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신자유주의와 KT노동자의 정신질환 외

일터기사

[뉴스와 포커스]
정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위원 송홍석

산재보험 발전방안 토론회 열려
-‘장기요양’ ‘도덕적 해이’ ‘휴업급여’ 문제 집중 제기…지출 줄이는 재정안정화가 핵심-

노동부가 산재보험도입 40주년을 맞아 산재보험제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재편을 위해 지난해 6월부터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를 운영해왔는데, 그 첫 결과물이 지난해 12월 15일 ‘산재보험발전방안 토론회’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노동부가 2005년 입법을 추진 중인 산재보험제도 개선안의 밑그림이라는 점에서 노동계과 자본측 모두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날 발표된 주된 내용은 1)요양/보상관리의 합리화 2)산재보험 재정안정화 방안 3)재활사업 강화 등으로 애초 발전위 운영계획의 세부적 과제들이었으며, 발표당시 노동계가 우려했던대로 개선안의 주요핵심은 업무상 재해 인정기준을 엄격히 해 지출을 억제하고, 도덕적 해이와 장기요양환자의 관리를 엄격히 해 재정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1)요양/보상관리의 합리화를 위해 “업무상질병 인정의 객관성, 합리성을 강화하는 등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개선하고 상근자문의사 확대 등을 통해 요양관리를 체계화한다. 또한 도덕적해이로 인한 부당한 급여지출의 방지를 위해 공단간 정보교류 활성화, 민영보험의 대응방안 참고, 장기요양자 실태조사를 통한 문제있는 환자와 병원에 대한 특별관리 대책과 휴업급여에 대한 대책관리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전담조직 설치/운영,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해 도덕적 해이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을 제안”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이상석 노동부 노동보험심의관은 ‘근골격계질환 인정기준 지침’에 이어 뇌심혈관계질환,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요양인정기준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산재보험 재정안정화 관련하여서는 “장기요양과 급여보상수준의 확대로 산재보험급여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향후 재정고갈이나 보험요율의 급격한 상승을 막기 위해 재정안정화를 꾀해야 하며, 그 방안으로 재정방식을 현행 부과방식에서 적립(펀드)방식으로 전환하고, 현금급여 위주의 보상보다 재취업을 위한 의료/직업재활 위주 급여로의 전환, 퇴직연령 이후 연금수급 국민연금으로 이관, 출퇴근재해의 자동차보험으로의 전환 청구 등”을 제시했다.

예산정책처, 산재보험 재정운용의 도덕적 해이 문제 거론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4대 사회보험 재정 운용’에 관한 정책자료집에서 정부는 또다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거론했다. 예산처가 제시한 도덕적 해이의 근거로는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3년간 실시한 산재 진료비 실사에서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부당행위가 적발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안으로 공단과 노동부가 도덕적 해이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보험회사 및 다른 사회보험기관과의 정보교류 활성화, 장기요양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과 정부가 장기요양의 문제,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과연 그들이 산재노동자의 말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있는지를 반문하고 싶다. 물론 소귀에 경 읽기겠지만.

교대근무자들의 위장장애와 수면장애, 유산에 대한 외국의 연구

교대근무자들의 건강장해에 대해 지난해 일터에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1월 6일 미국 노동부에서 밝힌 연구조사에서도 야간 교대근무자들의 상당수가 수면장애와 위장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는 자동차 공업도시인 디트로이트지역을 대상으로 하였고, 조사결과 디트로이트지역의 40만명의 교대근무자 중 약 10만명이 수면문제를 겪고 있으며, 그런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보다 업무 중에 사고를 당할 가능성도 2배나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3명 중 1명은 위궤양이나, 대장암으로 진행 가능한 대장용종(물혹)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미국의 한 전문가는 “우리는 근본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낮에 움직이는 동물들”이라고 말했다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야간근무를 하는 임산부는 유산이나 사산을 할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 연구진이 조사한 결과, 정기적으로 야근을 하는 임산부는 낮 근무자에 비해 유산이나 사산을 할 위험이 85%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픈데도 근무하면 심장마비 위험

몸이 아픈데도 병가를 내지 않고 계속 일만 하게 되면 심장마비로 인한 급사의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 직업건강연구소가 ‘미국보건저널’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몸이 아프다’고 말한 사람들 중 병가내지 않고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한 사람은 적당한 수준으로 병가를 낸 사람에 비해 심혈관계질환에 걸릴 위험이 2배나 높았다. 연구진은 몸이 아픈데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도 심장마비로 인한 급사의 위험요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근골격계 질환자 경제적 고통, 정신적 불안 시달려

