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ㅣ8월ㅣ연구소리포트] 삼성반도체 혈액암 환자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일터기사


삼성반도체 혈액암 환자들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왜 중요한가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인아

오래간만에 쓰는 연구소 리포트이다. 그것도 내가 쓴 논문을 소개하기 위한 연구소 리포트이다. 솔직히 논문은 그 동안 소위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라는 포괄적 제목 하에 다루어지고 보도가 되었던 다양한 암 환자들의 제보 사례를 학술적으로 풀어낸 것에 불과하다. 보건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가장 기초적으로 배우는 역학 (epidemiology)에서 질병의 특성과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시간 (time), 장소 (place), 사람 (person)에 대해 정리한 것이다. 멋진 통계 방식을 쓴 것도 아니고 그 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신기술을 가지고 업무관련성을 밝혀낸 것도 아니다. 그냥 삼성에서 일하다가 희귀한 암에 걸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일을 했고,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그냥 기술적으로 (descriptive) 살펴본 것이고 그 동안의 논쟁에서 조금 부족했던 학술적인 문제에 대해 고찰했고, 국제적으로 알리고자 영어로 쓴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터의 독자라면, 그리고 이 땅의 노동보건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논문을 읽고 나서 뻔한 내용에 오히려 실망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연구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를 밝히는 것과 더불어 좀 더 개인적인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왜 이런 논문을 써야 하는가?”가 바로 그것이다.

논문의 시작은 아주 단순했다. 삼성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나 비호지킨 림프종과 같은 혈액암에 걸렸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특징이 뭘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저자들이 머리가 좋아서 50-60여명을 다 기억을 할 수 있었다면 이런 논문은 세상에 안 나왔을 거다. 논문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2011년 초까지 반올림에 제보한 삼성전자 근무 경력이 있는 조혈기계 암 환자는 총 58명 이었다. 제보라는 자료의 특성상 진단명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정확한 세부 진단명은 모른채 그냥 백혈병이라는 사람이 15명이었고, 급성골수성 백혈병이 16명, 비호지킨림프종이 10명이었다. 이들 중 반도체 관련 공장에 근무하는 사람이 35명이었고 반도체 이외의 삼성전자 근무자가 23명 이었다 (표 1).

전체 제보자 중 비반도체 사업부 종사자 23명, 반도체 사업부이지만 FAB 공정이 아닌 조립공정이 있는 온양공장에 근무했던 6명, 전문가, 연구자, 사무직 등 비제조부서 6명, 확인되지 않는 백혈병과 병리학적으로 발병 기전이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 호지킨병, 그리고 작업력을 확인할 수 없었던 4명 등 총 41명을 제외한 17명의 개인적 특성은 표 2와 같다. 제보자가 누구이던 간에 우리가 파악하려고 했던 정보는 진단명과 진단 시 나이, 입사일, 업무 시작부터 발병까지의 잠복기, 직종, 어느 라인에서 근무를 했는지, 구체적이 업무는 무엇이었는지였다.

17명의 공통된 특징은 주로 고연령에서 백혈병이나 비호지킨 림프종이 발생하는 것에 비해서 진단당시의 나이가 20-30대로 젊다는 것이었고, 근무한 라인이 1~5라인 정도의 초기라인인 경우가 많았으며 에칭이나 확산, 포토처럼 화학물질이나 방사선 사용이 잦은 공정에서 일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특성을 조금 더 정리해보면 표 3과 같은 결과를 볼 수 있다. 제보자 중 11명은 이미 사망을 한 경우였고, 직업과 관련하여 발생한 혈액암에서 가장 흔한 암종인 급성골수성백혈병(AML)이 9명으로 가장 많았고, 여성은 모두 오퍼레이터였고, 남성은 모두 엔지니어였다. 화학물질 사용이 많은 확산이나 에칭에 근무한 사람이 6명으로 많았고, 진단 당시 평균 나이가 28.5세로 혈액암이 일반적으로 고연령에서 생기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젊은 연령에 발생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평균 잠복기는 8.7년으로 1명의 경우 1년 미만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발암물질 노출 후 최소 1년 이상의 잠복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입사년도가 공정이 자동화가 되고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이 최소화 될 수 있는 폐쇄식으로 바뀐 2000년대 이전인 경우가 12명이었다. 어쨌든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비슷한 일을 했던 젊은 사람들이 희귀한 혈액암에 걸린 것은 사실이다. 원인적 관련성이 있는지는 이 사실들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충분히 의혹을 품을 수는 있는 현상이다.

