총, 전경련 등 든든한 자본이 뒤를 받쳐 준다. 심한 경우 BH의 개입 의혹이 제기된 곳도 많았다. 때문에 노조 탄압의 근본적 배경에는 반드시 자본과 권력이 놓여 있다.
노동자들의 노동3권 행사에 대한 사용자의 방해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여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악랄하게 노조를 탄압하였다고 하더라도 부당노동행위로 구속되었다는 사용자는 들어보지 못했다. 얼마의 벌금을 부과하는 정도에 그친다.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주는 이들이 ‘노조파괴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법을 잘 안다.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해도 당장 사용자에게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부당하게 인사권을 남용하여 해고하더라도 법률적으로 구제를 받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노동조합을 붕괴시키면 된다는 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문하였을 것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20% 탈퇴하면 1억 원의 성공보수를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서가 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이를 확인시켜 준다. 이렇게 ‘노조파괴 전문가’를 자칭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환경은 정부가 조성해 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노조파괴 전문가’라는 용어가 세상을 돌아다니자 “이런 일이 있었던 말인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고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정부 관료들의 기만에 분노가 끓어오른다. 이 틈을 이용해 자리를 굳히고 싶어 하는 ‘노조파괴 전문가’들은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노조를 와해시킬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 그러면서 ‘상호협력, 상생, 윈윈(win-win)’이라는 단어를 남발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투쟁, 노동조합 조직화의 주체는 노동자이다. 때문에 ‘노조지킴이 전문가’는 따로 없다. 탄압을 받는 것, 탄압을 뚫고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확대하고 단결력 강화를 이루어내는 것, 모두가 노동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 같은 이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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