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5월|일터다시보기]통권 96호 ‘안으로부터, 밑으로부터 –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이은주 국장 인터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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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96호 ‘안으로부터, 밑으로부터 –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이은주 국장 인터뷰’를 읽고

한노보연 배영희

이 글을 읽게 된 건 2012년도 초였다. 그리고 은주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김정수 소장의 결혼식이었다. 그때도 잠깐 봤으니 제대로 본 건 한참 전에 일이다.
내게는 지금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은주 언니에 대한 기억이 있다. 창원 집에서 개다리소반을 사이에 두고 숙견 동지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의 일인데 그 날은 잠시 도바리 치는 시간 뒤 한창 창원에 벚꽃들이 만개할 무렵 한 사업장에서 교육과 회의가 있던 날이다.
활동을 쉬고 있는 요즘 가끔씩 언니가 떠오른다. 집회나 선전전을 할 때 항상 대오 뒤에서 갖가지 선전물과 피켓을 챙기던 모습. 막 들어온 후배를 가르치듯 긴 플랑에 한자 한자 글씨를 써 내려가던 모습. 그 때가 김주익 열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다. 그렇게 지역 투쟁 현장엔 항상 이은주 동지가 있었고 그녀는 뼈대 굵은 베테랑 활동가라면 으레 있음직한 주요 회의장, 선동 장소가 아닌 선전물을 만드는 곳 현장의 동지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있었다.
그토록 밖으로 나와 다시 활동을 고민하던 때, 언니 집에서 만난 그 개다리소반을 사이에 두고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을 때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던 언니로 인해 나는 다시 돌아와도 되겠다 안심 했었다.
그런데 나는 잘 돌아왔던가? 아니 엄청 방황했고 회의감이 밀려왔고 많이 아팠다. 다시 활동하고 시작하고 싶었던 내 소망과 달리 한없이 가라앉았다. 그럴 때 언니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다들 이제는 안 된다. 힘이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언니는 어쩜 그렇게 한결 같을 수 있냐고. 내 물음에 그녀의 대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동지가 거기 있으니깐……” 그녀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더 이상 물음이 필요 없는 답이었다. 동지들에 대한 신뢰가 꺾이지 않는 이유에 충분한 답이 되었던 간결하지만 강렬했던 그 한 마디.
2012년 초겨울, <일터>에서 본 그녀의 이야기는 나를 8년 전에 그때로 되돌려 놓았다. 변하지 않은 이은주 동지의 이야기. 지금도 여전히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선명한 인터뷰. 타래 동지 말대로 이은주 동지는 역사라기보다는 그보다 더한 현재라는 말. 그간의 산추련 활동에 대한 명확한 평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활동에 대한 분명한 신념…
자본주의로 인해 우리의 삶이 파편화 되었지만 본질은 통한다는 이야기. 주당 70시간 일하면서 보약을 먹는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주변에서도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한다. 뼈 빠지도록 일하고 돈 벌고 아프니까 병원 다니고 약 챙겨먹고. 나이 들어 그렇다고 방금 전 동네 사람들과 모여 한바탕 떨던 수다. 사는 건 다 그렇지 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꼭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개인의 문제로 파편화 하지 않고 소비하면서 돈으로 해결하는 것 말고 사회적 과제로 사회적 책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자는 이야기. 이 모두가 소망이 아니라 ‘권리’라는 그녀의 말. 이은주 동지의 말 한마디가 날 부끄럽게 하지만 다시금 뜨겁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안으로부터 밑으로부터’ 변할 수 없는 이 구호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이은주 동지는 이것이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것이고 그 길에 함께하는 동지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참 한결같다. 세상이 변했다고 해서 시선과 관점이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는 조금 다른 모습이겠지만 여전히 내가 그곳으로 가야할 충분한 이유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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