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어느 건설노동자의 의문의 죽음, 108일 만에 업무상 재해 쟁취!

일터기사

[뉴스와 포커스]
정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장 송홍석

노동부, 사업주 날인 폐지 불가하다는 입장 재확인

산재처리 절차에서 사업주의 날인 거부로 또 다른 ‘진입장벽’의 역할을 해왔던 ‘사업주 날인제도’의 폐지에 대한 단병호 의원실의 요구에 대해 노동부가 ‘폐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이에 대해 단의원실은 “당장 없애는 것이 곤란하다면 요양신청서에 사업주가 날인 거부시 그 사유를 첨부해 제출하면 산재신청이 가능하다는 명시적 문구를 기재하라”는 요구를 하였고 이에 대해 노동부는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노동부의 이러한 답변이 실행된다 하더라도 사업주 날인을 받지 못해 산재신청을 못하는 노동자들을 줄일 수는 있다는 다소의 긍정성은 있되, 산재노동자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고 있는 날인절차가 존속됨으로써 ‘산재신청 절차의 간소화’나 ‘산재승인까지의 장기화’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법원,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및 자살시도’도 산재 인정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시도도 산재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지금까지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은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 자살을 시도한 경우나 자살시도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실을 입증해야 산재로 인정해 왔다. LG투자증권에 근무하던 노씨는 회사 내 부서변경 뒤 과중한 부담과 상급자로부터의 잦은 질책 등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2002년 자살을 시도한 뒤에서야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이어 지난 8월 다시 자살을 시도한 결과 시력장애와 신경마비 등의 장해를 당해 공단에 요양신청을 냈으나, 공단은 자살시도 전에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가 내성적이면서도 완벽주의적인 성격 등 우울증이 발병하기 쉬운 소인들을 가지고 있다가 업무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가 작용해 우울증이 유발됐고, 이로 인한 자살시도와 그에 따른 장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환경미화 노동자, 중대 노동재해 잇따라 발생해

올해 9월과 10월 충남과 부산에서 각각 2명의 환경미화원이 교통사고로 사망한데 이어, 지난 11월에는 경북 고령에서 민간위탁업체 소속의 환경미화원 3명이 작업 중 교통사고로 뇌사 등의 중대재해를 당한 사고가 발생했다. 고령군 환경노조 조합원이기도 한 이들의 중대 사고성 재해에 대해 고령 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은 “환경미화 업무를 민간위탁으로 맡기면서 예산이 절감돼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고, 인력 감소로 도로 위의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면서도 위험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무시하고 경제논리로만 따지다 보니 최근 들어 환경미화원들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포커스]

어느 건설노동자의 의문의 죽음, 108일 만에 업무상 재해 쟁취!
경기중부지역건설노조 사무국장 김미정

의문의 죽음

지난 7월 5일. 경기도 부천 소재의 두산중공업 위브더스테이트 현장에서 형틀목공 유용만씨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유족이 처음 연락을 받고 성가병원에 도착했을 때, 고인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병원으로 오는 도중 유족들은 외상이 없이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병원에 도착해서 머리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정수리에 찍힌 듯한 상처와 뒷머리에 두 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그러나 두산중공업에서는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라는 주장만을 되풀이하였다. 결국 부검이 의뢰되고 장례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진상조사단 출범과 활동

건설산업연맹과 경기중부지역건설노조,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실, 산재사망 대책마련 캠페인단, 매일노동뉴스 등은 ‘두산중공업 산재사망 진상규명을 위한 진상조사단’을 출범하였다. 2차례의 현장조사, 동종 직종의 동료들, 사고가 난 사실을 알고 현장으로 달려가서 현장의 혈흔을 목격한 동료, 현장의 관리자들, 당시 형틀업체의 소장, 응급구조대, 병원, 경찰 등을 만나 조사를 하였다. 진상조사단의 활동 결과, 현장에서는 철근이 사라졌고, 피 묻은 박스, 혈흔이 사라졌다. 그리고 고인이 사용했던 안전모의 종적이 묘연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측은 사고 이후 15일이나 지나서 최초의 사고현장 사진을 내놓았다. 혈흔이 없었다던 이야기와는 달리 사진에는 분명한 혈흔이 있었다. 진상조사단은 약 2개월에 걸친 조사결과 “현장의 안전조치 미비(발끝막이판 미설치 등), 개구부에서 낙하물이 고인의 머리로 떨어져 심근경색을 일으킨 명백한 산업재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동대책위와 연대투쟁

