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월] 연속기획 : 산재보상보험제도를 말한다-4. 산재보험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 논쟁

일터기사

(편집자 주: 총 5회로 기획되었던 <연속기획-산재보상보험제도를 말한다> 중 마지막 주제인 ‘산재보험 개혁의 방향과 과제’ 내용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내부토론을 거쳐 이번 호 특집으로 정리하여 실습니다.)

1. 사회보장의 발전 역사
2. 산재보험 관련 노동보건진영 대응 역사
3. 정부와 자본의 산재보험 개혁을 위한 방향과 대응
4. 산재보험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 논쟁
5. 산재보험 개혁의 방향과 과제

연속기획 : 산재보상보험제도를 말한다
4. 산재보험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 논쟁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위원 김형렬

최근 언론의 보도는 재해를 당해 요양 중인 노동자들을 모두 나이롱(가짜)환자이며, 법의 약점을 이용해 일하기 싫어 공짜로 휴업급여를 받고 있는 파렴치범으로 내몰고 있다. ‘도덕적 해이’ 운운하며, 마치 IMF 경제위기에 노동자계급이 실업과 고용불안, 임금삭감으로 고통받을 때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 수십조를 자기 돈 쓰듯 해대던 자본가들과 동격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재해노동자들이 도덕적 해이의 원상으로 내몰리는 것이 타당한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에 더욱 더 강화된 노동강도와 고용불안으로 수많은 산재와 직업병에 내몰린 노동자들에게 덧씌워진 이러한 오명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정부와 자본은 왜 이러한 재해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침소봉대하려는 것일까?

그러나 도덕적 해이는 존재한다.

‘도덕적 해이’라는 용어는 원래 보험제도에서 나온 말로, 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사고나 사망 후에도 보상이 있다는 생각에 예방활동을 소홀히 하게 되어, 결국 사고 발생이 증가한다는 설명을 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러한 용어는 주로 사회 부유층을 대상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 들어 산재보험을 둘러싸고 재해노동자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재보험에서 재해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존재하는가? 현상에 대한 얘기라면 그렇다. 그러나 산재보험에서 도덕적 해이는 세 가지 측면에서 모두 논의되어야 하며, 그 중 무엇이 더욱 핵심적인지,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세 가지 측면이라 하면, 재해노동자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보험자(근로복지공단)의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 할 수 있다. 재해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는 겉으로 들어나는 현상일 뿐이며, 이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측면은 나머지 두 측면의 도덕적 해이라 할 수 있다.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

재해노동자들은 의료기관에서 가장 적절하고, 꼭 필요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의료기관이 부적절한 진료행위를 수행하고 있으며, 산재보험급여액을 과잉청구하거나 고가의 검사, 시술 등의 과잉진료행위를 해서 산재보험금을 부당하게 수령해가는 등의 사례가 근로복지공단의 감사에서 적발되곤 한다.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을 예로 들면, 요통은 가능한 급성기 며칠을 제외하고 걷기 등의 활동을 많이 해야 하고, 물리치료 외에 운동치료와 심리적 지지요법 등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는 두 달 이상 입원치료를 하며, 통증조절을 위해 물리치료와 주사요법 등만 이루어진다. 재해노동자의 입원을 통해 얻는 수입이 병원의 주요한 수입원인 의료기관으로서는 적극적 치료를 통한 조기 복귀보다는 장기간 병상을 비워두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단지 쉬기만 하면 나을 것이란 생각에 재해노동자들은 의료기관의 말을 믿고 따르겠지만, 돌아오는 것은 증상의 악화와 멀어져 가는 ‘건강한 직장복귀’다. 부도덕한 의료기관의 도덕적해이야 말로 산재보험 재정안정을 해치는 주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승인의 문제에만 거의 모든 인력과 일을 배치한 채, 실제 요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리/감독하고, 요양의 질을 관리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있다.

보험자의 도덕적 해이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의 효율적 운영의 핵심에 스스로의 문제가 놓여져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강제 치료종결이나 전원 사전승인, 그리고 노동자와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현실을 모른 채 요양지침 등을 만들어 오히려 재해노동자들의 고통을 더욱 부추기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장기요양을 부추기는 단편적인 치료행태와 재활치료의 부재, 건강한 작업장 복귀프로그램의 부재 등을 해결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진정한 효율성은 확보될 것이다.