원진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개최한 ‘2004년 노동/환경/건강 학술제’에서 근골격계직업병으로 요양 중인 노동자 197명을 면접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를 보면 근골격계질환자들은 어렵게 요양은 받았지만 요양 중 치료가 매우 불만족스럽고, 요양 중 경제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어 이중삼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이들이 산재 인정을 받기까지 6.57개월(산재신청까지 3.61개월, 산재인정까지 2.96개월)이 소요됐는데 회사의 늑장처리 때문이라는 응답이 다수(70.6%)를 보였다. 응답자의 전체 요양기간은 438일, 입원기간은 288일, 요양시작 후 수술까지 8.3개월이 소요됐다. 요양환자의 절반은 수술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입원치료의 70%는 의사의 권유로 입원을 결정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38%는 치료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성의가 없다’(27%), ‘협소하고 불결한 시설’(25%), ‘치료시간의 부족’(10.4%) 등을 이유로 꼽았으며 요양 중 증상의 호전 정도도 38%로 낮다고 답했다. 또한 요양 중 회사의 개입에 마음이 불편했다는 응답자가 52.7%로 나타났다. 요양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수입감소 등 경제적 어려움’(30%)을 가장 많이 꼽았고, ‘산재인정 기간 너무 길다’(18.5%), ‘증상의 개선이 없고 치료의 효과가 적다’(15.7%)가 뒤를 이었다. 이들의 심리상태도 매우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화 증상(신체적 문제가 없음에도 통증, 소화계통 이상 등 호소)을 39%가 호소하고 불안 16.6%, 공포 16%, 정신증 13.4%, 우울 12%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면접조사 결과, 통원치료는 곧 현장복귀라는 인식 때문에 환자들은 통원치료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전자제품 부품업체에서 일하던 이주 노동자 ‘앉은뱅이병’ 집단발병!

경기도 화성시의 한 액정모니터 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태국 여성노동자 8명이 독성 세척제에 중독돼 하반신이 마비되는 이른 바 ‘앉은뱅이병’에 집단으로 걸렸다. 그들은 밀폐된 업체 내 검사실에서 마스크나 장갑 등의 보호장비 없이, 하루 평균 5시간씩 7개월에서 3년 동안 출하 직전의 전자제품을 유기용제로 세척하는 일을 해 왔다. 산재의료관리원 안산중앙병원은 지난 1월 12일,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모두 ‘노말헥산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산재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의 전원 산재처리, 회사 책임자 형사처벌, 노동부 공개 사과와 회사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차별한 단속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즉각 사면을 주장했다.

유해 기준이하 작업장서 발병해도 산재

노동자가 작업장 내 유해물질에 노출, 질병에 걸렸을 경우 노동부가 정한 ‘작업환경 노출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해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89년부터 지하철 역무원으로 근무해오던 윤모 노동자는 2000년 폐암에 걸려 지난 1월 사망하였고, 그의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석면으로 인한 직업병으로 인정받았다. 폐암진단 당시 학계와 환경단체, 지하철노조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측정대상 역사에서 모두 환경기준 이하의 석면이 검출됐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작업환경 노출기준이란 하루 8시간, 주 40시간 일하는 근로자가 30-40년간 노출됐을 경우 대부분 안전하다는 의미일 뿐 누구에게나 완전히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유해물질 권고기준 이하에서 장기간 노출됐을 때도 직업병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윤씨가 잠실역에서 일할 때 역 내 지하광장 및 롯데월드 연결통로 건설 등으로 해체된 천장, 벽체 등 마감재에서 많은 석면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간경변증의 발병도 업무상 재해다

만성 B형간염 환자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간경변으로 악화되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펌프 제조업체에 근무하던 이모씨는 88년 만성 B형간염 진단을, 91년 간경변증 진단을 받았으며 86년 입사 후 96년까지 주 2-3회, 300-400km의 장거리 출장으로 과로해 간경변으로 악화되었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해당 노동자가 장거리 출장 등 과로한 것으로 보이고, 통상적으로 만성 B형간염 환자들은 20년이 돼도 48% 정도만 간경변으로 진행하는 점 등을 감안하면 그러한 과로가 환자의 면역기능을 저하시켜 통상적인 질병 경과보다 빠르게 3년여 만에 간경변으로 악화된 것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집에서 점심 먹고 회사로 복귀하던 중의 사고도 업무상 재해다