민주노총 부천시흥김포지구협의회와 민중연대, 민주노동당, 노동건강단체 등이 참여한 공동대책위가 꾸려졌고 약 3개월의 활동을 벌여내었다. 집회와 선전전, 1인 시위 등을 진행하며 두산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와 재해를 은폐하는 건설자본의 행태를 비판하며 노동자가 일당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을 바꾸자는 목소리를 높여냈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을 압박하는 투쟁전술도 배치했다.

“외상과 심근경색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업무상 재해”

10월 20일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108일만에 “외상과 심근경색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업무상재해”라는 판정을 받았다. 산업안전공단의 재해조사 결과와 부검결과, 그리고 자문의 의견 등을 들어 결론을 내었다. 진상조사단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기업윤리 상실한 두산중공업

자본에 의한 살인,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재해는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 막을 수 있지만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을 지어 돈벌이를 하는 것 이외에 건설노동자의 건강과 목숨은 건설자본의 관심사가 될 수 없다. 4개월의 기간 동안 두산은 유족에게 “잘못한 것이 전혀 없다. 산재가 아니다.” 라는 주장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산재로 판정이 난 뒤 두산중공업에서는 득달같이 유족에게 전화를 하여 만나자는 제안을 하였다. 몇 차례의 만남을 통해 확인된 것은 “잘못이 없다”는 똑같은 말뿐이었고, “노조를 배제하고 협상을 하자, 보상액수는 절충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유족들은 실리를 선택했다. 공식적인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측과 합의를 하였다.

기업살인 방조하는 비인간적 현실

경찰은 과실치사에 대해 면죄부를 주고,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해 면죄부를 주었다.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4일 만에 노동조합의 신고를 받은 노동부가 현장에 나타났다.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고, 단순한 사망이 아닌 것 같으니 나와서 조사를 하라고 하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요구에도 집무규정을 운운하며 현장에 나오기를 꺼려했다. 근로감독관과 노동부 소장을 직무유기로 고발을 하였다. 그러나 부천노동부는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결국 진상조사단의 발표처럼 “외상과 인과관계가 있는 업무상재해”라는 결론이 나왔다. 노동부의 직무유기가 분명해졌지만 담당감독관은 여전히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태도이다. 한편, 경찰의 태도는 더욱 기고만장했다. 노동부의 안이한 태도에 대한 규탄집회를 하고 돌아가던 경기서부의 이태진 동지를 현행범이라는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씌워 체포했다. 귀가하던 차량을 강제로 세우고 폭력적으로 연행하였다. 그런데도 사고 조사를 하는 경찰의 태도는 무능력이 아니면 두산 봐주기로 일관했다. 사망사고 현장에 카메라도 없이 나타나는가 하면, 조사도 끝나지 않은 사건의 사고현장에 대해 작업재개를 허용하였다. 그리고는 낙하물이 무엇인지 찾을 수 없으니, 사고내용을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아무런 결론도 내지 않고 두산중공업에 면죄부만을 주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노동재해의 천국 건설현장! 건설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으로만 바꿔낼 수 있다.

하루 2명, 1년이면 800명이 사망하는 건설현장, 산업재해가 약 2만 건이 발생한다는 이 통계! 그러나 이 숫자는 그저 문서상의 숫자에 불과함을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수 없이 많은 사고가 발생해도 산재처리는 커녕 치료나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건설현장의 현실이다. 정부도 알고, 건설자본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재해의 80%가 은폐되고 심지어 사망사고 마저도 자연사 아니면 교통사고로 둔갑이 되어 건설노동자의 죽음이 개죽음이 되고 있는 이 숨막히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현장의 노동자가 건강하게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될 수 있다는 허망한 꿈, 미래의 희망마저도 모두 포기해버린 건설노동자의 처절한 절망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번 두산중공업 사망사고가 산업재해로 판정이 날 수 있었던 이유는 명백한 산업재해라는 확신과 그에 따르는 연대투쟁의 결과이다. 노동재해의 천국 건설현장! 일당벌이를 위해 목숨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이제 목숨을 건 투쟁으로 바꿔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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