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1월|기획] 학생을 가르치고 그의 삶을 만나는 일

일터기사

학생을 가르치고 그의 삶을 만나는 일-어느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의 이야기

한노보연 선전위원 흑무

지아(가명)씨는 4년차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이다. 10월호에 만났던 타워크레인 노동자처럼 이 코너를 만들며 그녀의 노동도 꼭 이 코너에 꼭 담으리라 숨을 고르고 고르다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약속시간은 오후 2시였다. 하지만 보충수업 후 갑자기 처리할 일이 생겼다며 약속시간을 한 시간 미루고 삼십분을 더 기다려 그녀를 만났다. 주린 배를 채우고 지아 씨의 하루 일과부터 물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요. 정해진 교사의 노동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반 까지지만 교장 재량으로 한 시간 더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죠.”
아이들은 8시 10분까지 등교하고 담임을 맡은 지아 씨는 그때부터 10분간 조회를 한다. 00이는 왔는지, △△는 왔는지, 그 날의 공지가 있다면 전하고 그렇게 조회를 마치면 8시 반부터 수업은 시작된다. 50분 수업, 10분 휴식이다. 수업은 7교시까지 진행되는데 마치면 오후 4시 10분, 다시 10분간의 종례를 하고 오후 4시 20분부터는 보충수업이 시작된다. 퇴근은 언제하나?
“보충수업이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고 또 오후 6부터 10시까지는 야자(야간 자율학습)감독도 해야 해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4시 반에 퇴근하고 세 번 정도는 야자 감독을 하니까 야자 끝나면 밤 10시, 그리고 퇴근하죠.”
야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해도 대학을 갈 생각이 있든 없든 운동부를 빼고서는 모두가 해야 하는 것이 야자였다. 담임선생님은 앞에서 책도 보시고, 수업 준비도 하시고. 그 때는 멍 때리며 혹은 친구와 쪽지를 주고받으며, 음악을 들으며 시간 죽이는 나와 내 친구들만 불쌍하다 싶었는데 그 앞에 앉아 ‘감독’이라는 걸해야 했던 선생님의 시간도 이제 보이는 듯하다.
“요즘 야자는 자율이라서 한 10명 정도 교실에 있나? 3월에는 분위기도 잡아야하고 해서 매일매일 야자 감독을 해요. 매일 밤 10시에 일과가 끝나고, 토요일에는 토요일대로 ‘토요학교’라는 게 있어서 나와서 감독을 하죠. 3월에는 뭘 할 수가 없어요.”
토요학교? 학교에 일명 ‘놀토’가 있다는 정도나 알지 학교가 주 5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도 잘 몰랐는데 토요학교도 있구나 싶다.
“지금 저희 학교의 토요학교는 자습하는 거예요. 원래 미술이나 음악, 축구나 농구 같은 프로그램도 있는데 다 폐강되고 자습만 남은 거죠. 형편이 넉넉한 지역이 아니라서 미술이나 음악을 돈 내고 배우는 것은 가정 형편상 부담스럽고, 축구나 농구야 평상시에 하듯 공 가지고 놀면 되는데 굳이 수업료를 내고 배울 필요가 없는 거죠. 토요학교 감독 나가면 어떤 때는 학생 한 명이랑 저랑 둘이 앉아있을 때도 있어요. 토요학교나 평일 야자나 학생이 얼마 안 되니까 그나마 요즘에는 합반해서 감독하니 제가 교실에 있어야 하는 횟수가 좀 줄었고요.”

