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2월] 수영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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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이야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오주환

난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 치료차 수영장에 다닌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아침마다 수영을 하는 것은 처음엔 치료목적으로 시작하였지만 이젠 재미있는 하루의 일과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공립수영장으로 비용도 사립수영장보다는 적게 든다. 이 곳에는 다양한 직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닌다. 대부분 이러저러한 공장의 노동자이거나 소규모의 자영업을 하는 사람도 일부 있다. 내가 작년 여름 이 곳에 처음 갔을 때, 이 분들은 이미 여러 해째 수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겨울이 되자 수영장은 문을 닫았고, 이 분들의 일부는 다른 사립수영장에 등록해서 다니고 일부는 운동을 쉬고 일부는 다른 헬스클럽 같은 곳을 겨울 동안은 다닌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겨울엔 공립수영장이 적자가 나서 겨울철 동안 문을 닫는단다. 여러 해째 그래왔다고 한다. 이 곳에서 운동하는 운동선수들은 인근의 더욱 작은 지자체의 공립수영장에 가서 겨울 연습을 한다고 한다. 왜 근처에 더 규모가 작은 지자체 수영장은 겨울에도 개장을 할 수 있는데, 이 곳은 더 인구가 많은 지자체인데도 문을 닫고 여러 이용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야만 할까? 그 곳도 적자는 마찬가지 아닐까?

이들은 가을이 되자 겨울철 휴장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작년에 듣는 것과 똑같았다. 올해부터 다니기 시작한 한 사람이 겨울에 휴장하지 못하고 개장하도록 지자체를 상대로 요구할 것을 제기하였다. 겨울철에도 지속 개장을 정중히 요구하는 문서가 작성되었고 곧 서명운동으로 첫 투쟁을 시작하려 하였다. 모두들 환영했다. 그러나, 그 환영은 말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투쟁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사실상 투쟁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투쟁계획이 소문나자 수영장측에서는 12월초부터 휴장하려던 것을 1월부터 휴장하려고 한다고 유화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막상 아무런 싸움도 진행되지 않자, 원래대로 12월초에 휴장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요즘, 사람들은 수영하면서 곧 다른 수영장에 비싼 돈 내고 불편하게 가게 되었다고 수영장을 욕하며 투덜투덜한다. 그러나 투쟁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 돌아오는 너무도 당연한 치욕스런 결과가 아닌가? 투쟁계획만을 듣고도 상대는 긴장하고 있는데 정작 여러 해 동안 투쟁을 포기한 자들은 새로운 투쟁계획조차 자신 없어 하고 스스로 포기한 채, 그 결과를 두고 투덜거리기만 한다. 노력해 보지도 않고. 조직된 대중의 힘을 서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의 나약함만으로 상대방의 태도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냥 받아들인다.

노력하지 않고서 얻어지는 것은 없다. 이것은 정말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선 조금 더 변형되어야 한다. 노력하고서도 얻을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고, 조금만 노력해도 많이 얻을 수 있는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은 싸우지 않고서는 당연한 것조차 얻을 수 없는 경우가 오히려 흔하다. 오히려 평상시 상태를 유지하는 것조차 항상적인 긴장과 가끔씩의 투쟁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다. 하물며 일터에서만이 아니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과 같은 노동 후 휴식공간에서의 여유를 누리는 데서조차도 이 점에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난 싸워서 실패했으면 차라리 좋겠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야 하다니, 참 수영할 맛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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