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6월|현장의목소리]병원 여성노동자들의 임신 및 출산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라!!

일터기사

병원 여성노동자들의 임신 및 출산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라!!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 제주의료원분회 문현정

사람은 누구나 아픈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이글을 쓰는 지금 나 또한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만들고 그렇게도 원했던 아이를 임신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직접 느낄 수는 없어도 초음파를 통해 손가락 마디 하나 안 되는 태아가 움직임을 보고, 심장소리를 들을 때에는 마냥 신기하고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갔다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의사의 말을 들어야했다. 아이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며 계류유산 진단을 받았다. 그때가 임신9주가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머리는 새하얗게 백지가 되어 버렸지만 내 눈에선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이 몰려왔다. 내가 그 아이를 위해 엄마로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슬픔을 억누르며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제주의료원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간호사이다. 제주의료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도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이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공병원이라서 신의 직장처럼 인력도 많고, 휴가도 많고, 월급도 많을 것이라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제주의료원은 앞에서 말한 상식을 벗어난 병원이다. 일 년 내내 정규인력 한번 채워져 본적 없는데다 업무 또한 힘들어 시간이 갈수록 이직자는 하루가 멀다 늘어가고, 매달 야간노동은 평균 10개 전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대로 된 휴일조차 받을 수 없다. 입원환자의 2/3이상의 내복약은 간호사가 일일이 직접 곱게 갈아야 했고, 이런저런 병원균 직접노출 될 수 있는 상황이 빈번한데도 보호장구 하나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 10년을 넘게 일해야 했다. 동선도 길어 날마다 달리기 선수가 되어야 했고, 치매환자들의 폭언과 폭행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상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유산문제이다. 제주의료원에서 선후배, 동료 간호사들의 유산 소식을 듣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누군가 임신을 하면 항상 따라오는 것이 유산끼가 있어 병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중 어떤 이는 실제 유산으로 이어져 아이를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독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에게서 유산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우리 노동자들은 단지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불평의 소리 한번 내보지 못하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왜 나 자신 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생명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을까?

2010년 이후 제주의료원 노동조합은 유산사태와 관련하여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였다. 노조는 병원 내부에 유산을 일으키는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제기 하며 원인규명하기를 수차례 사측에 요구 하였으나 병원은 유산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만 치부해 버리고 이러한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병원의 태도는 유산을 겪은 간호사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에게 상처를 준다한들 유산관련 싸움은 멈출 수 가 없다. 이것은 현재 제주의료원의 유산사태가 비단 제주의료원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병원사업장에서는 장시간 고된 업무에 휴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밤새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 나의 유산의 아픈 상처가 내일은 또 다시 고된 노동 환경 속 에서 또 다른 노동자를 할퀴며 상처 낼 수 있기에 힘든 싸움임을 알면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더 이상 제2의 제주의료원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다. 이 소망을 조금씩 이루어 가기 위해 험난한 가시밭길일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려 한다. 병들어 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권 회복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투쟁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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