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월] “여보, 당신에겐 참으로 미안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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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에겐 참으로 미안하구려…”

참으로 오랜 세월 열심히 일했습니다. 11년의 세월. 그 세월 속엔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으로 들어가는 긴 시간입니다. 1997년 이후 8년의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IMF 경제위기 이후 꽉 물어버린 임금은 내 가족들의 행복을 깨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전 열심히 일하면 그래도 넉넉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살 줄 알았어요. 참으로 살기 힘드네요. 나와 당신이 맞벌이를 해도 말이예요”하며 건네는 아내의 말에 뭐라 답변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매년 변함없는 백만원이 갓 넘는 임금에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2004년 초부터 수차례 하청업체별로 임금 개선을 요구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회사가 어렵다는 겁니다.

일 년 이상의 수입 없는 긴 싸움에 몸과 마음이 지쳤지만 이젠 오기도 생깁니다. 작년부터 큰 애는 “아빠! 회사로 다시 들어가면 S보드 하나만 사주세요”라는 말이 못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젠 마음의 준비가 됐네요. 하청업체의 삶, 아니 비정규직 노동자의 위태한 삶을 저를 통해 만 천하에 낱낱이 알리고 싶네요. 이 사회의 바른 눈을 통해 하이닉스매그나칩 대기업의 비도덕성을. 비정규직은 십년 이상 일해도 A4용지 한 장의 정리해고 안내문에 언제든지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관공서 도청, 노동부, 경찰서 그들은 힘없는 비정규 노동자의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자본가들의 대변자일 뿐.

일 년 이상을 길거리에서 투쟁하며 산 경험이기에 내 생명을 걸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이닉스매그나칩 관계자 여러분 남은 조합원 여러분의 바른 목소리를 인정해 주리라 믿습니다. 우리 조합원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내 한 목숨 던져 평화적 해결을 맛볼 수 있다면 참으로 마음 편히 갈 수…

사랑하는 제현아, 하은아. 늘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기 바란다. 늘 엄한 모습으로 야단 쳤던 아빠 용서하고, 엄마 말씀 잘 들어라.
여보. 당신에겐 참으로 미안하구려…

2006년 1월 16일

–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비정규직의 삶을 살아온 강필선씨가 사측에 보내는 유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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