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5월|연구소리포트]한 버스 운전 노동자의 편지 – 2013년 경진여객 버스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①

일터기사

한 버스 운전 노동자의 편지
– 2013년 경진여객 버스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①

한노보연 선전위원 최 민

<사진출처> 다산인권센터

‘2013년 경진여객 버스노동자 노동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노동자 5명이 참여한 심층 면접조사와 전국운수산업민주버스노동조합 경진여객지회 조합원 20명 중 17명이 참여한 설문결과를 기반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의 내용을, 버스 운전 노동자가 보낸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싣습니다.

사당에서 수원 가는 제일 빠른 방법
사당에서 수원 가는 제일 빠른 방법이 뭔지 아시나요? 수원-서울 좀 다녀봤다는 사람은 다 압니다. 사당역 5번 출구에서 7770 버스를 타는 것입니다. 경진여객은 이 7770 노선을 운영하는 회사에요. 그 밖에도 여러 시외직행버스 노선을 운영합니다. 운전기사는 400명 쯤 돼요. 그런데 수원 시내버스 기사들은 다 알아요. ‘경진에서 일 한다’ 그러면 ‘아, 너 힘들겠다’ 그래요. 배차 간격은 짧고, 운행 대수는 무리하게 짜 놓고, 징계 조항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고 해고 조항만 해도 60가지가 넘으니 기사들한테 인권이라는 게 없죠. 그래서 2011년에 저희가 복수노조를 만들었어요. 전국운수산업민주버스노동조합 경진여객지회. 그런데 회사는 저희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죠. 또, 몇 년 전 우리 조합원들을 작은 실수를 핑계로 해고시켰습니다. 그래서 작년 11월 경진여객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농성 과정에서 우리 경진여객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번 실태조사를 한 겁니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발표하던 의사선생님이 눈물까지 흘렸던, 저희 얘기 좀 들어보세요.

부부생활 하기도 힘든 장시간 노동
7770 버스의 배차 간격은 약 3분밖에 안 되는데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에 타면 ‘미친 듯이’ 달리기 때문에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은 노선입니다. 첫차는 새벽 4시 30분, 막차는 수원 도착이 새벽 3시. 늦은 시간까지 일하거나, 술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고마운 노선이죠. 바로 제가 운전하는 노선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조건이 운전기사들한테는 아주 죽음이죠. 새벽에 첫 차를 운행한다면, 집에서 세시쯤 일어납니다. 씻고 준비하고 회사 오면 4시, 아침은 회사 식당에서 먹는데 게눈 감추듯이 먹지 않으면 첫차 맞추기가 빠듯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과는 보통 밤 11시에서 11시 30분 사이에 회사에 들어오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예요. 기름 넣고, 돈통 반납하고, 3일에 한 번은 검차나 브레이크 검사도 하고요. 집에 가면 당연히 1시 넘습니다. 그러면 부부생활 하기도 힘들죠. 꼭 제가 피곤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구요. 이미 자고 있는 사람이 일어나 줄 수 있느냐는 거죠. 신혼도 아니고 그 시간에 깨우기도 미안하고 거 참.

경진여객 운전노동자들의 하루 운전 시간

경진여객 운전노동자들의 하루 노동시간

항목

빈도(명)
한달 근무 시간
~ 208 시간 미만
1
208~240 시간 미만
2
240~280 시간 미만
8
280~320 시간 미만
4
320 시간 이상
3
경진여객 운전 노동자들의 한달 근무 시간

