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철밥통’을 내던지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일터기사

[현장통신2]

‘철밥통’을 내던지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송파구지부 지부장 서원선

공무원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한 지 벌써 두 달여가 넘어가고 있다.
민관군 합동 군사훈련이나 재난 구조활동 때 만나, 서로의 피곤한 일상을 달래주던 낯익은 경찰관들이 지부 사무실을 에워싸고 여차하면 연행해 구속할 태세였던 긴장감이 두 달여가 지난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수시로 구청집행부가 조합비를 막겠다느니 사무실을 폐쇄하겠다느니 해고자들의 조합사무실 출근을 저지하겠다느니 괴롭히니 말이다.
막상 해고가 되니 이 쓰린 마음을 이루 달랠 길이 없던 것도 이제는 무뎌지고 있다. 어느 유행가처럼 비껴갈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나 같은 해고자에게 딱 어울리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공무원이면 안정적인데 왜 파업을 하고 그러는지 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싶다. 하지만 일단 파면․해임 당한 공무원이 전국 400여명이고 징계자가 1,500여명이라면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잖냐고 짧게 답하고 싶다.

파업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서울지역 최대 조합원 수를 자랑하던 지부의 조합비가 끊겼다. 해임 통지서를 받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흉흉한 소문이 돈다. “민간인이라 보안 상 청사 내 출입을 못하게 한다”고 한다. S구청은 정직, 감봉을 받은 지부 간부들에게 동사무소 발령을 냈다고 한다. 동사무소에서는 사실상 노조 활동을 할 수 없다. 거주지에서 가장 먼 동사무소로 발령을 내기도 한다. 정기 협의안들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그나마 우리 지부는 상황이 좀 낫다. 선거가 목전인 지부들은 구청집행부의 지원을 받아 나온 후보들이 조합비 삭감하고 강성만이 대안이 아니라며 난리다. 너무 많은 희생자를 낳아 중앙으로 납부해야 하는 조합비만 해도 3천원에서 2만으로 조합비를 올려야 할 마당에 조합비 삭감을 얘기하니, 조합원들은 ‘혹!?’할 노릇이다.

박봉이라 아이들이 대학이라도 갈라치면 100이면 100 연금을 볼모로 대출을 받아야 한다. 신분을 잃으면서 다 갚으라고 은행의 독촉전화가 난리다. 의료보험이 안 된다고 늙은 어머니가 난리다.

전화가 온다. 조합원이다. 구청장이 지난 추석 때 경로당에 가 인사를 하고 왔단다. 보이는 것만 인사이지 부구청장의 결재 하에 선물이 돌려졌다. 선관위에서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행정을 하는 자치단체장들에 대해 수사하겠다는데, 구 집행부의 입지를 좁힐 수 있는 기회들이 오고 있다. 부구청장은 검찰에 고발됐다.

해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단식 천막농성을 하던 때 S구청으로 왁다그리 달려갔다. 억센 사투리의 해고동지가 “구청장 나오라카이! 우리 지역에서는 조합원 대표가 만나자카믄 버선발로 나오는데 이런 마인드로 행정운영하는 구청장이 자긱이 있는 기가?” “밤길 조심해라이!” “만나줄 때까지 전국에서 맨날 찾아 오끼다!”라며 한바탕 도떼기시장이 됐다. 구청장 비서는 진땀을 뺀다. 그리고 S구청 지부장에게 연락이 왔단다. 파업 전에 못다 한 정기협의하면서 대화하며 살자고 했단다. 선거가 다가오긴 온 모양이다. 시끄러워지면 선거에 지장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소심한 단체장들 투성이다.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라고 회/복/투도 만들었다. 왠지 억세 보이기만 했던 해복투에 내가 있다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지만 이름도 회/복/투라고 하니 사람들이 박카스 두 병이라고 놀린다. 내일부터는 떼로 몰려다니며 지부 순회를 한다. 서울시 전 구청, 전 과에 들어가 홍보물도 돌리고 구 집행부 항의방문도 한다. 무엇보다도 해고자들의 존재를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 흥분되고 떨린다.

그래. 14만 조합원 중 1만 4천명만 서울로 상경해서 거점파업을 했다면 우리 동지들의 생활이 어땠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철밥통’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공무원들이 진짜 ‘철밥통’이 아니라 진정한 노동자로 당당히 거듭나기 위해 겪는 아픔은, 부끄럽게 살지 않는다는 당당함으로 위안 삼으며 회/복/투 첫 출정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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