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ㅣ12월ㅣ새세상열기] 다문화주의와 상반되는 이주민들의 현실

일터기사

다문화주의와 상반되는 이주민들의 현실

이주공동행동 기획위원 이 정 원

올 7월 노르웨이에서 브레이비크가 벌인 끔찍한 테러는 ‘이슬람 혐오’와 ‘인종차별’이 얼마나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유럽에서 공공연하게 무슬림을 표적삼아 공격하는 집단들은 하나같이 ‘다문화주의’를 비난한다. 그리고 이 대열의 선두에는 비단 극우 정치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 영국의 총리 데이비드 카메론 등은 앞다워 다문화주의 파산을 선언하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다문화주의가 반동적인 공격에 직면해 있다.
이 사건 이후 언론들은 한국에서도 이주민 문제나 다문화 시대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이런 비극이 단지 남의 나라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앞 다퉈 경고했다. 유럽의 예를 들며 다문화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 우려의 스펙트럼은 매우 폭이 넓다. 이 중 가장 우려스러운 목소리는 이주민과 다문화를 반대하는 인종차별적 주장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다문화주의 반대 모임’이 결성되기도 했다. 이런 우익 인종차별 집단의 증가는 혹자들이 말하는 외국인의 급격한 증가나 한국 사회의 유난스러운 ‘배타주의’ 때문이 아니라 지난 10년간 툭하면 이주민을 ‘테러리스트’, ‘잠재적 범죄자’로 또 ‘노동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몰아 온 정부와 주류 언론들이 조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이주민 때문에 일자리와 복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를 지배하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이익과 몫이 희생되는 것이 진정한 문제다. 그래서 이주민을 이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진정으로 도전해야 할 표적을 가리고 함께 단결해 싸울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한국에서 다문화주의를 논한다면, 다문화주의가 사회 분열을 낳는다는 비난 따위가 아니라 정부의 불충분하고 모순적인 다문화주의를 문제 삼는 것이 우선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정부가 정주 이주민의 증가 – 정확히는 결혼 이주민의 증가와 이들의 자녀 증가 – 에 대응하는 정책으로서 내놓은 것이다. 2006년 대통령이 “다인종·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발표한 후 거의 모든 부처에서 다문화 관련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매해 증가해 왔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한 이래 현재 체류 외국인이 1백40만 명을 넘었고 약 1백만 명이 장기 거주하는 이주민들이다. 이들 중 약 70만 명 이상이 이주노동자고 결혼 이주민도 15만 명에 가깝다.
그러나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결혼 이주민들의 한국 생활 적응과 안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는 몇 지역에서 이중언어 교육 – 한국어와 어머니 나라의 언어 교육 – 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많은 경우 이런 내용이 매우 작은 비중을 차지하거나 전무한 경우가 많다. 많은 이주민 지원 단체들과 연구자들이 비판하듯이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한국 문화와 규범에 대한 ‘동화’ 지향성이 강하다. 또 국가경쟁력이나 다문화 인재 양성이라는 ‘국익’의 맥락으로 접근하곤 한다. 이것은 소수자 그룹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공적인 영역에서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다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도 충돌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여러 억압적인 이주 정책들과 공존하는 다문화주의의 모순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직장을 마음대로 옮기지 못하고 툭하면 비자를 박탈당해 미등록 처지로 내몰린다. 단속ㆍ추방도 여전히 되풀이되며 이 과정에서 사망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이주노조는 여전히 ‘법적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이주노조 간부들은 정부의 표적이 돼 왔다. 외국인 범죄를 의도적으로 부풀리고 왜곡해 외국인 지문날인 제도 부활 등 통제를 강화했다. 또 정부는 결혼 이주자들의 ‘사회 통합’이 중요하다며 되레 귀화 절차와 심사를 강화했다. 심지어 이른바 ‘공산권’ 국가 출신 이민자들에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한다는 서약까지 요구한다. 얼마 전 필자는 서울출입국관리소 민원실에서 베트남 아내와 함께 온 남편이 “아내가 귀화 심사 때 애국가 2절을 부르지 못해 떨어졌다. 그런데 나도 애국가 2절을 모른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옆에서 보기 딱해서 말을 붙이자 그 남편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광복절이 무슨 날이냐는 질문에 답을 못해 떨어졌다”고 했다. 한국이 난민 협약을 비준한 지 20년이 다 돼 가지만, 난민 신청자 3천6백82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고작 2백53명에 그친다.
이런 현실은 그동안 정부가 내세워 온 ‘다문화 환경 조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 뿐 아니라 다문화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만적이고 불철저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다문화 정책을 이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전면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이주민들과 연대해 정부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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