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7월l문화마당]<두 개의 문>을 보는 두 개의 시선

일터기사



<두 개의 문>을 보는 두 개의 시선





한노보연 운영집행위원 최 민



영화 <두 개의 문>이 화제다. 621일 정식 개봉한 <두 개의 문>은 개봉 8일 만에 관객이 1만 명을 넘어서고 상영관도 24개로 늘어났다. 28일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전국적으로 900여개에 이르는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는데, <두 개의 문>800명이 넘는 배급위원단이 꾸려져 16개의 스크린으로 출발했고,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주연배우나 어마어마한 광고 물량 없이도 나름대로 꿋꿋이 흥행몰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배급과 흥행 과정 자체가 참으로 장하고 예쁜 영화라 하겠다.




기회가 되어 영화를 2번이나 보았는데, 용산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 만들어낸 절절한 영화였다. 여러 언론과 평론가, 관객들이 칭찬하듯이 가해자로 상징되던 경찰특공대의 고통과 위험을 드러내면서 또 다른 방향의 시야를 열어주는 구성이 훌륭했다. 세련된 편집과 빼어난 만듦새도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일 년 넘게 남일당에서 함께 살고 투쟁했던 감독들의 진지한 시선은 비극적인 당시 상황을 꼼꼼히 곱씹게 해주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용산과 재개발의 비극에 맞서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관객과의 소통과 교감이 새로운 힘과 희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였다.



영화보고 동상이몽



그런데, 직장 동료 한 명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가 무작정 철거민 편들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고 한다. 자기는 골리앗을 세워 건물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져대는 철거민들이 있는 상황에서 진압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진압을 하더라도 사람을 죽게는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무리한 진압작전이 세워지고, 그 와중에 철거민의 목숨도 경찰특공대의 안전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저간의 사정에 분통이 터졌다는 것이다.


잠시 말문이 막힌다. 그럼, 사람이 죽지 않은 안전한 진압이었으면 됐을까? 며칠 동안 더 시위하도록 놔두고, 얘기도 들어주다가 그래도 안 됐을 때 좀 더 계획을 잘 세워서 진압했으면 괜찮았을까? 쌍용차 파업을 진압할 때는 똑같이 특공대가 컨테이너 타고 투입되어 노동자를 두들겨 팼어도 그 자리에서 누가 죽어나가지 않았으니 괜찮았던 걸까? 아하, 그래서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신속한 진압이라는 걸까? 그럼 사람 목숨도 개의치 않는 진압 작전이 세워질 수 있는 배경은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김석기가 경찰청장 임명을 앞두고 개인적인 업적이 고파서 진압을 서둘렀다고 설명하면 되는 걸까? 그럼 그날 새벽 걸려온 전화가 김석기였는지, 이명박이었는지 그런 게 중요한 걸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절차적 정당성인가?



국가는 원래 폭력적이야. 왜냐하면..



국가가 어떻게 국민에게 이럴 수가.. 라는 식의 선동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고 썼던 한 트윗 친구의 걱정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국가가 어떻게 국민의 안전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고,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이렇게 내팽개쳐도 되는 거냐고 분노한다면, 그들이 세운 절차와 그들이 말하는 정당성을 말끔하게 지키고 쳐들어올 때 우리는 싸울 수 있는 힘을 얻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차라리 우리는 국가는 원래 폭력적이었다는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국가가 왜 원래 폭력적이냐고 묻는다면, 국가는 자본주의와 그 지배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때문이라는 얘기 말이다. 그 자본주의와 지배계급은 시작에서부터 온 몸에 피와 오물을 뒤집어쓰고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옛날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1871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부르주아들이 도망친 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것은 파리의 노동자들, 파리의 민중이었는데, 그렇게 자기 나라 수도를 지키려고 투쟁했던 노동자, 민중에게 국가는 일주일간의 대학살로 답례했다고. 이 옛날이야기가 사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서, ‘국가에게 철거민과 경찰특공대 6명의 죽음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재개발을 위한 부수적 피해일 뿐이고, 반도체 노동자들의 죽음은 차세대 산업발전을 위해 감수하고 가야 할 문제일 뿐이라고.


바라건대, 일터 7월호가 발간될 때까지도 전국의 더 많은 극장에서 두 개의 문이 상영되고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회원들도, 일터 독자들도 더 많이 영화를 보고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많은 사건과 역사들에 대해, 절차가 무시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철지난 것처럼 보이는 국가와 계급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함께 해 나갈 싸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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