지아 씨에게 교사의 노동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를 물었다.
“첫 번째는 감정적 소모가 굉장하다는 거예요. 아이들과의 소통이 몹시 중요한데 저희 반 아이들이 33명이거든요. 담임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많다보니 너무 말썽을 부리거나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신경을 못 쓰게 되요. 지역 특성도 있고 해서 서른세 명 아이들의 가정사도 있어서 하나하나를 돌봐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학급당 인원수를 낮춰야 한다고 한다.
“수업의 질이나 담임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학급당 인원수를 줄여야 해요. DJ정부 때 법정 적정인원이 33명이었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법적 적정인원은 그대로거든요. 그런데 이 기준도 지켜지지 않아요. 다른 지역에 가면 한 학급의 학생수가 40명이 넘는 학교들도 많거든요.”
내 주변에도 임용‘고시’라고 부르는 교원자격시험에 붙기 위해 몇 년씩 애쓰는 친구나 선배, 후배들이 있었다. 아니, 말 많은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려면 학급 인원은 줄여야 하고, 교원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럼 교사를 더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
“더 뽑아야죠. 근데 예산이 부족하다고 잘 안 뽑아요. 예전처럼 학교가 권위에 기대는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과거와는 또 다른 공간이에요, 학교는. 아이들과 동등하지만 또 보살피는 곳이죠. 제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조용히 해!’인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요즘 학교들 보면 시설투자 굉장히 많이 하거든요. 근데 중요한 건 TV놓고 빔 설치하는 게 아니라 교원을 확충하는 거예요. 집에서 인강(인터넷 강의)보면 되지 뭐 하러 학교에 나와요.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거죠.”
두 번째 특징을 물으니 ‘입시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꼽는다. 입시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라……. 그녀가 일하는 곳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는 학교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학교의 많은 학부모, 학생이 원하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입시교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배제될 수밖에 없거든요. 소수를 위주로 굴러가요. 나머지 아이들은 그냥 교실을 채우는 존재가 되는 거죠……. 또 일제고사를 보니까 전국 순위가 나와요. 전국에서 지역 순위가 낮으면, 지역에서 그 학교 순위가 낮으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교장도 교육지청도 선생들만 들들들 볶는 거죠. 근데 조건이나 배경은 안 따지고 그 순위만 따지면서 등수를 올리라고 하면 그게 되는 건가요. 또 다른 소외죠.”
아이들이 학교에 수업을 듣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니 그 오랜 시간을 좁은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힘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앉히고 조용히 시키고 책상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지아 씨도 힘들다.
“조, 종례 할 때 앉히기도 힘들어요. 물론 학교 분위기 차이도 있고요. 저는 매일 똑같은 말을 해요, 수 십 번씩. ‘교실에서 운동화 신지 마라’, ‘앉아라’, ‘00이 학교왔니’, ‘조용히 해라’… 마음을 비우는 것이 중요해요. ‘한 달 쯤 같은 얘기를 했으니 알아듣겠지’ 라든가 ‘그렇게 하겠지’ 하는 것들요. 한 달을 매일같이 똑같은 얘기를 해도 안 들으니 처음에는 ‘얘들이 나를 무시하나’ 했었어요. 연세가 있으신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이렇게 말을 안 듣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다고도 말씀하세요. 제 기대와 다르고 어긋나면서 느끼는 무력감이나 좌절도 크죠.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은 지금껏 만들어 온 아이들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으니까요.”

문득 교사들의 직무스트레스에 대해 조사한 것은 없나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돈을 주고 사야하는 리포트들 말고는 한 줄 기사가 눈에 띈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감정노동자의 직무 환경과 스트레스」라는 제목의 논문에는 교육자도 ‘감정노동자’에 포함되어 있다. 김 교수는 “특히 교육 서비스를 포함하는 공공서비스 부문 종사자들의 스트레스가 민간 부문보다 더 높게 조사됐다.”고 강조했다’는 내용이다. ‘교사 힐링 캠프’가 열렸다는 또 다른 신문기사도 보인다. 교사와 감정노동을 이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지아 씨 이야기를 들으며 서비스 노동자와는 결이 또 다른 감정 노동이 교사들에게 있겠구나 싶다.
인터뷰를 하며 지아 씨가 느끼는 막막함이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라는 마음이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 부끄럽게도 평상시에 교육, 청소년에 대해 별 고민 없이 살고 있는 나지만 아이들이 멍하니 앉아있는 그 순간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을 마주해야하는 지아 씨의 마음도…….

지아 씨는 반 아이들이 어쨌든 학교에 있어야 하는 그 시간 동안 뭐라도 하게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학급 문고다. 책은 어디서 났냐고? 지아 씨의 책이다. 70권쯤 교실에 가져다 놓았다. 소설도 갖다놓고, 만화책도 갖다 놓고, 사진 투성이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가져다 놓았다. 교과서는 펴지도 않던 아이들이 소설책을 뒤적거리고 다음 권의 만화책을 찾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고 지아 씨는 전했다. 하지만 교사 개인이 학급문고 운영을 지속해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책을 채우기 위해 돈을 걷을 수도 없고, 지아 씨가 신권을 계속 채워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학급문고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을 생각하는 지아 씨의 마음이 너무 예쁘기도 했고 한켠으로 교사 개인의 종종거림이 안타까웠다. 한 사람의 종종거림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전부를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니.
지아 씨는 나이 들어서의 자신이 겁난다 했었다. 아이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삶을 만나요. 그런데 자신의 노동에 지쳐버린 교사가 온 마음을 다해 학생들을 만나려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소모되어 지쳐나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친 몸과 마음을 개인적 수준에서 추스르고 다시 학교에서 모두다 소진되어버리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 교사가 지치지 않는 교육을 할 수 는 없을까?”
그러게,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나도 지아 씨가 걱정됐다.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활동을 하는 것도, 오르고 내리며 공들이는 것에 있어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어쩌자고? 지아 씨의 말마따나 의지가 무슨 화수분인 것도 아니지만 각자가 각자의 일상에서 차근차근 공을 들이며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그러다 힘들면 인터뷰 말고 수련회(술연회)를 가져보자, 뭐 이런 것! 아 결론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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