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ㅣ12월ㅣ일터 다시 읽기] 고통의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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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통계
한노보연 회원 연 아

통계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지루해진다.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숫자들에는 언어가 가지는 이미지나 감정 등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진보적 주제를 다루는 통계들을 보면 당연한 이야기에 숫자만 붙여 놓은 것 같을 때도 많다. 내가 처음 관심을 가졌던 전문적 연구는 건강불평등 연구였는데 그 결론은 지역에 따른 건강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통계의 지루함 혹은 고통 때문일까. 통계 연구가 많은 일터의 연구소 리포트는 가장 먼저 찾아 읽게 되는 꼭지는 아니다.
하지만 통계는 사회과학, 의학 등 전문적 학문의 방법론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 이미 밀접해 있는 것 아닐까. 정당, 선거후보 지지율 여론조사는 신문의 단골 톱기사이고 최근 대세인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전문가의 평가보다 다수 대중들의 참여를 통해 승자를 결정하고 있다. 통계는 분명히 한계가 많다. 99%가 만족한다고 해도 1%의 불만족이 논리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거나 향후에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서 더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99%가 만족하는 이유가 1%의 불만족에 있다면? 나의 이런 초보적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정교한 통계 분석이 있을테고, 질적연구도 존재하는 것 같다. 기회가 되면 공부해보고 싶다.
어쨌든 나는 요즘 통계를 재밌게 읽으려고 한다. 몇 퍼센트의 숫자로 나타나 있지만 사실 그건 한사람, 한사람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 아닌가. 앞서 언급한 건강불평등 연구도 통계에 생명을 불어넣어보려는(?) 시도를 해본 적 있다. 각 지역마다 기대여명을 다 통계를 낸 그 연구를 한 지역신문에 소개하면서 XX지역 주민이라는 이유로 강남, 서초구 주민들보다 1년에 300명이 더 죽어간다고 설명을 했다. 기대여명이 1-2년 짧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구조적 연쇄살인범이라는 선동도 했다.
일터 2011년 6월, 7월호 연구소리포트에 연재 된 ‘재해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기초연구’도 흥미롭게 읽었다. 아니 고통스럽게 읽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까. 처음엔 제목부터 지루할 것 같아서 미뤄놓았지만 오히려 제목조차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호기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다.
자본의 이윤 논리에 종속된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병든다는 사실은 자주 접하고, 고민하지만 그렇게 다치고, 병든 노동자들이 계속 고통 받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자주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재해노동자들이 산재 불승인을 받고, 승인을 받더라도 그 기간이 오래 걸리고, 치료비, 임금문제로 고통 받고, 직장과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 받는다는 것은 모르는 것 아니었다. 그러나 새삼 재해금속노동자들이 하나하나 설문지를 읽으며 작성했을 그 고통의 통계가, 75.15%와 같은 숫자들이 가슴 한 구석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고통 받는 것도 모자라 우리는 지체 높으신 양반들에게 고통을 통계적으로 증명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산재보험 개혁이든 산재승인이든 고통을 끝내고 건강해지기 위해,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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