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회사와 싸우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가장 힘든 건 우리 스스로를 추스리는 일이었지요 – 대성엠피씨지회 서종석동지를 만나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회사와 싸우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가장 힘든 건 우리 스스로를 추스리는 일이었지요.

– 대성엠피씨지회 서종석 동지를 만나

글/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이진철
사진/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박지선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기아 자동차 광주지부 조합간부들은 건당 2,000만원을 받고 일자리를 팔았다. 총 24억이었다.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국민은행 노조간부들이 조합비 1억원을 횡령했다. 보수언론들은 쌍심지를 켜고 노동운동의 비도덕성을 욕했다. 부끄러웠지만, 너희가 언제는 노동자 편이었냐며 또 너희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울분 역시 가슴 한 켠에 있었다. 문제는 점점 커져갔다. 눈물과 피로 세운 노동자 조직 민주노총의 강승규 부위원장은 택시사용자조직으로부터 6차례에 걸쳐 7,800만원을 챙겼다. ‘사용자 조직에 잘 협조해달라’는 청탁성 뇌물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노동운동가가 집시법 위반이나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라 뇌물 청탁을 이유로 징역을 선고받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어제 신문에서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40%를 넘었다고 한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회사와 싸우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가장 힘든 건 우리 스스로를 추스리는 일이었지요.

노조를 설립하자마자 파업투쟁 300일이 지나갔다.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잔업수당체계. 거기에 대한 라인 반장들의 항의를 시작으로 만들어진 노동조합이 300일이 넘는 파업투쟁을 하게 될 줄 누군들 알았으랴. 시간은 지나고 90여명의 조합원이 남았다.

징계해고를 통보 받으셨을 때, 마음이 많이 힘들지 않으셨어요?

다행이었어요. 참. 다행스러웠어요. 간부들은 마음의 각오를 하고 있었거든요. 언제인가 징계해고가 들어올 것이다. 만약에 회사가 조합원들을 해고했었더라면… 그럴 수도 있었거든요. 건수를 잡아서 그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 예.

요즘 조합원들이 많이 힘든 상황이에요. 9개월간 파업투쟁을 하고 나서 회사가 정리해고다 명예퇴직이다 조합원들을 계속 협박해서. 그래도 감사해요. 조합원들이 잘 참아주고 있어요.

중국의 성인. 공자에게 그의 제자 자로(子路)가 물었다. 선생님. 정치란 어떻게 해야 좋은가요. 키가 190cm이 넘던 거구의 선생이 답했다. 자신이 앞장설 것. 그리고 수고와 공로를 잊어버리도록 할 것. 그래. 운동의 길은 의외로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일터이야기>에서 만난 사람은, 차분한 어조 속에서 많은 걸 담고 있었던 대성엠피씨지회의 서종석 지회장동지다.

13년간 일을 했는데 저는 주의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 멀쩡하네요.

조합원들 중에 산재를 당해 손가락이 없는 분이 많아요. 저희 작업이 음료수 뚜껑이나 포장지를 찍어내는 작업이라 롤러를 사용하거든요. 조금만 정신을 팔면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니까.

그냥 맨손으로 하면 장갑 때문에 롤러에 빨려 들어가는 일은 차라리 적을 텐데요.

신나 같은 유기용제를 쓰게 되니까 장갑을 껴야만 해요. 13년간 일을 했는데 저는 주의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손가락 멀쩡하네요.

유기용제 때문에 불편 호소하시는 분은 없나요.

머리 빠지는 사람도 있구요. 안에 들어가면 시끄럽기 때문에, 단국대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니 90데시벨이 넘게 나오더라구요. 그러니 다들 청각장애가 있어요. 후각 같은 경우는 냄새를 못 맡아요. 인쇄작업이라 미세먼지라도 들어오면 안 된다고 바깥 공기를 못 들어오게 해요. 속이 미식거리는 유기용제를 계속 사용하지, 바깥공기는 못 들어오지. 그러다 보니.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기도 했어요. 1주일마다 주․야간 바꾸어가면서.

아침 8시 30분부터 나와서 점심시간이 없어요. 요즘은 8시간 일하는데, 12시부터 30분씩 교대로 밥을 먹어요. 3명이 라인을 돌리는데, 1명이 나와서 30분 먹고 조금 있다가 2명이 30분 밥 먹고. 교대로. 기계는 계속 돌아가고. 그러다 보니 소화불량 이런 거 많아요.

기계를 풀가동하면서 껐다 켜는 시간을 줄이겠다고 그러는 거군요.

일이 많을 때는 12시간 맞교대를 했었거든요. 아침 8시 반에서 저녁 8시 반까지. 또 다음 팀이 저녁 8시 반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1주일마다 주야간을 바꾸어 가면서 하다보면 생활 리듬도 깨지고 소화불량도 더 심해지고 그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어느 조선소였던가. 기계 예열시간을 줄이겠다고 12시간 맞교대를 하는 작업장을 보고 어이가 없어 듣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대성엠피씨에서도 그런 일이 있는 것이다. 미세먼지가 들어올까봐 환기를 안 해 유기 용제를 그대로 마셔야 하고, 기계에 사람이 맞추어 움직여야 하고.

파업하면서 많이 힘들진 않으셨어요?

조합원 이재희 씨를 만났다.

가족들이 아빠를 믿으니까. 300일 동안 사람들 많이들 어려워했어요. 무노동 무임금이다 해서 월급을 못 받으니까. 전세 살던 사람 월세로 옮기고 자동차 팔아서 버티고 다들 그렇게 힘들어했어요. 그래도 전 가족들이 절 믿어주니까.

아침에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냄새 맡는 게 틀려요. 아침에는 걷다보면 이런저런 냄새도 나는데 퇴근할 때는 코가 멍해요. 그것만이 아니라 아침이랑 밤이랑 텔레비전 소리 크기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아침이면 12정도면 되는데 밤에는 14,15는 돼야 들리더라구요.

건강검진하면서 소음성 난청 진단받은 적은 전혀 없으신 거예요?

예.

대성 엠피씨 지회. 건투를 빕니다.

‘비타파워’. 대성엠피씨(MPC: Metal Printing Company)는 이런 류의 병뚜껑에 붙일 포장지를 찍어내는 공장이었다. 그들을 만나기 이전 단 한 번이라도 그 포장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전세를 빼 월세방으로 옮기며 300일의 파업투쟁을 함께한 조합원들과 환기시설이 부족한 공장에서 일하다 밤이면 코가 멍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노동자와 앞장서서 활동하고 자신의 수고를 잊는 활동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대성엠피씨지회 동지들.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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