회사에 구내식당이 마련되지 못해 회사 근처 집에서 식사를 한 뒤 복귀하던 중 사고를 당해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구내식당이 없어 사업주의 승낙 하에 집에서 점심을 해결했던, 전기부품 가공업체의 한 노동자가 2002년 4월 집에서 점심식사 후 귀사하던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였고, 대법원은 유족들이 낸 유족급여 청구소송에서 이와 같이 판결하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식사시간을 포함한 휴게시간 중 사고도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며 “회사에 구내식당이 없어 일부 직원은 사업주 승낙 하에 근처 집에서 점심식사를 해온 점 등에 비춰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포커스]

신자유주의와 KT노동자의 정신질환
KT 해고노동자/한국통신노조 전 부위원장 이해관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라는 책이 우리에게 소개되었던 것은 2002년 5월이었다. 좌파 특유의 과장법이 담겨있다고 느껴졌던 그 책자의 제목은, 그러나 이제 정확하게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지난 해 KT에서는 3명의 노동자가 ‘적응장애’,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KT 상품판매전담팀 소속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이 속한 상품판매전담팀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위한 조직이 아니었다. 상품판매전담팀은 2003년 9월의 국내 단일기업의 구조조정으로는 최대규모인 5,505명 명예퇴직 당시 이를 거부한 노동자들을 특별관리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별도 조직이었다. KT 경영진의 내부 문건에는 ‘상품판매전담직원의 최종관리 목표는 <퇴출>’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렇듯 퇴출을 목표로 별도 관리되던 상품판매전담팀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감시와 차별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우선 인사 과정에서 KT가 전국사업장임을 악용하여 철저하게 비연고지로 인사발령을 했다. 그 정도가 가장 심했던 이학재씨의 경우, 고향이 부산임에도 불구하고 안성/여주/이천/대전 등 객지생활을 무려 4년째 반복하고 있다. 또한 이들 상품판매팀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일반 영업사원들과는 달리 영업활동용 기업카드가 지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판촉물조차 지급되지 않았으며 심하게는 판매보조금마저 일반영업직원보다 적게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출목표는 오히려 일반 영업사원보다 높이 책정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영업 지원은 적게 하면서 목표는 더 높게 주는 이중의 차별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차별에 더해 이들을 ‘퇴출’시키기 위한 증거 채집 차원에서 심각한 감시가 이루어졌다. 대표적 감시사례인 전북의 박은하씨의 경우 회사 관리자가 최소 3주 정도에 걸쳐 뒤를 미행하며 약 100장의 사진을 본인 모르게 촬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불법감시를 통해 확보한 사진을 들이대며 박씨를 ‘근무태만’으로 해고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중대한 인권침해를 서슴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박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이런 불법 감시로 인한 스트레스로 산재판정을 받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KT 상품판매전담팀 노동자들의 인권실태가 폭로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들 차별과 감시에 시달린 노동자들에 대한 집단 건강검진이 시행되었다. 전체 상품판매 노동자 466명 중 188명을 대상으로 다면성인성검사(MMPI)를 실시한 결과, 검진대상 노동자의 45%인 84명에게서 ‘우울’, ‘불안’, ‘공포’ 등을 암시하는 이상척도가 발생하였다. ‘정상집단의 경우 이상척도가 4~5%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의의 소견임을 감안한다면 45%는 매우 충격적인 수치이다. 이렇듯 이제 신자유주의의 위협은 단순한 노동유연화에 따른 고용의 위기 수준을 훌쩍 넘어서서 노동자들에게 다가와 있다.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던 노동자가 구조조정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감시에 시달리다 못해 정신질환에 걸리는 것이 오늘날 한국 노동자의 현실이다.

현재 KT 상품판매노동자들은 후속 검진을 추진하고 있다. 상품판매전담팀 노동자들은 후속 검진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집단산재요양투쟁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과연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이에 동참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정신건강 상의 이상척도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을 사유로 산재를 받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척도가 확인된 한 노동자는 ‘정말 계속 회사를 나가면 내가 생각해도 돌아버릴 것 같다. 하지만 혼기를 앞 둔 딸이 둘이나 있는데 어떻게 정신질환으로 산재를 받겠느냐’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씁쓸함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 그래도 행복하다고 얘기되는 정규직 노동자의 자화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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