산재 은폐와 도덕적 해이

언론의 보도처럼, 산재보험제도를 악용하여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숫자가 많지 않음을 강변하기 전에(미국의 경우 0.2-0.6% 수준의 도덕적 해이가 있음을 밝히고 있고, 이것은 보험제도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를 관리/감독하는 책임 역시 보험자의 몫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짚어야 할 내용은 산재보험에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 크기가 우리나라 산재보험에서 일어나는 산재은폐의 크기에 비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노동부에서 파악한 산재 은폐 적발현황을 보면 02년 1,033건, 03년 674건 정도로, 매년 700-1,000건의 산재 은폐 사례를 적발하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신고에 의존하거나 건강보험에서 부당이득금을 환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고 노동부 자체적으로 적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실제 산재은폐 사례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조사에 의하면 상대적으로 심각도가 덜한 가벼운 산재사고의 경우는 대부분 건강보험 또는 공상으로 처리되어 신고를 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중한 질환만을 신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는 21.9%만 산재 처리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실제 고용에 대한 위협, 사업주의 협박, 산재승인과정에서의 불편감 등으로 산재 승인에까지 이르는 길이 너무 험난하다. 결국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노동자 개인의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고,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됨으로써 전 사회적으로도 의료비 상승을 가져오게 되며, 장애 발생으로 건강한 노동력의 상실을 가져오게 된다. 산재보험을 둘러싼 가장 큰 도덕적 해이는 산재 은폐이며, 산재 은폐는 노동자에게 부담을 가져다 줄뿐 아니라, 전체적인 통계의 왜곡을 가져와 예방활동을 위한 정책수립에도 혼란을 가져오게 한다.

정부와 자본의 의도

1991년에 미국에서는 산재보험 재정 악화가 가속화된다는 내용과 함께 재해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재정 악화의 주원인이라는 보도가 여러 신문, 잡지들에 단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실리게 된다. 주로 휴업급여와 관련된 부정, 실제 있지도 않은 손상을 산재로 거짓 신고했다는 사례와 함께 대대적으로 실린 보도는 산재로 인해 보험급여를 타는 노동자들 중 상당수가 ‘도덕적 해이’를 저지르는 것으로 일반인들이 인식하게 만들었다(그 후에 몇몇 주의 보험사기 전담 부서의 발표에 따르면 산재보험에서 노동자의 부정행위율은 전체 재해노동자의 0.2~0.6%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선전작업을 통해 일반인들의 여론을 재해노동자들에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꾼 다음, 정책 입안자들에게 사용주와 보험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입안하도록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정부에서 제시하는 여러 개혁방안을 분석해보면, 이러한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산재보험 개혁의 핵심은 실제적인 보장에 있지 않고, 재정의 안정에 기반한 운영의 효율에 있다. 또한 재정의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부분은 다름 아닌 요양의 장기화와 이를 부추기는 휴업급여의 과다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도덕적 해이 여론을 통해 휴업급여의 삭감이나, 강제적인 요양종결을 합리화하고자 하는 포석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언급하지만 현재 산재보험 문제의 핵심과 개혁방안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산재 승인의 과정과 절차 등 승인의 장벽을 낮추는 문제와 재해노동자에게 실질적인 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양의 내용과 질을 확보하는 것이다.

맺는말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과장되게 주장하는 학자들을 보게 된다. 그들이 접하게 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병원에서 접하게 되는 환자들과 다름에서 오는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 동일한 질병이라도 노동자가 갖고 있는 질병은 또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노동과정에서 기인한 질병이라는 점이다. 특히 누적성 질환의 경우, 작업환경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는 질병이다. 또한 노동자들에게는 건강뿐 아니라 산재로 인한 고용불안 문제, 가족의 문제, 경제적 문제 등이 또 다른 짐으로 얹혀져 있다. 일반 질병과 동일한 잣대로 현상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 공세를 통해 자본이 얻고자 하는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의 변화에 일조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의 도덕적 해이에 앞서, 의료기관과 정부와 보험자의 도덕적 해이부터 해결하라. 산재보험에서 가장 큰 도덕적 해이는 산재 은폐를 자행하는 자본과 이를 조장하고 방조하는 정부의 무책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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