(AML; 급성골수백혈병 / ALL; 급성림프아구백혈병 / NHL; 비호치킨림프종)

사실 아직까지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였다는 것이 암 발생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지는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영국의 국립반도체나 미국의 IBM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발생한 경험이 있지만 학자들은 과학적 분석의 방식이나 암이라는 매우 희귀한 질병의 특성상 대규모의 역학연구를 통해서도 밝혀내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관련성이 없다는 논문을 내기도 하고,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논문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결론이 다른 논문들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대규모 역학 연구 방식의 한계와 실제 작업장에서의 과거 화학물질 노출 수준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즉, 벤젠이나 포름알데히드, 트리클로로에틸렌, 방사선, 비소 등 다양한 발암 물질이 업무에서 사용되었고 이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러한 발암물질이 확실하게 100% 그 질병을 일으켰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100% 아니라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에서도 영국이나 미국의 반도체 회사에서 사용한 화학물질들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작업공정의 부산물로 벤젠이 나온다는 보고도 있었으며, 작업과정에서 산화에틸렌, 벤젠, 트리클로로에틸렌, 포름알데히드나 방사선 같은 혈액암 유발 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주장들도 있고 일부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도 있다.
그 다음의 업무관련성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이러한 노출이 가능한데, 실제로 노출이 되었다면 그게 암을 유발할 정도의 노출이었냐는 것이다. 이것 역시 다양한 쟁점이 있을 수 있는데, 매우 높은 수준의 노출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낮은 수준의 노출이 다양한 발암 물질에 의해서 동시에 일어났다면 이의 생물학적 효과는 어떠할 것이냐는 안타깝게도 아무도 모른다.
마지막 쟁점은 이러한 모호성과 역학조사를 통한 위험이 낮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이다.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 (International Agency of Research of Cancer, IARC)의 핵심 연구자인 Boffetta는 “추정된 위험이 낮다는 것은 실제 위험이 낮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low estimates may reflect lack of knowledge as well as lack of risk)”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역학조사 결과 표준화사망비와 발생비가 일반 인구에 비해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나지 않은 것이 업무관련성이 없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 대규모 역학조사에서조차 여성의 비호지킨 림프종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러한 사실에 대한 고려와 해석은 부족했다. 표준화사망비나 표준화발생비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진 않다는 것은 Boffetta의 말처럼 반도체 종사자에서 위험이 낮다는 해석뿐만 아니라 정보와 우리의 현재까지의 지식이 부족해서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되었다. 이 와중에 수행된 몇 가지 연구들은 원자료와 전체 공식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고, 삼성이 인바이런에 의뢰해서 수행한 연구 보고서는 아주 제한적인 방식으로 제한적인 기간에만 공개되어 그 내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들 역시 업무관련성 여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 대규모 역학연구에서 드러난 사실과 개인의 업무관련성을 평가하는 것은 사실 조금 다른 문제이기도 하고, 해당 개인이 과거에 노출되었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며, 만약 과거 노출을 정확하게 안다고 해도 원인적 연관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란 없기 때문이다. 보상을 해줄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는 사회복지체계 안에서의 보장 범위의 문제일 수 있고, 과학의 모호함 속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학자들이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암물질에의 노출 가능성과 이로 인한 암 발생의 가능성이 아무리 적더라도 있다면 보건학의 기본 원칙인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가능한 예방조처를 강구해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알 권리가 보장되고, 사업장의 관리가 불의의 사고에까지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기본적인 안전보건 관리와 정책이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좀 더 과학적으로 정밀하고, 다양한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좀 더 근거가 있는 작업장 위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명확한 원인을 찾는 작업과 동시에 적극적인 예방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7명이라는 사람들에서, 그것도 20-30대의 젊은 나이의 사람들에게서 혈액암이 발생했고 이중 11명은 이미 사망했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언젠가는 정보의 부족을 넘어 관련성을 밝히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고, 설사 관련성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사회 복지 체계 안에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길 것이며, 이들을 기억함으로 인해 현재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이 보호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논문이 출판되고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인 “왜, 논문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변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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