쉬는 날이 쉬는 날이 아니죠.
이렇게 일하면 하루 20시간 일하는 거죠. 격일 근무가 기본이고, 한 달에 13일이 만근입니다. 만근 개념을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13일은 반드시 일을 해야 한 달을 빠짐없이 출근한 걸로 치고, 만근 수당을 주거든요. 너무 장시간 노동이고, 일이 고되기 때문에 하루 일하면 다음날은 꼭 쉬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기사가 부족하기 때문에 동료가 사정이 생기거나, 아니면 경제적 이유로 추가 수당을 받아야 되겠다 싶으면 이틀 사흘도 연달아 일하게 되지요. 저는 웬만하면 연달아 근무는 안 하려고 해요. 다음 날 충분히 쉬어줘야 되거든요. 안 그러면 너무 힘들거든요. 버스 운전이라는 게…
근로기준법에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해놓고, 연장근무를 해도 52시간까지만 하도록 해 놓았으면서 왜 운전 노동자들은 그것보다 더 해도 된다고 해놨는지 모르겠어요. 안전운전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다른 직업보다 노동시간을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일하는 날에 남들 하듯이 10시간 정도 일하는 게 아니라 20~22시간을 눈뜨고 있어야 되니까, 쉬는 날에는 자야 된다는 압박감이 생겨요. 쉬는 날이 쉬는 날이 아니죠. 그냥 자는 날이예요. 학교 친구들, 사회 친구들 본다는 건 거의 어려워요.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거기 가려면 근무를 빼야 돼요. 저녁 6시나 7시 만나서 술 먹고 2차라도 가다보면 다음날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새벽 3시에 일어나야 되는데. 그러니까 무조건 근무를 빼고 만나야 돼요. 그러니 친구는 점점 없어지고. 주변에 맨 운전기사들하고만 놀아요. 하하.

지금도 오줌통 갖고 다녀요.
밖에서 볼 때는 ‘운전 사이 대기 시간에는 일 안하는 게 아니냐, 그 때 자면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드시죠? 회사에서도 맨날 그 얘기죠. 하지만 대기시간이 많지도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오전에 한 번 정도는 한 바퀴 운행하고 나서 다음 번 출발하기 전까지 30분 정도 누워서 쉬거나, 커피 마시거나, 신문 볼 시간이 있어요. 그렇지만 아침 출근시간, 저녁 퇴근시간에는 길이 막히니까, 정해진 시간에 들어올 수가 없거든요. 사실 그 정해진 시간도 제 시간이 아니죠. 이 회사가 악랄한 게, 1시간 20분쯤 걸릴 거리를 1시간 10분에 들어오라고 운행 시간표를 짜 줍니다. 그러니까 길이 안 막히는 시간에도 기사들이 신호도 무시하고, 갓길을 타야 여유있게 들어올 수가 있어요. 길 막히는 시간에는 절대로 그 시간에 못 들어오니까, 쉬는 시간을 못 가지고 곧바로 출발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쉬는 시간을 못 갖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면, 화장실도 못 간다는 얘기죠. 한 바퀴만 돌고 화장실에 가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죠. 그런데, 오후 내내 그냥 세 바퀴, 네 바퀴 계속 운행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어요. 차고에서 화장실 들릴 시간이 없는 거예요. 수원에 도착하면 이미 내 출발 시간이 돼 버렸으니까요. 여덟 시간 이상 꼼짝도 못 하고 운행할 때도 있어요. 그러니까 참다못해 길에다 차 세우고 뛰어가서 일보고 오는 거죠. 그러면 승객들이 뒤에서 째려보는 게 느껴져요. 본인이 얼마나 힘들면 그렇겠어요. 부끄럼 많이 타는 사람은 그렇게 차 세우고 다녀오질 못하겠대요. 길은 너무 많이 막히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아이고 이거 말로 하기도 부끄러운데, 조금씩 싸면서 말리면서 온다고.. 우리끼리는 그런 얘기도 해요. 7770 버스 불시에 검사해야 돼요. 지금도 페트병으로 소변통 만들어서 갖고 다녀요. 새벽에 손님들 별로 없고 하면 불 끄고 커텐 치고서 운전하면서 거기다 일봐요.

비행기 타는 사람은 사람이고, 버스 타는 사람은…

항목

빈도(명)
교통법규
위반횟수
120회
1
200회
1
300회
1
150회
1
5000회
2
7800회
1
9000회
3
10000회
3
10200회
1
12000회
1
20000회
1
1000000회
1
지난 1년간 교통법규를 위반한 횟수

