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2월|특집1] 근골격계 투쟁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 과제

일터기사

3년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의 해인 2013년, 이번호 일터 특집에서는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맞이하는 각 주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의 성과로 제도화된 사업장 유해요인 조사가 형식적으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만연한 현재, 우리는 어떻게 유해요인 조사에 임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특집1] 근골격계 투쟁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 과제
한노보연 부산연구소 김영기
1. 들어가며
10여 년 전, 전국의 노동현장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근골격계직업병’, ‘노동강도’였다. 알다시피 근골격계질환은 자본주의 시작 이래로 있어왔던 직업병이었고, 2002년 이전에도 전화교환원, 현대정공 노동자들의 집단요양신청이 있었다. 그러나 2002년 대우조선 노동자들을 필두로 2003년 정점에 오른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은 그 전에 있었던 근골격계질환의 문제제기와는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당시 투쟁의 성과로 쟁취한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를 올해로 벌써 5번째 맞이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는 현장의 변화들은 얼마나 축적되어 왔는지 반추해 볼 일이다. 해서 10년전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고 현재 시점에서 근골격계질환과 관련된 상황을 살펴보려고 한다.
2.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투쟁의 성과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의 가장 큰 성과중의 하나는 근골격계질환이 직업병이며, 이 직업병의 원인으로 노동강도 강화와 같은 집단적 요인을 발견한 것에 있다. 그 전까지는 근골격계 질환의 원인으로 나이, 키, 몸무게, 취미생활 등 개인적 요인과 중량물 취급, 불안정한 작업자세, 진동 등 개별적 작업요인에서 찾는 경향이 강했다. 그리고 근골격계 통증은 일하면 누구나 아픈 것으로 너무나 당연시 했기에, 이를 직업병으로 보고 산재신청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실제 1997~1998년 당시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산재신청을 하여 승인받은 건수가 전국에서 100~200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집단요양투쟁의 과정은 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질환도 직업병이며, 산재신청하면 된다’라는 다른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리고 집단요양투쟁을 조직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IMF 이후 벌어지고 있는 정리해고, 구조조정, 불안정 노동자의 증가 등이 근골격계질환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근골격계질환의 집단적 발생에서 집단적 요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노동강도 강화 저지가 집단요양투쟁의 핵심 요구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노동강도 강화’가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핵심 요소이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이 어떻게 좀먹는가를 알게 되는 과정이었으며,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자 계급성을 인지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가 집단인 ‘경총’에서 ‘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등 근골격계직업병 문제에 적극 대응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본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정확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성과는 ‘현장조직화의 경험’이다. 당시 집단요양투쟁들은 그 궁극적인 목표를 단순히 ‘요양승인’에 두지 않고 현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하는 것에 있었다. 따라서 요양자만이 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현장조합원 전체가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시킬 수 있는 현장투쟁에 나설 수 있었다. 특히 두원정공 사례 등 몇몇 사업장의 사례는 지금까지도 유례가 없는 소중한 경험을 우리에게 안겨준 바가 있다.
마지막으로 얘기할 수 있는 성과는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의 도입’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노동자의 집단요양투쟁이 가져온 성과물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유해요인조사’는 국가가 주도하는 근골격계질환 예방제도로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으며, 잘 활용한다면 근골격계질환 예방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이다.
3.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의 한계
하지만 이러한 유의미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곧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그 한계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한계는 집단요양투쟁이 비록 요양승인에 궁극적 목적을 두지 않았고 일부 현장의 경우 현장개선, 노동강도를 줄이는 성과까지 이어지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현장에서는 요양승인 이상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에 있다. 결국 근골격계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더 확대되지 못하였고, 현장에서는 현장개선과 노동강도 강화 저지가 아닌 ‘치료 기회의 확대’라는 당근을 통해 근골격계 문제가 다시 수면 밑으로 잠기게 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본은 산재신청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현장노동자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사내 물리치료실, 운동치료실 등 자본이 기획한 사내 치료 방식을 주도적으로 제공함으로써 현장개선보다는 사후 치료에 노동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는 결국 밖으로 드러내야 할 직업병 문제를 공장안에서 은폐하게 만들어 근골격계질환 문제의 확산을 저지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은 운동주체의 역량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즉,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통해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문제제기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근골격계질환을 둘러싼 주도권은 자본에 넘겨주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암울한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투쟁의 성과물인 ‘유해요인조사’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여 경총에서는 계속 폐지를 주장하고 있으며, 현장에서도 사측 압박수단 외에는 현장개선의 핵심 무기로 활용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친자본 정부는 산재법 개악을 통해 근골격계질환 산재승인률을 지속적으로 낮추고 있고, 현장에서는 산재승인이 어렵다는 인식이 깔리면서 산재신청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다.
4. 향후 과제
사실 집단요양투쟁 당시에는 이렇게 나가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현장에서 제기한 노동강도 등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유의미하다. 따라서 좀 더 광범위하고 세밀한 문제제기는 계속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야간노동, 장시간 노동의 문제 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매우 소중하고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현재처럼 노동자 건강의 문제가 이슈화가 되지 못한 측면에서는 더욱 필요하다. 다만 구호, 캠페인에 그치는 이슈제기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막연한 문제제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제기, 근거가 필요한 시점이다. 즉 야간노동으로 인한 건강문제를 구체적으로 발굴하고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영향에 대한 우리나라에서의 근거를 찾아 대안을 제시하고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와 함께 노동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제도개선 투쟁도 병행되어야 한다. 근골격계질환과 관련하여서도 그동안 제도적 접근은 인정기준 개선, 질판위 판정체계 개선 등으로 집중되었으나 산재인정과 관련하여서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즉 아프면 산재승인여부 관계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도입하는 것, 재해를 당한 노동자가 직업병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사업주 혹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입증 책임을 지는 문제 등이다. 이런 문제는 과거에는 실현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요구로 조직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복지가 대세인 세상이 되었으며, 위와 같은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제는 해볼 만한 싸움이 될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한 고민과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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