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월] 여가나누기 – 눈이 오기를…

일터기사

[여가나누기]

눈이 오기를…
한라공조 노동조합/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장 황운하

‘겨울이다, 아니다.’를 판가름 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일까? 기상학적으로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거나 시기적으로는 11, 12월쯤이라고 판단하지만, 우리는 단순하게 ‘눈이 오느냐, 마느냐’에 따라 겨울인지를 판단한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역시 눈이 와야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린 시절, 겨울방학에 눈뜨자마자 하는 일은 창밖에 눈이 내렸나 확인하고 하루 일과를 정하는 것이었다. 눈이 내리지 않은 날에는 썰매를 어깨에 메고 논으로 달려가 이른 아침부터 얼음을 지치며 썰매를 타고, 점심쯤 되면 뒷산에 올라가 땔감과 칡뿌리를 준비해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산중턱에 미리 설치한 새그물에 잡힌 새들 중 참새만을 선별하여 참새구이와 칡뿌리로 푸짐한 점심식사를 하곤 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뒷마을 친구들과 얼음썰매 이어달리기를 준비한다. 이어달리기는 칼날스케이트 썰매와 철사 썰매를 어느 동네에서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느냐가 시합을 좌우한다. 칼날스케이트 썰매는 속도가 철사 썰매보다 월등히 빠르기 때문에 칼날스케이트를 많이 가지고 있는 동네가 이기게 된다. 해질 무렵까지 신나게 썰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화롯불에서 고구마와 밤을 구워 먹기도 했다.

다음날 다시 창밖을 확인해서 눈이 내리면 비료포대와 짚단하나를 챙겨 뒷산으로 올라갔다. 누구의 묘인지는 모르지만 널찍한 묘를 하나 골라 눈썰매를 즐기기 시작한다. 비료포대만을 이용하여 눈썰매를 타면 엉덩이가 아프므로 짚단을 한 단 정도 푹신하게 비료포대에 넣고 앞부분을 양손으로 잡아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다음 높은 곳에서부터 열심히 내려오면 그 재미는 눈썰매장보다 한층 더한 흥미를 준다. 묘에서 어느 정도 썰매를 익히면 산 정상으로 올라가 고난도의 눈썰매를 즐기게 된다. 앞의 나무들을 피해가며 정상에서 내려오면 스릴과 스피드를 동시에 느끼게 되며 나무 사이를 S자로 피하면서 지나가는 재미는 스키선수들 부럽지 않았다.

오전 내내 눈썰매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오후에는 뒷동네 친구들과 눈싸움이 벌어진다. 눈싸움이 벌어지기 전, 내가 집에 있는 연탄재를 모두 들고 나와 우리 진영에 쌓아 놓는 동안 나머지 친구들은 눈으로 방어 진영을 쌓아 놓고 공격에 사용할 눈덩어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난 비상용으로 사용할 연탄재가 들어간 눈덩어리를 만들어 놓고 한쪽구석에 앉아 싸움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어느 정도 서로 준비가 끝나면 흔히 ‘대장’이라고 불리는 형들이 눈을 던지기 시작한다. 옷을 잔뜩 껴입은 터라 눈을 맞아도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서로 열심히 던지고 피하면서 눈싸움은 더 치열해 진다. 인원이 많았던 뒷동네 친구들이 우리 진영까지 밀고 들어오면 최후의 무기인 연탄재 눈을 던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눈덩어리에 약간의 물을 첨부하여 단단하게 만들어 던지면 아무리 옷을 많이 입어도 눈덩어리를 맞은 아픔은 상당히 심각해진다. 혹, 얼굴이라도 맞게 된다면 바로 부어 올라 파랗게 멍까지 든다. 약간은 치사하지만 눈싸움은 양 동네 간의 자존심이 걸려있기에 약간은 무식하게도 진행되고 심할 때에는 육박전을 방불케하는 주먹전도 벌어졌다. 그러한 어린 시절 싸움은 서로 코피를 닦아주면서 더욱 강한 친구애를 만들어주거나, 마지막에는 서리한 닭으로 백숙을 만들어 얼은 몸을 녹여가며 맛나게 나눠먹고 또 다른 시합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간 기억을 남긴다.

누구나 어린 시절의 ‘겨울’은 추억으로 가득할 것이다. 눈싸움에 썰매타기로 하루가 너무 짧아 항상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시절. 지금은 어린 시절에 쓰던 비료포대보다는 잘 갖추어진 눈썰매와 스케이트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눈 오는 날이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회사 운동장에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며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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