1시간 20분 걸릴 거리를 1시간 10분에 들어오라고 하니, 교통법규 위반할 수밖에 없죠. 속도위반하고, 신호 무시하는 게 자랑은 아니지요. 하지만 험한 운전한다고 버스 기사 욕하기 전에 이런 사정을 알아 달라는 겁니다. 지난 1년간 교통 법규를 얼마나 위반했냐구요? 제가 하루에 6탕씩 운행한다고 치고, 한 달에 13일, 일 년 열두 달을 일합니다. 한번 운행하는데 신호등만 50개쯤 돼요. 그런데, 신호 다 못 지키거든요. 그럼 일 년에 신호위반만 10,000 건은 되는 거 같아요. 거기에 속도도 잔뜩 위반하죠. 법규는 아니지만 승객들 다 앉기 전에 출발하고, 정류장 구역보다 먼데서 차 세우고, 정류장 안 서고 지나갈 때도 있고.. 그런 거 다 합치면 백만 건은 될걸요. 운전이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어떻게 보면 사람을 실어 나르는,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일이잖아요. 이런 거 보면 비행기 타는 사람은 사람이고, 버스 타는 사람은 사람도 아닌 거 같아요.
회사 입장에서는 회전수가 돈이니까요. 한 바퀴 더 돌면 말 그대로 그만큼 돈을 더 벌지요. 회사 입장에서는 신호위반은 안 중요하죠. 아침에 수원 북문에 본사 직원이 나와 있어요. 그 앞에서 신호위반해도 신경도 안 써요. 그런 걸 다 잡으면, 전체적으로 운행 시간이 늦어져요. 그럼 마지막에는 운행 대수를 한 대 줄일 수밖에 없죠. 그게 회사는 아까운 거예요. 그러면서 회사는 ‘신호위반하라는 소리 안 했다’ 하죠.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그런가요? 내가 지금 수원에서 2시에 출발하는데, 다음 차가 4시 30분이라고 돼 있으면 ‘아, 2시간 30분 안에 돌아와야 되는구나. 2시간 30분 안에 돌고 와서 화장실도 가야 되고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워야 하는구나’ 이런 압박감이 생기는 거죠.

친절 기사는 배차 시간에 달렸다
그래서 저희는 저녁 식사도 오후 3시 반에 합니다. 그 뒤에는 한 바퀴 돌고 들어와서 밥 먹을 여유가 절대로 없거든요. 안 막혀도 제 시간에 못 오는 거리를, 퇴근 시간에 어떻게 제 시간에 들어오겠어요? 그러니까 오후 3시 반에 밥 먹고, 8시간 정도는 쫄쫄 굶어요. 식당에 미리 부탁해놨다가 김밥 받아서 차에서 먹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 배고프면 짜증나잖아요. 그럴 때 손님이 뭐 물어보면 친절하게 답이 나가겠어요? 정류장에 짐 들고 서 있는 할머니 보면, 짜증이 먼저 나요. 거기서 시간이 늦어지니까요. ‘빨리 가서 밥 먹어야 되는데’하는 생각이 먼저 나죠.
친절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저도 운전하면서 제일 보람있던 일은 손님들 도와줬던 것입니다. 몇 년 전 제 차에 치매 걸린 할머니가 탔었어요. 일 마치고 나서, 그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핸드폰을 보고 집에 연락하고 제가 가진 현금으로 택시 잡아서 보내드렸었죠. 그 다음날 그 분 며느리가 양주 한 병 사들고 일산에서 수원까지 오셨는데 너무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운행 계획으로는 친절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배차 시간만 바꾸면 기사들 친절 문제는 싹 해결될 걸요!

시민과 운전 노동자
저는 그러니까 시민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버스 기사들의 노동 조건이 시민들 안전하고도 직결됩니다. 지금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는 저 기사가 지금 20시간 째 깨어있는 거라고 생각해보세요. 무섭죠? ‘나는 3분밖에 안 기다리니까 7770이 좋다’ 생각하지만, 배차 간격이 그렇게 짧으니까 운전기사는 스트레스 받고, 운전도 험하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스트레스 받고 우울한 기사가 태워다 주는 게 좋으세요? 불친절하다고 신고하기 전에, 하루에 천 명에서 2000명이나 되는 승객을 상대해야 되는 운전노동자 생각도 해 주세요. 시민들도 버스 탈 때 승객이지 다 노동자잖아요. 하루 종일 자기들도 이상한 손님, 거만한 거래처 사람한테 시달리다 왔잖아요.
이런 생각 때문에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천막 농성의 요구가 ‘안전운행 쟁취 및 해고자 원직 복직’입니다. 노동 조건을 개선하지 않으면 안전운행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관심도 가지고, 수원시에 압력도 넣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우리 조합원들이 더 늘어나고, 지금 있는 사람들끼리도 더 끈끈해지는 거지만요.
벌써 헤어질 시간이네요. 할 얘기가 많은데… 다음번에는 저희들의 직무스트레스와 건강상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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